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연극<해리엇>은 특별하다. 접근성 연극이기 때문이다. 출연자는 비장애 배우들이고, 극 관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수어 통역, 자막, 음성 해설과 스크린 해설, 점자 브로슈어를 제공하고 있다. 장애 관객을 위한 작품으로 한정하지 않고, 모든 관객이 감각적으로 예술적 언어로 체화될 수 있도록 재구성한 작품이다. 시각장애인은 사물의 소리, 배우들의 감정으로도 충분히 서사를 상상할 수 있고, 청각이 불편한 관객은 자막으로도 무대와의 충분한 소통이 가능하다. 수어 통역과 배우들의 수어적 감정발화로도 작품을 이해하는데 불편함이 없다. 접근성 연극의 특징이다. 그만큼 <해리엇>은 사회적 시선으로 구별되는 장애/비장애인을 관객으로 특정할 수 없는 무경계의 작품이다. 모두의 관객은 서사를 소리, 몸짓, 시각적 기호를 통해 작품을 감각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무대 뒤편의 연주자는 첼로와 퍼커션, 수어 배우들의 움직임으로 텍스트를 넘어선 다중의 리듬을 생산한다.
김지원 연출은 "어제는 시각장애인 여섯 분이 터치 투어를 하셨는데, 공연을 보신 뒤 작품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게 됐다."라고 말했다. 터치 투어는 공연에 등장하는 의상, 무대, 다양한 오브제들을 촉각으로 체험하는 프로그램인데, 작품 이해 차이를 좁히는 역할을 하고 만족도도 높다. 감각적으로 장면, 배우들의 소리와 자막, 감정의 생산성으로도 충분히 작품을 감상하고 상상할 수 있다. 이야기의 배경은 바닷가 인근 드림 실내 동물원이다. 175년을 산 거북 해리엇, 동물원에 들어온 자바 원숭이 찰리, 권력을 독점하는 개코원숭이 스미스, 죽음이 임박해 오는 흰 너구리 올드가 주요 등장인물이다. 동물원은 사회구조이다. 단절과 차별의 공간이자, 상생과 공존을 위한 사회적 장(場)을 상징화한다. "동물원은 인간이 만든 우리야"라고 말하는 해리엇 대사에서 제도와 권력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 사회의 모순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권력을 유지하려는 개코원숭이 스미스, 엄마와 숲에 살다가 사냥꾼들에게 잡혀 온 자바 원숭이 찰리는 인간과 동물 세계에서 정체성에 혼돈을 느끼고, 세상 살아가는 이치를 깨달은 흰 너구리 올드, 죽음이 임박해 오면서 자유를 갈망하는 해리엇은 연대와 협력, 포용의 리더십과 상생과 공존의 가치를 보여준다. 해리엇이 살아가는 '드림 동물원'은 인간 세상과 동일하다. 이들은 갇힌 동물원에서 자유를 갈망하면서도 권력을 탐하고 차별과 문명의 폭력이 난무하면서도 결국 이들이 깨닫게 되는 것은 차별 없이 공존할 수 있는 평등과 자유의 세상이다. 주인공 해리엇을 통해 그 의미를 스며들게 한다,

◇<해리엇>이 보여준 새로운 접근성 무대
<해리엇〉은 새로운 장르로서의 접근성 연극이라 할만하다. 이 작품에서는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는 무의미하다. 수어는 언어이며, 자막은 시각적 장치이고, 음성 해설은 서사적 해설이다. 배리어프리의 사회적 담론을 접근성 연극으로 한 단계 확장한 개념으로 작품은 이러한 불편하지 않는 배려가 무대의 구조를 이루고 있다. 김지원 연출은 동화적 서사를 통해 자유, 차별, 연대와 공존, 상생과 협력, 약자와의 보편적 동행이라는 질문을 통해 연극의 형식을 접근성 연극 장르로 확장 시킨다. 관객 누구나 불편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무대를 구조화하고, 동적인 동선과 움직임을 최소화한다. 배리어프리 공연에서는 수어 통역사가 무대 앞 좌우에서 극 중 인물의 대사를 수어로 통역하고, 스크린을 통해 문자로도 작품이 감각될 수 있도록 장면 설명, 음악, 등장인물 소개와 대사를 자막화한다. 작품에 따라 집중도가 떨어질 수 있고 편의성은 높일 수 있는데, 접근성이 높은 <해리엇>에서는 이러한 편의성보다 한발 더 나아가 극장 입구부터 무대를 300분의 1로 축소한 모형 무대 미니어처, 의상, 주인공의 특징을 손으로 감각할 수 있도록 체험 환경을 설치해, 객석 좌석과 장애 관객의 이동 경로가 평등하게 마련되어 있다.
