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창] 아름다운 동행

입력 2025-09-24 0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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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민 손수민재활의학과의원 원장.
손수민 손수민재활의학과의원 원장.

서인이는 친구들과 노는 걸 좋아하고, 요즘 유행템에도 민감한 평범한 초등학교 1학년생이다. 동시에 서인이는 태어날 때부터 편마비가 있어서 왼손을 잘 못 쓰고 뛸 때 왼다리를 전다. 서인이는 친구들이 하지 않는 치료용 깔창도 하고 밤에는 보조기도 한다. 일주일에 두 번 병원에 치료하러 오고 경직이 심해지면 한번씩 보톡스도 맞는다.

서인이가 하는 치료중에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하는 그룹치료도 있는데, 처음에는 장애가 있는 서인이와 비장애인 아이들이 함께 하는 것에 대해 비장애인 보호자들이 컴플레인할까봐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불편한 왼팔로 유치원 대표 선서도 했던 서인이가 아닌가. 나는 본인의 장애를 부끄러워 하기보다 "난 왼손이 좀 불편할 뿐"이라는 서인이의 그 자긍심이 다른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해서 보호자분들을 설득했고 그룹치료가 성사됐다.

그룹치료의 효과는 대단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그룹에 새로 들어온 현서가 본인 파트를 잘 못해서 4명이 함께 하는 과제가 실패하자 자기 때문이라고 자책을 했다. 그러자 아이들이 "현서야, 그건 니 잘못이 아니야, 선생님이 낸 과제가 어려운 거라서 실패한 거야. 게다가 너는 이거 처음이쟎아. 우리는 많이 해봤거든, 우리도 처음에는 다 실패했었어" 장애가 있는 서인이가 장애가 없는 현서를 위로하고 있었다. 마음이 찡했다.

또 한번은 양손으로 받침을 잡고 탁구공을 옮기는 게임을 하는데 아무래도 서인이는 왼손이 불편하다보니 자꾸 탁구공을 떨어뜨리고 결승선까지 가질 못했다. 승패가 걸린 게임에서 흥분한 아이들은 서인이한테 소리치기 시작했다. "왼손에 힘을 주라고! 더 잡아보라고!" 그러자 서인이도 "지금 잡고 있쟎아! 나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오!"하면서 같이 소리질렀다. 전혀 주눅들거나 위축되는 거 없이 말이다. 그 그룹 아이들은 서인이 왼팔이 불편한 걸 다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 순간 아이들은 (승패가 걸려있다 보니 순간 흥분했겠지만) '서인이는 왼팔을 못 쓰니까 어쩔 수 없어' 가 아니라 "너도 할 수 있다고! 더 해보라고!"라고 한 거고 서인이는 "나도 하고 있다고!"로 응수한 거였다. 장애가 있는 서인이를 본인과 똑같이 보는 아이들에게도 고마웠고, 상처가 될 수 있는 말에 주눅들지 않는 서인이도 정말 대견했다.

서인이 어머님은 초등학교 입학 전에 찾아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선생님, 저는 그룹을 할 거면 '너 병신이야? 왜 팔을 못 써?' 이렇게 말하는 애들하고 붙여주셨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살면서 그런 말을 듣게 될 수도 있는데 미리 여기서 예방접종을 하고 싶어서요."

이렇게 나의 환자들과 가족들은 이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스스로 예방접종을 받고, 애쓰고, 준비한다. 그러다가 무너지면 돌아서서 눈물을 닦고 다시 마음을 다진다. 하지만 같은 그룹의 우진이 어머님은 이렇게 얘기하셨다. 우진이가 매사에 소극적인데, 왼팔이 힘든 서인이가 잘 안되지만 다른 애들과 똑같이 끝까지 왼팔로 과제를 하려는 걸 보고 놀랐다고. 덕분에 우진이도 달라지고 있다고.

그야말로 아름다운 동행이 아닌가. 이 세상의 서인이와 현수, 우진이들에게 박수와 응원을 보낸다.

손수민 손수민재활의학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