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리콥터 맘'이 된 한국 [가스인라이팅]

입력 2025-09-18 22:29:06 수정 2025-09-18 23:3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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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밤 거리엔 운전자 없는 택시가 돌아다닌다. 베이징의 아침 출근길에선 시민들이 무료로 자율주행 택시를 이용한다. 세계는 이미 자율주행 택시 시대로 진입했는데 우리는 여전히 밤에 택시를 잡지 못해 휴대전화를 들고 화면만 바라보고 있다.

20년째 고립된 택시운송산업 탓이 크다. 2004년 우리는 택시 공급 과잉을 막겠다며 택시 총량제를 도입한 바 있다. 경쟁이 막혀 그대로 고령이 된 택시기사들이 심야 운행을 거부하는 등의 이유로 우린 아직도 야간 택시를 잡을 때 불편함을 겪는다.

한국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주요 선진국에선 우버 같은 승차 공유 서비스가 택시운송산업의 90%를 차지한다. 경쟁이 기본이라 기사 평점 도입 등 운송 서비스 품질은 나날이 좋아진다. 그에 반해 한국은 고작 6%다. 전 세계에서 우버 혁명이 일어날 때 우리가 한 건 '타다 금지법'을 만드는 것이었다.

'과보호'의 대가는 결국 우리에게 돌아온다. 쌀 소비는 매년 줄어드는데 정부는 농가 보호를 외치며 남는 쌀을 계속 사들였다. 쌀값은 20년간 38% 올랐고 소비자는 비싼 쌀을 먹어야 했다. 심지어 여당이 최근 통과시킨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따르면 앞으로 정부는 남는 쌀을 의무적으로 매입해야 한다. 농가 입장에선 더 맛있고 품질 좋은 쌀을 심을 이유가 없다.

우유 가격도 마찬가지다. 2013년 도입된 원유가격연동제는 사실상 '우유 가격 보장제'였다. 낙농가는 수요와 무관하게 안정적 수입을 보장 받았고 혁신 동기는 사라졌다. 우윳값이 치솟았지만 우리에겐 선택권이 없었다. 그 대가는 우리 지갑에서 나갔다.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선진국이 수조 원을 쏟아부으며 미래를 선점할 때 우리는 기존 산업을 보호하느라 혁신의 싹을 틔우지 못하고 있다. 보호라는 명분으로 미래를 버렸다. 역사는 명확한 교훈을 준다. 변화를 거부한 나라는 도태됐고 혁신을 택한 나라만 살아남았다.

'헬리콥터 맘'이란 말이 있다. 군대 간 아이가 먹는 삼겹살에 비계가 너무 많다고 군에 전화해서 따지고 취직한 아이를 대신해 회사에 사직서를 내주는 '자녀 과보호형 엄마'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런 과보호는 독립적인 자아 형성을 망친다. 올 1월 서울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않은 서울 지역 청년 비율은 2000년 46.2%에서 2022년 55.3%로 증가했다.

가정에서 과보호가 기본이 되면 아이의 독립이 늦어진다. 아이의 독립이 늦어질수록 노년의 빈곤은 더 빠르게 다가온다. 국가도 부모와 다를 바 없다. 빈곤한 나라에서 사는 게 얼마나 서러운지 세상에서 가장 또렷이 기억하는 나라가 한국이다. 그런데 먹고 살 만해진 지 얼마나 됐다고 나라를 이렇게 돌리나 싶다. 오늘 밤도 택시를 기다리다 한숨만 나온다.

원종현 프리드먼연구원 주임연구원

원종현 프리드먼연구원 주임연구원
원종현 프리드먼연구원 주임연구원

* 가스인라이팅(Gas Enlighting)은 매일신문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칼럼 공간입니다. '가스라이팅'은 1930년대 가스등을 사용하던 시절 파생된 용어입니다. 가스등을 조금씩 어둡게 해 누군가를 통제하는 걸 의미하는데요 '가스인라이팅'은 그 반대로 등불을 더 밝게 비춰주자는 뜻입니다. 젊은이들의 시각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자주 선보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