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속 피해 도주한 줄 알았지만…더 은밀하고 안전한 '신형 감금소'로 진화
"감옥은 사라졌다, 대신 고급 아파트가 생겼다."
범죄조직이 경찰 단속을 피해 숨어든 곳은 감금소가 아닌 도시 중심의 최고급 주거지였다.
"아파트 단지에서 일하기 때문에 노출될 일이 없다."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건너온 메시지 한 줄이 보여주는 현실은 단속을 피한 단순한 도주가 아닌, 범죄 수법의 진화였다.
캄보디아 정부의 단속이 본격적으로 현실화된 이후, 시아누크빌 일대에 있던 범죄단지들이 대거 철수한 가운데, 다수의 조직은 아예 도심 고급 아파트단지 내부로 거점을 옮긴 뒤 범죄를 이어가고 있는 정황이 포착됐다.
현지 취재를 통해 입수한 텔레그램 대화 캡처에 따르면, 이들 조직은 아파트단지 내에서 여전히 감금과 사기 행위를 지속하면서도 "저희는 고급 아파트단지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노출될 일이 없습니다. 아파트 내부 안으로 경찰은 들어올 수 없습니다"라며 안심시켰다.
이 메시지에는 "클럽이나 밖에 나돌아다니기 좋아하는 친구들은 조금 위험할 수는 있지요. 진짜 안전하게 돈 벌고 돌아가고 싶으시면 6~12개월 정도 빡세게 돈 모으시고 돌아가시면 됩니다"라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마치 '취업 기회'를 소개하듯 위장된 말투지만, 실제론 인신매매와 감금 범죄의 일환이다.
해당 대화와 함께 첨부된 사진 두 장 중 첫 번째는 차량 내부에서 고층 아파트단지를 바라보는 모습이었고, 두 번째는 외관상 고급 아파트로 보이는 건물 외벽을 촬영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과 대화는 단지의 위치나 조직 구조는 바뀌었을지언정, 범죄 행위는 중단되지 않았다는 점을 강하게 시사한다.
현지 상황에 정통한 제보자 D씨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그동안 범죄조직이 운영되던 곳은 벽돌담으로 둘러싸인 공장형 빌딩이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에는 외국인 거주자들이 많은 고급 주상복합 단지로 숨어들고 있다"며 "외부에서는 일반 거주지처럼 보여 단속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아파트는 경비가 철저하고 외부인의 출입이 쉽지 않다. 오히려 과거보다 더 안전하고 은밀한 방식으로 사람들을 가둬두고 일시키고 있다"며 "감금된 피해자들은 개별방에 머무르며 휴대폰과 노트북을 사용하게 해 자발적인 것처럼 위장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모든 기록이 통제되고 있어 사실상 탈출이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범죄단지의 운영 방식도 더 체계적이고 전문화된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는 정황이 포착된다. 과거에는 단순히 '피해자를 유인해 돈을 갈취하는 수법'에 그쳤다면, 현재는 역할을 분담한 팀 운영, 심리 조작, 인터넷 기반 고도화된 금융사기로까지 범위를 넓히고 있다.
전직 근무자 B씨는 "요즘엔 현지 관리자가 피해자들에게 '본인이 자발적으로 일하겠다고 서명했다'는 문서를 쓰게 하고, 외부 신고를 막기 위해 계좌 비밀번호와 휴대폰 인증을 통제하는 방식까지 사용한다"며 "법적 제재를 회피하려는 시도도 훨씬 정교해졌다"고 말했다.
한편, 캄보디아 주재 한국대사관은 현지에서 발생하는 범죄 피해자들의 구조 요청에 신속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대사관 공식 홈페이지에 게시된 공지사항에 따르면 "현장에 직접 출동해 범죄 수사나 체포, 구출 활동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명시돼 있다.
또 "신고 접수 후 영장을 발부받아 수색에 착수하기까지 평균 1~2일, 최대 일주일 정도 시간이 소요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에 대해 실제 피해자 C씨는 "대사관, 영사, 공사에게 직접 구조 요청 메일을 보냈지만 아무도 확인하지 않았다. 구조 당시에도 현지 공관에서는 한 사람도 나타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캄보디아 현지에서 활동 중인 한 한인회 관계자는 "최근 시아누크빌과 프놈펜 일대의 범죄단지가 집단 이동하는 와중에도 다수의 조직이 도심 한복판의 고급 아파트로 이동해 여전히 인력을 감금하고 작업을 시키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겉으로 보기에는 외국인이 일하는 IT 사무실이나 숙소로 보이지만, 내부에서는 한국, 중국 등 다양한 국적의 피해자들이 사실상 자유를 박탈당한 상태로 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에 매일신문 N컨텐츠본부 특별취재팀이 확인한 아파트단지 내 거점화 정황은 단순히 단속을 피한 도주가 아닌, 범죄조직이 한층 더 교묘하고 은폐된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김용현 영남이공대 교수는 "사건의 성격상 외부인의 접근이나 직접적인 확인이 쉽지 않지만, 조직 내부의 움직임과 확보된 메시지, 사진, 증언을 볼 때 현재 캄보디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범죄가 더 이상 '한정된 지역의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며 "범죄 조직이 더 치밀해지고 조직적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