뇌심혈관 질환 증상에 쿠팡은 '과로사', 타 택배사는 '지병'… 민주노총 '이중잣대' 논란

입력 2025-10-17 12:13:04 수정 2025-10-17 12:2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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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로사 기준, '노조 입장 따라 달라지나'… 업계 "정치적 잣대 우려"

민주노총이 최근 대구 지역에서 쿠팡 주간 배송을 하던 택배대리점 소속 40대 기사 사망 원인을 두고 과로사로 단정해 논란이 되고 있다. 이 40대 기사는 고혈압 치료를 받다 자택에서 숨졌는데도 노조가 과도한 근무 시간과 업무량 등을 원인으로 지목해 과로사가 원인이라는 여론을 조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민주노총은 지난여름 주 7일 배송 과로사 의혹이 불거진 C택배사 배송기사 3명 사망 사건에 대해서는 뇌심혈관 질환을 앓고 있었다고 인정했지만, 과로사 의혹을 제기하지 않은 만큼 택배업계에서는 "죽음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이중잣대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고혈압·당뇨·고지혈증 모두 '뇌심혈관 질환 위험요인'인데… 과로사 단정

17일 택배업계에 따르면, 최근 대구에서 쿠팡 주간 배송을 하던 택배영업점 소속 기사 A(45)씨는 대구 자택에서 지난 1일 쓰러졌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5일 뇌출혈로 사망했다. 그는 평균 주 56시간 쿠팡 상품을 배송하면서 고혈압 치료를 받아왔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 택배노조는 보도자료를 내고 "쿠팡 캠프에 입차한 택배 노동자는 프레시백 청소에 30분, 롤테이너(카트)에 담긴 상품을 분류해야 한다"며 "매일 최소 1시간의 숨겨진 노동시간까지 더하면 고인의 노동시간은 주 60시간이 넘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A씨가 "뇌출혈 같은 뇌심혈관계 질환은 과로사의 전형적 증상"이라고 밝혔다.

쿠팡로지스틱스(CLS) 관계자는 "해당 택배영업점으로부터 고인은 지병이 있었고, 자택에서 쓰러져 병원에서 치료받던 중 안타깝게 돌아가신 것을 확인했다"고 반박했다.

A씨 소속의 택배영업점측도 "유가족은 병사한 고인의 죽음이 정치권과 언론에 더 이상 언급되지 않기를 원한다는 뜻을 밝혔다"고 전했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쿠팡은 고인이 고혈압 치료를 받아왔다고 하지만, 과로사 산재의 원인은 과로이지 고혈압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민주노총이 '뇌심혈관 질환'을 일으키는 증상들에 대해 과거 택배기사 사망 사건에서 전혀 다른 해석을 내렸다는 점이다. 지난 7월 초 C택배사에서 배송기사 3명이 연달아 사망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민노총 택배노조는 숨진 C택배사 택배대리점 소장이 출근 이후 분류작업 등 업무를 하다 "차에서 쉬겠다"고 말한 뒤 숨졌다고 밝혔다. 또 서울 역삼동에서 근무하던 한 배송기사는 출근 직후 구토 증상으로 병원에 옮겨져 숨졌으며, 경기 연천 지역에서 근무하는 배송기사도 근무 이후 귀가했다가 의식을 잃고 숨졌다고 했다.

하지만 노조는 당시 "건강진단 결과를 확인해보니 3명 모두 당뇨와 고지혈증 등 뇌심혈관 질환을 앓았다"고 단정했다. 그러면서 "충격이 오면 약한 고리가 끊어지듯, 노약자와 기저질환자를 중심으로 폭염에 의한 사망사고가 발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C택배사 배송기사들이 모두 출근 전후 사망하긴 했지만, 사고 원인은 지병과 더위 같은 외부 요인 때문이라는 것이다.

쿠팡은 사망사고만 나면 '과로사'… 타 택배사 사망사고는 성명서도 안 내

하지만 일반적으로 고혈압과 당뇨, 고지혈증 모두 뇌심혈관 질환의 주요 위험요인으로 손꼽힌다. 세 가지 증상 모두 혈관 벽을 손상시키거나 혈류 조절에 이상을 일으키는 주요 요인들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택배업계 일각에서는 "민주노총이 '뇌심혈관 질환'의 정의와 사망 원인을 정치적 이유에 따라 바꾸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온다.

C택배 기사들이 3명 연속 사망했을 때는 업계에서 '주 7일 배송' 이슈가 불거지던 시점이었다. 당시 한국노총은 "비극의 원인은 CJ대한통운 등 일부 택배사들이 주 7일 배송을 전국적으로 확대하면서도 추가 인력을 배치하지 않고, 택배기사들을 분류작업에서 완전히 배제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업계에서는 "민주노총의 주장대로라면 뇌심혈관계 질환인 당뇨, 고지혈증을 앓던 C택배사 배송기사들도 과로사 증상을 보인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택배업계에서는 민주노총이 택배사의 사망 사건에 대해 이중잣대를 보이며 지나치게 쿠팡 때리기에 일관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실제 민주노총 택배노조는 쿠팡 배송기사가 사망하면 성명·보도자료에 '쿠팡'과 '과로사'를 부각해왔고, 타 택배사 배송기사 사망 사건은 사명을 가리면서 과로사나 산업재해 의혹 등을 제기하지 않는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15일 경기 광주 CJ대한통운 곤지암 물류센터 하차장에서 70대 택배 차량 운전자가 후진하던 트럭과 벽에 끼여 숨진 사건도 경찰이 진상조사에 나선 상태지만, 민주노총은 성명서를 내놓지 않은 상태다.

민주노총이 쿠팡 택배기사 사망 사건의 원인을 '과로사'로 단정한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23년 10월에도 쿠팡의 60대 택배기사 사망 사건에 대해 민주노총은 '과로사'로 단정했지만, 국과수 부검 결과 지병인 '심장비대'로 밝혀졌다. 당시 유가족들은 "노조와 정치권이 함부로 말하고 있다"는 목소리를 냈다.

지난 7월에도 일산 쿠팡 배송캠프에서 직원이 쓰러지자 민주노총은 "폭염 속에 의식을 잃었다"고 주장했으나, 사실관계를 확인한 결과 쓰러진 직원은 20도 초반으로 유지되는 냉방시설에서 근무한 것으로 파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