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구자욱, 살아난 타격감과 집중력
김지찬, 빠른 발로 승리의 디딤돌 놔
원태인, 에이스다운 역투로 승리 견인
주장은 투혼으로 타선을 일깨웠다. 침묵을 깬 공격 첨병은 치고 달렸다. 에이스는 헌신으로 팀 승리를 이끌었다. 삼성 라이온즈가 프로야구 포스트시즌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5대3으로 이겼다. 시리즈 전적 2승 1패. 구자욱과 김지찬, 그리고 원태인이 삼성 라이온즈의 '가을 야구'를 빛냈다.
◆17구 승부 투혼 빛난 주장

13일 대구에서 열린 준플레이오프 3차전. 삼성이 4대1로 앞선 5회말 1사 2루 기회에서 주장이자 3번 타자 구자욱이 타석에 섰다. 구자욱이 상대할 투수는 SSG 랜더스의 불펜 필승조 중 한 명인 이로운. 입은 유니폼은 다르지만 구자욱의 대구고 후배이기도 했다.
초구와 2구는 볼, 3구는 시속 148㎞짜리 속구로 스트라이크. 이어 4구부터 4번 파울로 공을 걷어냈다. 이로운이 투구판을 이탈하며 한숨을 돌렸다. 끝나지 않았다. 이후 구자욱은 8번 더 파울을 만들어냈다. 결국 17구째 공에 헛스윙 삼진으로 돌아섰다.
야구장에 탄성과 한숨이 교차했다. 무려 17구까지 가는 치열한 승부였다. 덕아웃으로 돌아오는 구자욱에게 박수가 쏟아졌다. 이로운은 힘이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 르윈 디아즈를 고의사구로 거른 뒤 김영웅을 상대했으나 1타점 2루타를 두들겨 맞았다.

경기 전 박진만 감독은 "SSG 불펜은 막강하다. 필승조를 무너뜨려야 우리가 산다"고 했다. 구자욱은 끈질긴 17구 승부로 이로운의 힘을 뺐다. 이는 역대 포스트시즌 한 타석 최다 투구 수 신기록. 구자욱은 이날 이로운과의 승부와 안타 2개로 타격감을 끌어올렸다.
경기 후 구자욱은 "치기 어려운 공이 많았다. 하지만 투구 수를 늘리는 데 도움이 됐으니 다행이다"며 "공이 앞으로 잘 안 나갔다. 꼭 살아나가고 싶었는데 (실패해) 아쉽다. 결과를 냈어야 하는데 삼진을 당해 속상했다. 그래도 팀이 이겼으니 아무 문제 없다"고 했다.
◆삼성 공격 첨병의 기지개

과감하고 폭발적인 주루. 김지찬에게 따라붙은 이미지다. 하지만 최근 김지찬은 중용되지 못했다. 타격감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이날 박진만 삼성 감독은 김지찬을 1번 타자로 투입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예민한 편인 상대 에이스 드류 앤더슨을 흔들겠다는 작전.
김지찬은 1회말 첫 타자로 나섰다. 하지만 볼카운트 2-2에서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다. 경기가 중단됐다. 대형 방수포가 그라운드에 깔렸다. 약 30분 후 경기가 속개됐다. 앤더슨이 다시 마운드에 올랐다. 김지찬은 내야 땅볼로 허무하게 물러났다.
0대0으로 팽팽히 맞서던 3회말 2사 1, 3루 상황. 김성윤이 타석에 섰다. 2루수 앞으로 가는 느린 땅볼. 김지찬 못지않게 빠른 발로 내야 안타를 만들어냈다. 상대 실책이 더해졌다. SSG 2루수 안상현이 김성윤의 발을 의식, 급히 공을 처리하려다 1루에 악송구했다.

당시 1루 주자는 김지찬. 뒤돌아보지 않고 맹렬히 질주했다. 3루 주자는 이미 홈을 밟은 상황. 이종욱 3루 주루 코치의 사인만 봤다. 발걸음에 탄력이 붙었다. 2, 3루를 지나 홈까지 내달렸다. 이 코치는 자신도 모르게 김지찬과 함께 달렸다. 간발의 차이로 세이프.
이 주루가 시발점. SSG의 보루 앤더슨이 추가점을 내주며 무너졌다. 박 감독의 승부수가 적중했다. 경기 후 김지찬은 "타구를 보고 (김)성윤이 형이면 살겠다 싶어 일단 뛰었다. 송구가 빠지며 홈까지 갈 수 있겠다 생각했는데 이 코치님이 확신을 주셨다"고 했다.
◆푸른 비의 에이스, 위력투

이날 경기 후 박 감독은 가장 먼저 원태인을 입에 올렸다. 그는 "원태인이 또 우리 팀을 살렸다"며 "투구 수가 많았는데도 더 던졌다. 희생해준 게 고맙다. '푸른 피의 에이스'다웠다"고 했다. 이날 선발 등판한 원태인은 6⅔이닝 5피안타 1실점으로 팀 승리를 이끌었다.
이날 고비는 1회. 원태인은 1회초를 무실점으로 넘겼다. 다만 투구 수는 18개로 다소 많았다. 1회말 폭우로 경기가 약 30분 중단됐다. 투수의 몸이 식어버릴 수 있는 상황. 원태인은 스트레칭과 캐치볼로 감각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앤더슨이 먼저 무너졌다.
경기 후 원태인은 "상대 에이스는 언젠가 넘어야 할 산이다. 차라리 나와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실점 후 '포수 (강)민호 형이 1점 줬다고 왜 세상이 무너진 표정을 짓냐, 편하게 우리 할 것만 하자'고 했다. 가벼운 말로 부담을 덜어줬다. 감사하다"고 전했다.

묘하다. 원태인에겐 가을비가 따라다닌다. 지난해 KIA 타이거즈와의 한국시리즈 1차전 때 5이닝 무실점으로 역투했으나 비로 서스펜디드 게임(일시 정지 후 뒷날 속행하는 경기)이 선언된 바 있다. 7일 NC 다이노스와의 와일드카드 2차전 때는 비로 경기가 지연돼 몸을 두 번 풀어야 했다.
올해 가을비는 변수가 되지 못했다. 이 정도면 '푸른 비의 에이스'라 불러도 좋을 듯하다. 원태인은 "무실점 뒤 기립 박수를 받으며 퇴장하는 그림을 상상했는데 실점 하나 빼곤 현실이 됐다"며 "팀이 바란다면 불펜 대기도 좋다. 그런 낭만도 멋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