공연에서는 배우가 무대에서 연기를 수행하는 동안 그림자 소리를 동행해 시각·창작적 접근성을 높였다. 수어 통역사의 그림자 역할은 배우들과 분신처럼 움직이는데, 단순히 대사를 전달하는 수어 통역자가 아니라 '역할자'로 등장한다. 다른 배우가 대사를 할 때 수어로 통역을 하기도 하고, 역할자로서 대사를 직접 감정화 하기도 한다. 수어 통역사가 역할자로 극중인물로 변주되는데도, 작품은 매우 안정적이다. 작품에서 그림자 소리 역할로 접근성을 극대화한 <해리엇>에서는 배우들의 동적인 동작과 과도한 등 퇴장을 축소했음에도 작품의 구조를 전달하는 데 무리가 없다. 음악을 크게 하지 않고, 조명이 현란하지 않으며, 포그(안개) 사용을 자제하고 동선을 줄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김지원 연출은 "접근성 높은 공연이 모두를 위한 공연이지만, 어쩌면 모두에게 조금씩 부족한 공연일 수도 있어요. 무대 위에서 마음껏 움직일 수도, 배우들의 움직임을 다이나믹하게 보여줄 수도 없는 이유는 서로의 다른 감각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림자 소리'들의 수어를 잘 보이게 하도록 오히려 배우들은 꽁꽁 묶여 있는 것 같은 느낌일 수도 있죠. 조금씩 배려하고 부족하지만, 함께 즐거움을 추구하는 공연 형식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림자 소리' 역할을 극 구조로 발전시켜 접근성을 높인 공연이지만, 공연을 이해하고 관극하는 데 있어 관객들의 만족도는 매우 높다.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배려와 평등의 원칙에서 완성되는 모두의 공연"뮤지컬 배우에서 접근성 연출가로"
김지원 연출은 현대극장에서 1993년 <에비타>로 데뷔해 활동해 온 뮤지컬 배우다. 접근성 연극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2004년 장애인 봉사활동에 갔다가 우연한 기회에 연극을 하게 되면서부터다. "자원봉사 갔어요. 중증 장애인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일주일 뒤 연극을 해야 하는데 연출이 도망갔대요. 힘들어서. 저보고 연출을 좀 해달라고 해서 이분들과 시작하게 된 거죠." 중증 장애인들과 처음으로 공연한 <생일 파티>는 김지원 씨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장애인을 위한 연극, 무장애인을 위한 작품,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연출가로 운명을 바꿔놓았다.
일반 배우들과 작품을 할 때는 공연의 접근성을 높일 수 있도록 작품을 구성하고 직접 각색과 연출을 한다. 장애인들과 창작 작업을 할 때는 일반 관객들을 위한 접근성을 높인다. "장애인분들이 연극을 하시면 이게 재활과 치료가 돼요. 특히 중증 장애인분들이 대사 연습을 하려면 말을 계속 연습해야 하잖아요. 연습할 때 젓가락을 꽉 물고 발음·호흡하는 연습 과정을 겪다 보니까 굉장히 많이 늘더라고요. 연출로도, 참여자로도 성취감이 높으니 접근성 연극은 저한테 운명처럼 하게 됐어요." 접근성 연극이 보편화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물었다. "접근성 연극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가 있어야 해요. 특별한 관객들을 위한 보조 장치가 아니라, 보편적인 공연 형식으로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이런 사회적 변화를 위해서는 아이들과 학생들이 자주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성인이 되면 이러한 공연 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고, 사회가 장애·비장애의 경계 없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요? 대한민국 사회도 다양한 언어와 다양한 소통 방법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느낀다면, 정말 성숙한 사회인 거죠. 접근성을 높이는 시설과 물리적 접근성도 달라질 것이고, 인식도 변화될 겁니다. 아이들과 학생들을 위한 접근성 교육 시설들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접근성 연극의 보편화를 위한 과제
강동아트센터는 접근성 연극을 자체 기획할 정도로 관심이 높다. "강동아트센터에서 제 연극을 몇 번 보시고, 강동에서도 접근성 연극을 했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강동구에도 장애 시설과 가족들이 많고, 극장 공연 문화도 달라지고 있는 만큼 개선도 필요하고, 공연장 문화가 비장애인들의 점유 문화 공간이라는 인식이 바뀌고 있는 이유도 있겠죠."장애인편의증진법이 개정되면서 공공극장은 의무적으로 안내 서비스, 수화 통역, 점자 안내, 무대 접근용 경사로 설치 등의 기준이 마련되면서 배리어프리 공연도 활성화되고 있다. 접근성을 높인 전문 공연과 작품들은 여전히 더디다. 다행인 것은 2023년에'모두 예술극장(Modu Art Theater)'이 개관하면서 장애인들의 창작과 접근성 공연에 대한 상당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김지원 연출은 "접근성 연극이 이제는 공연의 한 장르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접근성 연극은 특별한 연극이 아니라 한 장르로 인식된다면 공연예술계에서도 많은 창작 환경의 변화가 올 수 있다고 생각돼요."라고 말했다. <해리엇>은 '함께 살아가는 사회적 가치'가 무엇인지를 동화 판타지로 그려내고 있으며, 배우들은 접근성 연극에 최적화될 정도로 숙련됨을 보여준다. 작품은 한윤섭 작가의 동화 『해리엇』(문학동네, 2011)을 김지원 연출이 접근성 연극으로 각색했다. <해리엇>은 공공·국립극장에서 접근성 연극의 인식 개선을 위한 작품으로 기획되어 초·중·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공연된다면 사회적 의미는 크고, 접근성 공연(예술)에 변화도 높을 듯하다.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