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자와·마이즈루·사카이미나토…항구 인근의 소도시의 탐방 매력
이동형 여행 '크루즈' 산업 발전 가능성 높아…현재 국내 연간 5만명 탑승
"크루즈 발전하려면 연령과 관심사에 맞춘 특화 상품 개발 필요"
부산항에 도착하자마자 모습을 드러낸 크루즈 선박의 규모와 위용은 말로 다 담기 어려웠다. 선박 한 척이 마치 작은 도시처럼 우뚝 서 있었다. 거대한 배에 몸을 싣고, 창밖으로 끝없는 수평선을 바라보는 경험은 비행기 창문 너머의 하늘과는 또 다른 감흥을 줬다. 출항을 알리는 뱃고동이 울리자, 낯선 설렘이 밀려왔다.
최근 일본, 대만 등 아시아 곳곳을 기항지로 하는 크루즈 상품이 국내에서 주목받고 있다. 화려한 시설과 다채로운 프로그램, 이국적인 항구 도시를 잇는 항로는 여행자들에게 새로운 형태의 휴양을 제안한다.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배 자체가 하나의 여행지가 되는 셈이다.
바다 위에서 숙박과 식사, 공연과 휴식을 모두 해결하는 크루즈는 흔히 '떠다니는 호텔'로 불린다. 이탈리아 선사 코스타 크루즈의 대표 선박 '코스타 세레나호(Costa Serena)'에 탑승해 5박 6일 여정을 직접 체험하며 크루즈 여행의 매력을 들여다봤다.


◆스파·극장·카지노까지… "리조트형 선박"
2007년 건조된 코스타 세레나호는 총톤수 11만4천500톤으로 길이는 63빌딩과 맞먹는 290m, 폭은 35.5m에 달한다. 14층 높이의 거대한 선박에는 최대 3천780명의 승객이 탑승할 수 있으며, 약 1천100명의 승무원이 탑승객의 여정을 돕는다. 세레나호의 객실은 총 1천500여 개로, 내측·외측·발코니·스위트 등 다양한 유형으로 구성돼 있다. 모든 객실에는 개별 욕실이 갖춰져 있으며, 바다 전망을 즐길 수 있는 발코니 객실이 특히 인기가 높다.
이탈리아 피칸티에리 조선소에서 건조된 코스타 세레나호는 고대 로마 신화를 콘셉트로 설계돼 곳곳에서 신들의 이름을 딴 라운지, 레스토랑, 공연장 등을 만날 수 있다. 선내에는 3개의 수영장과 더불어 자쿠지, 대형 워터슬라이드가 마련돼 가족 단위 여행객들이 주로 이용한다. 일부 수영장에는 18㎡ 크기의 대형 스크린이 설치돼 선상 영화 상영도 진행된다. 아울러 피트니스센터, 조깅 트랙, 사우나 등 건강시설도 완비돼 장기간 항해 중에도 일상의 루틴을 유지할 수 있다.


먹거리 역시 크루즈 여행의 백미다. 세레나호에는 이탈리아 정통 요리를 중심으로 한 메인 다이닝을 비롯해 뷔페 레스토랑, 피자 레스토랑, 스시바, 스테이크하우스 등 12개 식음 공간이 있다. 또 커피 바와 젤라토 코너, 와인 셀러 등도 있어 하루 종일 다양한 미식을 즐길 수 있다.
문화·여가 시설 또한 화려하다. 3개 층에 걸친 1천500석 규모의 대극장에서는 매일 밤 뮤지컬, 아크로바틱, 성악, 트로트, 타악 퍼포먼스 등의 공연이 열린다. 아울러 카지노, 영화관, 면세점 등도 갖춰져 선내에서의 하루가 바쁘게 흘러간다. 또 쇼핑 갤러리, 예배당, 의료실뿐만 아니라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전용 놀이 공간, 유아 돌봄 프로그램도 운영돼 장기 항해 중에도 육상 생활과 다르지 않은 일상을 누릴 수 있다.


