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국 출신이 선진국 출신을 통치하는 나라 [가스인라이팅]

입력 2025-09-21 03:00:05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챗GPT 생성 이미지
챗GPT 생성 이미지

최근 열린 KBO 신인 드래프트에는 역대 최다인 1천261명이 지원했다. 실제 지명된 선수는 110명이었다. 확률로 따지면 8.7%다. 어린 시절부터 인생 절반 이상을 야구에 바친 선수가 프로 무대에 설 가능성은 10%도 안 된다.

대중은 매년 피 터지는 경쟁을 뚫은 신인 110명이 무대에 오르는 장면을 주로 기억한다. 그런데 프로야구는 들어오는 만큼 나간다. 능력 있는 신인이 들어오면 누군가는 나가야 한다. 새로운 피가 수혈돼야 그 리그는 미래를 보장 받는다. 차갑지만 이런 순환 구조 덕분에 프로야구는 40년 넘게 활력을 유지해 왔다.

정치는 어떨까. 제22대 국회의원 초선 의원 숫자는 131명으로 제17대 국회 이래 최저였다. 제17대 국회 땐 초선만 188명이었다. 국민을 한 줄로 세웠을 때 딱 가운데 사람이 46.7세인데 제22대 국회의원 평균 연령은 56.3세였다. 30세 미만 의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금 한국 정치는 후진국 출신 세대가 선진국 출신 세대를 통치하는 구조가 돼 버렸다. 정치권을 주도하는 56.3세가 스무 살이 됐을 때 한국 1인당 GDP는 약 6천 달러였다. 오늘의 30대가 스무 살이었을 때 한국 1인당 GDP는 3만 달러였다.

GDP로 지금 세대가 기성 세대 보다 능력이 있냐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다. 하지만 국내 박사 학위로 대학 교수가 되던 그 시절과 달리 지금은 외국 유명 대학을 나와도 교수 자리 하나 얻기 힘든 시대라는 걸 교수들도 인정한다. 졸업장만 있으면 취직이 되던 과거의 영광은 없다. 지금은 졸업장에 높은 성적, 외국어 점수, 기타 활동까지 완벽해도 취직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초경쟁 시대다. 쉽게 말해 "한국 음악이 빌보드 차트에 진입하는 날이 올까?"하던 세대가 빌보트 차트 1위 경쟁을 하는 세대를 통치하고 있는 셈이다.

NBA 스타 마이클 조던과 르브론 제임스 가운데 누가 더 위대한 선수냐고 하면 기성 세대는 십중팔구 마이클 조던을 꼽는다. 조던은 평생 3만점 쯤 넣었는데 르브론은 5만점을 넣었다. 평균 어시스트, 평균 리바운드, 3점슛, 야투율 모두 르브론이 압도한다. 마이클 조던이 르브론에 명함을 내밀 수 있는 건 평균 득점 정도다. 그래도 그들은 여전히 "너희들이 마이클 조던의 클러치 능력을 몰라서 그래"라고 자위한다.

사실 세대나 나이 문제가 큰 건 아니다. 프로 스포츠였다면 이미 은퇴했을 능력의 선수가 정치판에서는 여전히 '다음 시즌'을 외치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게 문제다. 정치에 프로 리그 같은 은퇴나 방출이 없어서다. 유권자 심판을 받지 않는 한 무능해도 버틸 수 있는 구조가 고착화돼 있다. 여전히 조던만 붙잡고 있는 시대에 르브론을 위한 자리는 없다.

국민이 바라는 건 단순하다. 능력 있는 신인이 실제 드래프트로 선발되는 장면이다. 프로스포츠 팬들이 새로운 선수의 등장에 미래를 상상하듯 국민도 새로운 얼굴을 보고 국가의 미래를 상상하기 때문이다. 정치가 배워야 할 것은 무기력한 선수가 물러나고 새로운 세대가 기회를 얻는 프로 스포츠식 순환 구조다. 다음 선거엔 드래프트가 있을까. 정치권이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면 정치라는 경기장엔 그 누구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신단아 전 대통령실 행정관

신단아 전 대통령실 행정관
신단아 전 대통령실 행정관

* 가스인라이팅(Gas Enlighting)은 매일신문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칼럼 공간입니다. '가스라이팅'은 1930년대 가스등을 사용하던 시절 파생된 용어입니다. 가스등을 조금씩 어둡게 해 누군가를 통제하는 걸 의미하는데요 '가스인라이팅'은 그 반대로 등불을 더 밝게 비춰주자는 뜻입니다. 젊은이들의 시각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자주 선보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