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선출 권력' 발언에서 시작된 논란이 여당의 '대법원장 사퇴 요구'로 이어지더니 야권의 '대통령 탄핵 사유'로까지 번지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한마디로 '누가 더 높냐'다. 지금까지는 삼권분립에 입각한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 간 견제와 균형이 초등학생도 아는 상식이었는데 이 대통령의 '선출 권력 서열' 발언으로 난리벅구통이 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 11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내란특별재판부 위헌(違憲) 논란과 관련해 "사법부 구조는 사법부 마음대로 정하는 게 아니다"면서 "대한민국에는 권력의 서열이 분명히 있다. 최고 권력은 국민 그리고 직접 선출 권력, 간접 선출 권력"이라며 서열을 매겼다. 여기서 직접 선출 권력은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과 입법부의 국회의원을, 간접 선출 권력은 대법원장 등 사법부를 일컫는다.
이튿날 법원의 날 기념식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이 "재판의 독립이 확고히 보장돼야 한다"고 하자,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인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술 더 떠 "헌법 수호를 핑계로 사법 독립을 외치지만 속으로는 내란범을 재판 지연으로 보호하고 있다. 사법 독립을 위해 자신이 먼저 물러남이 마땅하다"며 사퇴를 촉구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도 "대법원장은 반(反)이재명 정치 투쟁의 선봉장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은 직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거들었다.
대법원장 사퇴 요구 여파는 야권의 '대통령 탄핵 사유'로까지 확산됐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15일 사퇴 요구와 관련해 "대통령이 자기 범죄 재판 막기 위해 대법원장 쫓아내는 것은 중대한 헌법 위반이고 탄핵 사유"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破棄還送)된 이 대통령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을 거론하며 "그것이 두려운 대통령실이 조 대법원장을 사퇴시키고 그 이전의 유죄 판결을 뒤집으려 할 것"이라고 직격했다. 나경원 의원도 "대법원장 사퇴를 압박하는 것 자체가 헌정사에 있을 수 없는 월권이다. 발상 자체가 가히 경이롭다"고 꼬집었다.
삼권(三權)에 서열이 있다는 말부터 말이 안 된다. 국가의 권력을 굳이 '3개 축'으로 분리한 이유가 뭐겠는가. 국립국어원 표준대사전에도 '국가의 권력을 입법, 사법, 행정의 삼권으로 분리하여 서로 견제하게 함으로써 권력의 남용을 막고,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는 국가 조직의 원리'라고 정의하고 있다. 서열이 정해져 있다면, 상위 권력의 정점인 행정부의 대통령을 하위 서열인 사법부가 탄핵심판에 의해 파면한 것은 뭐란 말인가. 국회의원의 대법원장 사퇴 요구는 더 가관이다. 아무리 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입법기관이라지만 삼권분립의 한 축의 수장에게 나가라 마라 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대통령이 '직접 선출 권력이 높다'고 하니 여당은 기다렸다는 듯 '대법원장 나가라'고 장단 맞추는 이런 코미디를 국민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짜고 치는 핑퐁 게임도 아니고 도대체 뭣 하는 짓인가. 미국 관세 협상도 제대로 매듭 짓지 못한 상황에서 돈 주고 공장 지어 주고 현지 인력 채용까지 해 주러 간 우리 국민이 체포, 구금되는 사태까지 벌어진 이 중차대(重且大)한 시점에 국내에서 권력 서열 논쟁이나 하고 있는 정부 여당은 도대체 뭐 하는 곳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