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썩어가는 숲' 재선충병, 백두대간까지 번질라

입력 2025-09-15 16:3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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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년 소나무도 누렇게 말라…주민들 "한숨뿐"
안동 전역 반출금지, 4년 만에 피해 규모 4배 폭증
영주·봉화·울진까지 번진 재앙, "생태계 붕괴 우려"

지난 12일 오전 찾은 안동시 남선면 현내리 마을 입구. 수백 년을 버텨온 입구의 거대한 소나무마저 잎이 노랗게 바뀌어 있었다. 손병현 기자
지난 12일 오전 찾은 안동시 남선면 현내리 마을 입구. 수백 년을 버텨온 입구의 거대한 소나무마저 잎이 노랗게 바뀌어 있었다. 손병현 기자

지난 12일 오전 찾은 안동시 남선면 현내리 마을 입구. 마을을 감싸던 산은 이미 초록을 잃고 누런 얼룩으로 가득했다. 수백 년을 버텨온 입구의 거대한 소나무마저 잎이 노랗게 바뀌어 있었다.

주민 박모(75·여)씨는 "50년 넘게 살았지만 이렇게 심각한 건 처음"이라며 "지난해까진 멀쩡하던 나무가 올해 들어 급격히 변했다"고 말했다. 세월을 견뎌온 나무의 고사에 마을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솔향기 사라지고 산은 썩는 냄새뿐"

안동의 숲은 더 이상 피난처가 아니다. 시 전체 산림 면적 10만6천518㏊ 가운데 절반 이상인 5만4천㏊가 소나무림이다. 3천600만그루에 달하는 소나무가 자생했지만, 지금은 안동 전역이 소나무류 반출금지구역으로 묶였다. 불과 몇 년 전까진 청정지로 불리던 길안·임동 일대까지 지난해 추가 발생하면서 사실상 시 전 지역이 병해에 노출됐다.

주민 김모(80대)씨는 "어릴 적 솔향기 가득하던 숲이 이젠 산이 썩는 냄새로 바뀌었다"며 "벌초하러 올 때마다 달라진 풍경에 마음이 철렁한다"고 했다. 이모(72)씨도 "벌목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우리가 지켜온 숲이 사라진다 생각하면 잠도 안 온다"고 토로했다.

◆5년 만에 피해는 4배나 커져…경북, 전국 절반

피해 속도는 가팔랐다. 안동에서 재선충병으로 고사한 소나무는 2021년 2만6천그루였지만 2023년 13만그루로 폭증했다. 올해 들어서만 11만그루 이상이 쓰러졌다. 불과 5년 만에 피해 규모가 4배 늘어난 것이다.

특히 경북 전체 피해는 전국의 절반에 달한다. 최근 5년간 전국에서 고사한 413만그루 가운데 186만그루가 경북에서 발생했다. 방제 예산도 지난해 497억원에서 올해 1천148억원으로 두 배 이상 늘렸지만 확산세는 꺾이지 않았다.

◆영주·봉화·울진으로 번진 재앙의 그림자

전문가들은 솔수염하늘소가 옮긴다지만 실제 확산은 인위적 이동이 주범이라고 지적한다. 최근 5년간 신규·재발생 30건 중 22건이 목재나 땔감 이동 때문이었다. 지난해 울진에서는 보관된 땔감에서 매개충 흔적이 확인되기도 했다.

한 산림 전문가는 "안동에서 영주, 봉화, 울진으로 퍼질 경우 백두대간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며 "결국 수종 전환이 가장 현실적이고 장기적인 대책"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피해는 이들 시군으로 번지고 있다. 영주는 2021년 206그루였던 피해가 지난해 4천275그루, 올해는 9천771그루로 불었다. 봉화는 같은 기간 1그루에서 127그루로, 울진도 올해 처음으로 10그루 피해가 확인됐다.

이 지역 주민들은 "안동만의 문제가 아니다. 북부 산림벨트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며 한목소리로 위기감을 호소했다.

안동시 남선면 현내리 마을 입구에 설치된 소나무류 반출금지구역 안내판. 손병현 기자
안동시 남선면 현내리 마을 입구에 설치된 소나무류 반출금지구역 안내판. 손병현 기자
지난 12일 오전 찾은 안동시 남선면 현내리 마을 입구. 마을을 감싸던 산은 이미 초록을 잃고 누런 얼룩으로 가득했다. 손병현 기자
지난 12일 오전 찾은 안동시 남선면 현내리 마을 입구. 마을을 감싸던 산은 이미 초록을 잃고 누런 얼룩으로 가득했다. 손병현 기자
지난 12일 오전 찾은 안동시 남선면 현내리 마을 입구. 마을을 감싸던 산은 이미 초록을 잃고 누런 얼룩으로 가득했다. 손병현 기자
지난 12일 오전 찾은 안동시 남선면 현내리 마을 입구. 마을을 감싸던 산은 이미 초록을 잃고 누런 얼룩으로 가득했다. 손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