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와 함께 나누고픈 북&톡] 눈부신 쉼표 하나, 삶을 바꾸는 여행

입력 2025-09-16 0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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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관련 자료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여행 관련 자료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는 말, 요즘 부쩍 많이 듣게 됩니다. 하루쯤은 아무도 부르지 않았으면, 커피 한 잔을 천천히 다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스칩니다. 그런데 정작 시간이 주어지면 막상 뭘 해야 할지도, 어디로 가야 할지도 막막해져요. 어쩌면 우리는 너무 오래 '달리기'만 해온 건 아닐까요? 그래서일까요. 누군가는 산책길 골목 어귀에서, 누군가는 오래 미뤄두었던 책 한 권 속에서 조용히 짐을 꾸립니다. 멀리 떠나지 않아도 좋습니다. 낯선 풍경을 스치고 돌아오는 그 짧은 이탈이 오히려 익숙한 일상을 다시 충만하게 채워주니까요.

◆ 여행, 존재를 껴안는 방식에 대하여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의 표지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정세랑 지음)는 여행을 즐기지 않는다고 말하는 작가가 여러 이유로 떠난 여정을 담은 기록입니다. 작가는 원래 낯선 곳을 선호하지 않고 일상을 중시하는 사람이지만, 친구가 보고 싶어 뉴욕으로 날아가고, 우연히 당첨된 이벤트로 런던에 가고, 연인의 유학을 따라 독일에 머무는 등 예상치 못한 계기로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이 책은 작가가 낯선 도시에서 마주한 순간들을 통해 삶과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어떻게 확장되고 깊어졌는지를 보여줍니다. 그가 경험한 여행은 단지 물리적인 이동이 아니라 정서적이고 존재론적인 변화의 과정이었습니다. 익숙한 세계를 벗어나 타인의 언어와 문화를 마주하면서, 그는 "사랑하는 이들의 세상이 갑자기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여행은 그에게 사라져가는 것들을 기억하고, 붙잡고, 다정하게 바라보는 방식을 알려줍니다. 그는 지나가는 순간들의 의미를 애써 되새기며, 덧없지만 근사했던 시간을 찬찬히 되짚습니다.

책의 구성은 정세랑 작가 특유의 섬세하고 따뜻한 문체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녀는 "좋아하는 것을 한껏 좋아하는 마음"을 담백하게 고백하고, 그 마음이야말로 우리가 서로 연결되는 방식임을 조용히 말해줍니다. 이 책은 작가 개인의 사적인 여행담이면서도 동시에 독자 모두의 보편적인 감정을 건드리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며 겪는 상실, 기대, 외로움, 연대의 감정을 작가는 조심스럽고도 정직하게 꺼내 보입니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여행이 멈춘 시대에 진정한 여행이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그의 여행은 멀리 떠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감도를 높여 일상의 풍경을 다시 바라보는 행위입니다. 지구의 구석구석에서 발견한 반짝이는 순간들은 독자에게도 다정하게 말을 겁니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더 큰 사랑을 위해, 오늘도 한걸음 나아가자고요.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는 그런 발걸음의 곁을 지켜주는 책입니다.

◆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은 휴식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의 표지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박상영 지음)은 완벽하지 않은 여행과 불완전한 쉼에 대한 기록입니다. 저자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고백합니다. 낯선 장소에선 쉽게 지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며, 차라리 유튜브나 넷플릭스에서 정보를 얻는 것을 선호한다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그는 반복해서 짐을 싸고 어딘가로 향합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글쓰기에 지쳤고, 삶이 버거웠기 때문입니다. 그는 떠나야 했습니다.

책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에서는 광주, 강릉, 유럽, 뉴욕 등 과거의 도피성 여행을 회상합니다. 2부에서는 번아웃 극복을 위해 제주 최남단 가파도로 떠나지만, 현실은 낭만과는 거리가 멉니다. 3부에서는 여행 예능 도전기와 함께, 그에게 위로가 되었던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계획대로 되는 일은 거의 없지만, 그는 그 안에서 의외의 위로와 생의 실마리를 발견합니다. 박상영 작가는 '휴식'조차도 계획대로 되지 않는 현실을 유머와 자조, 진심으로 풀어냅니다. 책의 곳곳에는 실패담이 넘쳐나지만, 그 실패들은 독자에게 이상하게도 해방감을 줍니다. 우리는 완벽한 쉼을 꿈꾸지만 번번이 무너집니다. 박상영은 그 무너진 자리에서조차 "환부를 꿰뚫어 삶의 감각을 되찾는" 순간을 붙잡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여행할 때 나는 가장 열렬히 일상에 대해 생각한다"고. 떠나기 싫어하면서도 떠나는 그의 모습은, 일상에 지친 우리가 매일 아침 다시 눈을 뜨는 일과 닮아 있습니다. 피로와 두려움, 실패와 관계, 불완전한 자신을 껴안고도 여전히 살아가려는 모든 이들에게 조용한 응원을 보냅니다.

대구시교육청 학부모독서문화지원교사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