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는 APEC⓶]무대 뒤의 조율자들, APEC을 움직이는 SOM과 4대 위원회

입력 2025-10-14 20:49:01 수정 2025-10-14 20:4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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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기술·무역·예산 위원회, 의제 조율의 '보이지 않는 손' 역할
경주 APEC 정상회의 핵심 의제 선정…'경주 선언'의 숨은 공신될까?

지난 3월 9일 경주화백컨벤션에서 APEC SOM1 윤성미(가운데) 의장과 에두아르도 페드로사 APEC 사무국장(오른쪽), 이지윤 한국정부 고위관리가 회의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김진만 기자
지난 3월 9일 경주화백컨벤션에서 APEC SOM1 윤성미(가운데) 의장과 에두아르도 페드로사 APEC 사무국장(오른쪽), 이지윤 한국정부 고위관리가 회의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김진만 기자

오는 31일 경북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막바지 준비에 돌입했다. 21개 APEC 회원국들은 정상회의 주요 의제 선정을 위해 지난 2월부터 총 3차례 경주, 제주, 인천, 서울 등에서 고위관리회의(SOM, The Senior Officer's Meeting)와 고위급 회담을 진행해 왔다.

다자 간 정상회의인 APEC은 자발적 협력(voluntary cooperation)과 만장일치(consensus) 방식을 중시한다. 각 회원국마다 지리·외교적 상황에 따른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회의 의제 선정을 위한 사전 조율은 필수다.

통상 APEC은 매년 연말 열리는 정상회의 전까지 고위관리회의나 고위급 회담을 연중 개최한다. 이 같은 이유로 고위관리회의 등은 회원국의 협력체인 APEC을 실질적으로 운영하면서, 하이라이트로 여겨지는 각 회원국 정상·각료회의의 방향성과 성과를 좌우하는 핵심으로 꼽힌다.

의제 채택과 공동성명은 회원국 만장일치로 결정된다. 무엇보다 회원국 간 이해 조율과 협의가 중요한 건 이 때문이다. 정상회의는 연중 진행된 준비 회의 결과를 종합하는 자리다. 무엇보다 최근 촉발되고 있는 미·중 관세 갈등이나 에너지 공급망 안정, 디지털·인공지능(AI) 협력, 저출생 극복 등 핵심 의제를 다루는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APEC의 동력, 상설위원회

APEC은 정상회의와 각료회의 아래에 경제·기술협력 운영위원회(SCE, Steering Committee on Economic and Technical Cooperation), 무역·투자위원회(CTI, Committee on Trade and Investment), 경제위원회(EC, Economic Committee), 예산·관리위원회(BMC, Budget and Management Committee) 등 4대 상설위원회(Standing Committee)를 두고 있다. 각 위원회는 APEC의 정책 방향을 구체화하고, 각 분야별 협력 사항을 조정·집행하는 핵심 기구의 역할을 한다.

SCE는 회원국 간 경제·기술 협력 사업을 총괄·조정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주요 역할은 ▷인적자원 개발 ▷디지털 격차 해소 ▷지속가능 성장 ▷여성경제활동 촉진 등 포용적 성장과 관련된 프로젝트와 APEC 내 14개 워킹그룹과 특별기구의 활동을 감독한다.

CTI는 APEC의 핵심 목표인 시장 개방 등 역내 무역·투자 자유화 등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관세절차 간소화나 규제 조화 등 실질적 통상 장벽 완화 등을 위한 집행·기술 협력의 역할을 맡는 만큼 최근 불거진 미·중 관세 경쟁 국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을지도 관심이 집중된다.

EC와 BMC는 각각 회원국 내 구조개혁 및 거시경제 정책 연구·조정, APEC 사무국 예산 편성 편성·집행 등의 기능을 갖고 있다.

위원회를 통해 논의된 안건들은 SOM을 거쳐, 각료회의나 정상회의 의제로 반영된다.

◆SOM은 정상회의 '리허설'

2025 APEC 정상회의 준비는 지난 2월 말부터 2주 간 경주에서 열린 SOM1(제1차 고위관리회의)로 막을 올렸다. SOM1에서는 회원국 경제장관 및 외교·통상 전문가들이 모여, 올해 핵심 의제인 '디지털·AI 협력', '인구구조 변화 대응', '공급망 안정화' 등 세부 논의 과제를 점검했다.

