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난에도 꺾이지 않고 꽃 피운 선조들의 기개…대구간송미술관 '삼청도도(三淸滔滔)' 개막

입력 2025-09-22 20:36:52 수정 2025-09-22 20:4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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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80주년 기념 기획전시
탄은 이정의 '삼청첩' 전면 최초 공개
9월 23일부터 12월 21일까지

대구간송미술관 기획전 1부
대구간송미술관 기획전 1부 '삼청첩, 조선의 자존을 지킨 시대의 보물' 전시 모습. ⓒ대구간송미술관
대구간송미술관 기획전 2부
대구간송미술관 기획전 2부 '탄은, 대나무로 세상을 울린 한 사람' 전시 모습. ⓒ대구간송미술관
대구간송미술관 기획전 4부
대구간송미술관 기획전 4부 '불굴, 붓 끝에 서린 항일의 결기' 전시 모습. ⓒ대구간송미술관

세 가지 맑음을 뜻하는 삼청(三淸)은 군자가 가져야 할 올곧은 정신을 나타내는 매화·대나무·난초를 의미한다. 삼청은 때로는 삶의 태도와 이상을, 때로는 우국과 충절, 기개를 드러내는 소재로 그림 속에 등장해왔다.

23일부터 대구간송미술관에서 열리는 광복 80주년 기념 기획전 '삼청도도(三淸滔滔)-매·죽·난, 멈추지 않는 이야기'는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삼청이 등장한 작품 35건 100점을 4부로 나눠 선보인다. 내우외환에도 꺾이지 않았던 우리 민족의 정신적, 문화적 힘을 삼청을 통해 새롭게 되새겨보는 전시다.

가장 주목할만한 작품은 세종대왕의 고손자인 문인화가 탄은 이정의 '삼청첩'. 이정은 임진왜란 때 왜적에 칼을 맞고 부상에서 회복한 뒤 자신의 건재함을 알리고 무너진 조선의 자존과 사기를 북돋우고자 1592년 삼청첩을 완성했다.

검은 비단에 금니로 그린 삼청은 그 자체로 우아하고 정교한 필치를 보여준다. 특히 이정이 그린 매·죽·난에 당대 최고 문인이었던 최립, 한호(한석봉), 차천로가 글을 더해 '일세지보(一世之寶)', 즉 한 시대의 정신을 담은 보물로 불린다.

이 삼청첩은 병자호란 때 화재로 소실될 위기를 겪었고 19세기 일제 침탈을 겪으며 일본으로 반출되기도 했으나, 1935년 간송 전형필 선생이 거금을 주고 구입해 다시 우리나라의 품에 안겼으며 2018년 보물로 지정됐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삼청첩의 56면 전면이 최초로 공개된다. 그간 공개되지 않았던, 그림 일부가 불에 탄 흔적이나 송시열의 발문 위에 일본군이 삼청첩 구입 경위를 쓴 흔적 등을 고스란히 볼 수 있다. 삼청첩이 전시된 1부 전시장은 하프거울(빛의 일부만 반사하고 일부는 투과)로 둘러싸여, 작품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게 한다.

대구간송미술관 기획전 1부
대구간송미술관 기획전 1부 '삼청첩, 조선의 자존을 지킨 시대의 보물' 전시 모습. ⓒ대구간송미술관
대구간송미술관 기획전 3부
대구간송미술관 기획전 3부 '절의, 먹빛에 스민 선비정신' 전시 모습. ⓒ대구간송미술관
대구간송미술관 기획전 2부
대구간송미술관 기획전 2부 '탄은, 대나무로 세상을 울린 한 사람' 전시 모습. ⓒ대구간송미술관

2부는 이처럼 조선 묵죽화의 기준을 정립한 이정의 작품 세계를 좀 더 깊게 들여다본다. 내년 이정 서거 400년을 앞두고 그의 미술사적 위상을 재조명하는 전시다. 삼청첩 제작을 계기로 독자적인 화풍을 정립해 나간 40대 때의 작품부터 70대에 남긴 마지막 작품까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붓을 놓지 않았던 그의 대표작 13건 15점을 선보인다.

세찬 바람에도 꼿꼿이 선 모습이 인상적인, 한국 묵죽화 최고의 명작으로 손꼽히는 '풍죽'을 독립된 공간에서 영상·음악과 함께 감상할 수 있으며 그가 남긴 유일한 인물화 '문월도'도 볼 수 있다.

3부에서는 국난 속 기개와 결기를 지켜나간 조선의 절의지사들이 남긴 삼청 작품 10건 16점을 소개한다. 이덕형·오달제의 우국과 충절의 정신, 조속의 청백리 정신, 이인상의 고결한 선비 정신 등이 삼청 작품에 담겼다.

4부는 독립과 광복에 대한 염원을 실천에 옮겼던 항일지사의 삼청 작품 11건 13점이 전시된다. 상해 임시정부에서 활동한 김진우의 창칼을 닮은 묵죽화를 비롯해 대한광복회 회원으로 군자금 모금 활동을 벌였던 대구 출신 독립운동가 김진만의 작품 등이 전시장에 펼쳐진다.

전인건 대구간송미술관 관장은 "광복 80주년을 맞아, 시대에 따라 절의지사들이 남긴 그림을 통해 그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와 가치를 전달하는지 되돌아보는 전시가 될 것"이라며 "근현대사 속 수많은 애국지사를 배출하고 독립운동을 이끈 주요 지역인 대구에서 광복의 의미를 기리는 전시를 선보이게 돼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배우 임수정과 방송인 마크 테토가 국·영문 오디오 가이드를 녹음해 전시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한편 대구간송미술관은 기획전을 개막하며 상설전시 등 일부 작품도 개편했다. 상설전이 열리고 있는 1전시실은 도자를 제외한 서화 작품을 전면 교체해, 신윤복의 혜원전신첩 중 '청금상련'을 비롯한 4점과 김정희의 '황화주실' 편액 등을 감상할 수 있다.

하나의 작품과 독대할 수 있는 명품전시실에는 윤두서의 '심산지록(深山芝鹿)'이 걸렸다. 시대적 상황과 자신의 삶을 사슴과 측백나무, 영지 등의 소재를 통해 얘기하는 작가의 깊은 뜻을 엿볼 수 있다. 이와 함께 간송의 방에는 간송 전형필이 그린 '편석위양', 한국화의 거장 제당 배렴이 간송에게 신년 선물로 준 '폐월도' 등이 새롭게 관람객을 맞는다.

기획전은 12월 21일까지 이어지며 전체 관람료는 성인 1만1천원, 청소년·학생 5천500원이다. 053-793-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