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와 소멸의 경계 위 찬란하게 빛나는 종이배…김선경 개인전

입력 2025-09-12 20: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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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산문화회관 유리상자 공모선정작 전시
12월 14일까지

봉산문화회관 아트스페이스 전시 전경. 봉산문화회관 제공
봉산문화회관 아트스페이스 전시 전경. 봉산문화회관 제공
봉산문화회관 아트스페이스 전시 전경. 봉산문화회관 제공
봉산문화회관 아트스페이스 전시 전경. 봉산문화회관 제공

투명한 빛의 대형 종이배가 두둥실, 전시장에 매달렸다. 4면이 유리로 이뤄진 봉산문화회관의 아트스페이스 전시장 속 이 종이배는 낮에는 햇빛을 받아 찬란한 색그림자를 만들어내고, 밤에는 반사되는 빛에 의해 자체발광하는 듯 반짝인다.

유리상자 전시공모 선정작 세 번째 전시로 마련된 김선경 작가의 '무(無)와 유(有)의 경계에서'는 아름답고 화려하게 빛나는 종이배를 통해 삶과 죽음이라는 가장 근원적인 질문을 풀어낸다.

왜 종이배일까. 칠곡 왜관 출신의 작가는 어린 시절 낙동강변 가까이 살며 많은 기억을 쌓았다. 엄마와 빨래를 하고 재첩도 줍다가, 심심하면 종이배를 접어 강물에 흘려보내곤 했다. 그것이 점점 멀어지고 이내 물에 젖어 가라앉는 것을 보며 '죽음도 저런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그 어릴 적부터 했던 그였다.

경북대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인간의 삶을 의자로 표현하는 작업을 해오던 그가 다시 종이배를 접은 것은 2003년 대구지하철참사 이후였다. 당시 고인들을 추모하는 전시가 중앙로역에서 열렸고, 그는 고민 끝에 종이배들을 고이 접어 벽에 붙였다. 영혼들이 이 배를 타고 좋은 곳으로 갔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서.

그 때부터 종이배는 그의 작품 세계에서 삶과 죽음을 사유하는 중심적인 이미지가 됐다. 그러다 2023년쯤 비닐과 오로라지(紙) 등 투명한 성질의 새로운 재료를 시도하며 지금의 작품이 나오게 됐다.

김민주 봉산문화회관 큐레이터는 "투명한 종이배는 시간과 빛에 따라 변모한다"며 "종이배의 반짝임은 시각과 끝의 경계를 지나는 모든 생명에게 작가가 보내는 찬사이자 응원이며, 끝맺음을 향한 여정이 찬란하고 아름다울 수 있길 바라는 작가의 마음을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봉산문화회관 아트스페이스 전시 전경. 봉산문화회관 제공
봉산문화회관 아트스페이스 전시 전경. 봉산문화회관 제공
봉산문화회관 아트스페이스 전시 전경. 봉산문화회관 제공
봉산문화회관 아트스페이스 전시 전경. 봉산문화회관 제공

종이배의 뒷편에 엮인 붉은 실들은 여전히 삶과 연결된 생명의 연속성과 인연을 상징하며, 종이배의 아래에 전시장을 가로지르는 수많은 검은 실들은 그리스 신화 속 망각의 강인 '레테'를 연상시킨다. 이 검은 실은 이승과 저승, 존재와 소멸, 기억과 망각의 경계를 의미하는데, 유(有)와 무(無)처럼 극단에 있는 개념들이 결국은 등을 맞대고 있는 듯 가까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얘기한다.

다소 무거운 주제지만, 작가는 관람객들이 그저 보이는 대로 작품을 봐주길 바란다고 했다. 그는 "작업 의도를 구체적으로 얘기하지 않는 이상, 관람객들은 반짝이는 배의 모습을 보며 '예쁘다', '저 배를 타고 훨훨 여행을 떠나고싶다'고 많이 생각하는 것 같다"며 "복잡한 생각 대신 작품을 보고 아름답고 행복한 감정을 느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전시는 12월 14일까지 이어지며 월요일과 추석 연휴는 휴관한다. 053-422-62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