4월 제주에서 열린 SOM2는 각국의 정책 우선순위와 실질협력 방안을 조율하는 시간이었다. SOM2에서는 회원국별 데이터·AI 규제, 전력망 안정화, 중소기업 디지털화 지원 등 구체적 실무 과제가 논의됐다. 마지막으로 6월 인천에서 열린 SOM3에서는 최종 의제 조정과 공동선언문 초안 작성이 진행됐다. 각 회의에서는 논의 내용과 결론이 의제 초안으로 정리돼 정상회의 전까지 회원국별 의견 수렴을 거친다.

특히, SOM은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도시의 관련 인프라 등을 점검할 수 있는 지렛대 역할을 하기 때문에 개최도시 입장에선 매우 중요하다. 경상북도도 SOM1 개최를 통해, 각국 대표단을 입·출국 동선 등 교통, 숙박, 의료 대응 등 당면 과제를 점검하고 최종 행사인 정상회의의 성공 개최에 매진해 왔다.

SOM에서는 각국 간 이해관계가 상충할 경우 협상과 조정을 통해 합의점을 찾는다.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만장일치 합의를 통한 공동성명과 의제 확정은 각국 정책에 실질적 영향력을 미친다. 총 3차례 고위관리회의를 통해 각 회원국은 무역·투자 자유화, 디지털 기술 협력, 청정에너지 전환 등 정책 과제를 조율하며, 정상회의에서 최종 확정될 '경주 선언'의 기반을 마련했다.

◆역대 최초 문화 고위관리회의 개최

올해는 역대 APEC 최초로 문화 분야에 대한 고위관리회의가 개최되기도 했다. 지난 8월 말 경주에서 열린 'APEC 문화산업고위급 대화'에서는 올해 APEC의 주요 의제인 ▷연결(Connect) ▷혁신(Innovate) ▷번영(Prosper) 등 3개 분과를 통해 문화산업의 미래를 조망했다.

회의에선 문화산업이 APEC 핵심 성장 동력임을 재확인하고, 이를 통해 지역 성장 기회를 논의했다. 또 디지털 기술과 인공지능(AI)이 문화산업 전 단계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면서, 문화창조산업을 통해 각 회원국들의 경제발전 해법 등을 모색했다.

회의 이후에는 문화창조산업의 경제적 중요성에 대한 공동 인식, 디지털·AI 기술을 활용한 창작과 유통의 혁신 촉진 등을 골자로 하는 공동 성명을 채택했다.

회의를 주재한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APEC 역사상 처음으로 문화 분야를 경제 협력의 핵심 의제로 격상하고 본회의에서의 의제별 논의를 넘어 APEC 회원국 참석자들에게 문화 콘텐츠의 무한한 확장성과 한국 문화산업의 역량을 선 보인 시간"이라고 평가했다.

◆외교통상합동각료회의로 정책 결속

고위관리회의에 이어 진행되는 외교통상합동각료회의는 회원국 외교·통상·재무 각료가 참여하는 다자회의다. 올해 외교통상합동각료회의는 7월 서울과 경주를 오가며 진행됐으며, 정상회의 최종 의제와 공동성명 확정이 주요 목적이었다.

외교통상합동각료회의에선 디지털 경제 규제, 공급망 재편, 반도체 및 AI 분야 협력, 친환경 에너지 전환 등 회원국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물리는 사안을 집중 논의했다. 특히 미·중 간 전략경쟁과 희토류 등 핵심 원자재 공급 이슈, 글로벌 금융 안정화 방안 등 민감한 사안이 주로 다뤄졌다.

외교통상합동각료회의는 APEC의 다층적 의제 조정 기능을 수행한다. SOM에서 논의된 정책과 실무 과제를 외교·통상 정책적 관점에서 재조정하고, 회원국 간 합의점을 찾아 정상회의 공동선언문에 반영한다.

올해 외교통상합동각료회의는 만장일치 합의 원칙을 적용했으며, 일부 사안은 차기 의장국과 후속 실무회의로 넘겨 조율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를 통해 회원국 간 이견을 최소화하고, 경주 APEC 정상회의에서의 정책 일관성과 실행 가능성을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