초등학생 두 자녀와 70대 어머니를 모시고 크루즈에 탑승한 40대 A씨는 "보통 여행하면 어른이나 아이 한쪽에게만 맞춰야 하지만 배에서는 모두가 각자 즐길 게 있었다"라며 "아이들은 수영장에서 놀고, 어머니는 스파에서 휴식을 취했고, 나는 커피를 마시며 여유를 느낄 수 있어서 만족했다"고 소감을 남겼다.
부부가 함께 크루즈에 탑승한 70대 B씨는 "공연과 행사 덕분에 밤이 짧게 느껴졌다"며 "저녁 식사 후엔 클래식 공연이 열리고, 댄스파티도 있어서 구경만 해도 즐거웠다. 저녁 정찬도 매일 메뉴가 바뀌니 식사시간이 기다려졌다"고 말했다.


◆일본 소도시 중심의 기항지 투어
크루즈 여행의 가장 큰 매력은 '이동 중에도 여행이 이어진다'는 데 있다. 항공편으로는 닿기 어려운 항구 인근 소도시를 방문하며 낯설지만 생생한 일상의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캐리어를 옮길 필요 없이 밤사이 바다 위를 건너 매일 다른 도시에 도착한다. 이번 항해의 기항지는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가나자와, 마이즈루와 교토, 그리고 사카이미나토 세 곳이었다. 관광객이 붐비는 대도시 대신, 각각의 항구에서만 느낄 수 있는 소도시 특유의 감성이 여행의 깊이를 더했다.


① 가나자와
첫 번째 기항지는 혼슈 중부의 가나자와다.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산간 마을 '시라카와고'다. 뾰족한 삼각형의 합각지붕 집들이 늘어선 이 마을은 겨울에는 눈에 덮인 채 동화처럼 변하며 아기자기한 풍경을 만든다. 실제 주민이 살던 옛집 내부를 통해 일본 전통 농가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었다. 이어 방문한 '히가시차야 거리'는 옛 게이샤들의 다실이 남아 있는 전통차(茶) 골목이다. 골목 양옆으로는 금박 공예품점, 일본식 찻집, 갤러리들이 이어져 있다. 거리에서는 반짝이는 금박 아이스크림과 전통 그릇들이 눈길을 붙잡았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겐로쿠엔(兼六園)' 은 일본 3대 명원 중 하나로 '육덕(六德)을 겸비한 정원'이라는 이름처럼 웅대함과 고요함, 인공과 자연의 조화가 절묘하다. 연못을 중심으로 다리와 석등, 송림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을 즐길 수 있다.


② 마이즈루&교토
두 번째 기항지 마이즈루에서는 교토의 고전미를 품은 명소들을 하루 동안 둘러봤다. 1시간 반 가량 이동해 방문한 곳은 황금빛 사찰 '금각사(金閣寺)'다. 금박으로 덮인 3층 누각이 연못 위에 반사되어 황금빛으로 물드는 풍경이 압도적이다. '아라시야마 대나무숲'은 대나무들이 하늘로 곧게 뻗은 숲길을 걸으며 마음의 여유를 되찾을 수 있다. 숲길 끝에는 사랑과 인연의 신사로 알려진 '노노미야 신사(野宮神社)' 가 모습을 드러낸다. 관광객 대부분이 잠시 걸음을 멈추고 손을 모았다. 마지막으로 들른 '텐류지(天龍寺)'는 아라시야마 일대에서 가장 규모가 큰 선사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있다. 고요한 정원과 고산수 양식의 연못이 인상적으로 '교토 최고의 정원'으로도 불린다.


