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구민수] 내륙의 한계를 넘어

입력 2025-10-01 18:00:00 수정 2025-10-01 19: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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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부 구민수 기자

구민수 경제부 기자
구민수 경제부 기자

대구시의 주요 정책과 비전을 제시하는 대구정책연구원은 프랑스 리옹, 독일 뮌헨, 미국 오스틴 등 세계 주요 내륙거점 도시의 발전 사례를 분석한 단행본을 지난 7월 발간했다. 내륙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대구의 미래를 분석한 점이 흥미로웠다. 책을 모두 읽고 난 후 각각의 연구자들이 작성한 연구 결과가 결국 하나의 결론으로 모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주요 도시들이 내륙이라는 공간의 한계를 공항을 통해 확장했다는 점이다.

세계 주요 내륙 도시의 가장 큰 특징은 국제공항과 공항 경제권의 발달로 정리할 수 있다. 공항은 단순한 교통 인프라를 넘어 도시 성장의 핵심 자산이다. 내 세대를 넘어 내 자녀 세대까지 먹여 살릴 수 있는 미래 먹거리가 바로 공항인 셈이다. 이런 특징을 가장 잘 보여 주는 곳이 미국 오스틴이다. 오스틴은 1999년 버그스트럼 국제공항 개항 이후 본격적으로 발전을 거듭했다. 실리콘밸리의 높은 집값과 세금에 지친 기업과 인재들을 끌어들이며 2021년에는 테슬라 본사 이전까지 이끌어 냈다. 대구경북신공항 건설이 얼마나 중요하고 절실한 문제인지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공항만큼이나 대구의 공간을 확장해 줄 또 다른 미래가 다가오고 있다. 바로 북극의 얼음이 녹으면서 새롭게 생긴 뱃길, 북극항로다. 기존 수에즈 운하 경로보다 거리가 짧고 운항 시간이 단축돼 경제성이 뛰어나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세계적인 관심을 모으고 있다. 과거 항행의 자유를 내세우며 전 세계 바닷길을 지키던 미국이 자국 우선주의의 길로 돌아선 점도 북극항로의 전략적 가치를 높이고 있다. 북극의 빙하 면적이 빠르게 줄면서 이르면 2040년쯤 쇄빙선 없이도 운항이 가능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북극항로는 한반도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한반도가 세계의 중심으로 부상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한 대서양 문명사에서 한반도는 '극동'이라고 불리는 변방에 불과했으나 북극항로는 기존 질서에 균열을 내고 있다. 한반도가 바로 그 길목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홍익대 유현준 교수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간을 확보한 세력이 패권을 장악한다"며 "북극항로 시대가 열리면 울릉도가 지중해의 시칠리아섬처럼 요충지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북아프리카를 기반으로 한 카르타고와 지중해 패권을 두고 경쟁하던 로마는 지중해 가장 중심에 있는 섬인 시칠리아를 장악하면서 패권 경쟁에서 한발 더 앞서게 됐다.

한국과 북극항로의 인연은 생각보다 오래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12년 9월 역대 국제사회 지도자급 가운데 처음으로 그린란드를 직접 찾았고 2013년에는 일본, 중국 등과 함께 북극이사회 정식 옵서버로 승격됐다. 현재도 북극항로 개척은 이재명 정부의 핵심 국정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문제는 북극항로 개척 논의가 부산항에만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울산, 포항 등 동해안 항만 역시 복수 거점으로 충분히 검토할 가치가 있다. 대구정책연구원은 구미-대구-경주-포항을 연결해 북극항로 개척과 대구경북의 역할을 강조한다. 구미는 신산업 거점으로, 대구는 내륙 중추 교두보로, 경주는 관광·에너지 허브로, 포항은 국제 무역항으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라는 구상이다. 이달 말 경주에서 APEC 정상회의가 열린다. 세계의 시선이 대구경북으로 쏠린다. 세계의 중심에서 우리 자녀 세대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지금 세대들이 힘을 모아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