③ 사카이미나토
세 번째 기항지 사카이미나토는 일본 서해안의 조용한 어촌마을로, 항구를 중심으로 수산업이 발달한 지역이다. 항구 인근의 수산시장에서는 방금 잡은 생선과 조개, 문어 등을 직접 보고 구매할 수 있으며, 신선한 해산물 요리 또한 즐길 수 있다. 또 사카이미나토가 특별한 이유는 요괴 마을, '미즈키 시게루 로드' 덕분이다. 인기 만화가 미즈키 시게루의 작품 속 캐릭터를 모티브로 한 동상과 벽화가 거리 곳곳에 자리하고 있어, 마치 만화 속 세상을 거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주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작은 가게와 카페, 요괴 관련 기념품점이 이어져 있어 가족 단위 여행객에게도 색다른 체험이 된다.
◆무한한 가능성 품은 한국 크루즈 산업
"크루즈의 목적지는 크루즈, 이 안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현재 한국 크루즈 산업은 초기 단계지만 빠르게 주목받고 있다. 국내 크루즈 산업 업계에서는 한국시장의 인구 대비 이용경험자수는 적지만, 잠재 수요가 충분하다고 전망하고 있다. 크루즈 여행은 앞으로 단순 관광을 넘어 다양한 세대와 목적에 맞춘 맞춤형 여행 상품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된다.
전 세계 크루즈 여행객 수는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9년 약 2천970만 명에 달했으며, 팬데믹 이후 운항 재개와 수요 회복으로 최근에는 이전 규모보다 14~17% 증가한 수준까지 확대됐다. 캐리비언이 포함된 북미지역이 시장의 절반을 차지하지만, 아시아 크루즈 수요도 점차 늘고 있다. 현재 한국은 5천만 명 인구 중 0.1%인 약 5만 명이 크루즈를 이용하며, 국내 출발 크루즈 이용객은 2만 명, 나머지 3만 명은 해외 출발 크루즈를 선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주요 목적지는 싱가포르, 동남아시아, 지중해, 알래스카 순이다.

한국 크루즈 시장의 매력은 편리한 이동과 '올인클루시브(All Inclusive)' 여행 경험에 있다. 크루즈는 숙박, 식사, 공연, 기항지 관광이 모두 포함된 패키지 상품이지만, 승객이 원하는 일정과 활동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언어 장벽이나 해외 여행 경험이 부족한 중장년층, 자유로운 여행을 원하는 젊은층 모두에게 적합한 관광 상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국내보다 수요가 훨씬 많은 미국의 크루즈 상품은 연령대와 취향에 따라 더욱 세분화된다. 젊은층은 캐리비안의 액티비티 중심을 선호하고, 중장년층은 알래스카 등 자연과 문화 체험 중심 상품에 집중한다. 또 가족 단위 승객은 디즈니 크루즈 등 테마형 여행을 찾는다. 이뿐만 아니라 학술회가 개최되는 아카데미 크루즈, 학점을 인정받을 수 있는 대학생 겨냥 유니버시티 크루즈, 거주 목적의 분양형 레지던스 크루즈, 소형 선박을 통한 탐험형 익스페디션 크루즈 등 전문화된 상품이 다양하게 운영되고 있다.
국내 크루즈 산업의 미래 성장 가능성은 충분하다. 특히 한국 출발 크루즈는 해외 출발 상품 대비 가격 경쟁력이 높아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수 있다. 글로벌 사례도 국내 크루즈 산업 성장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대만은 지난 10년간 크루즈 이용객이 5만 명에서 50만 명으로 급성장했다.


크루즈업계 관계자는 "고객의 연령대, 관심사, 성향 등을 고려한 맞춤형 상품이 갖춰지면 한국 시장도 급성장할 수 있다"며 "한국도 글로벌 선사의 크루즈선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항만 인프라와 기항지 매력도를 높이고, 계절에 따라 운항지역을 옮길 수 있는 국적 선박의 취항, 전문 인력의 확보 등과 같은 정책 지원을 뒷받침해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크루즈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숙박과 식사, 문화 체험과 항구 탐방을 한 번에 경험할 수 있는 복합 관광 상품이다. 한국 크루즈 시장이 성장하려면 공급과 수요를 연결하는 전략적 접근이 필수적이며, 잠재력을 현실로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충분하다는 평가다.
선박 위에서 하루를 보내고, 아침마다 다른 풍경 속에 눈뜨는 경험은 크루즈 여행만의 특권이다. 바다 위에서 머물지만, 정박할 때마다 새로운 도시가 손 닿는 곳에 펼쳐진다. 아직 국내에서는 낯선 여행 방식이지만, 크루즈는 분명 '다음 세대의 패키지 여행'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취재협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