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속으로] 무삼에 새긴 그리움…김관용 전 도지사 부인 김춘희 여사 작품전

입력 2025-09-11 16: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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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5~27일 만촌동 소헌미술관
직접 수놓은 무삼 소재 이불, 식탁보 등 전시

자신의 작품 앞에 선 김춘희 여사. 이연정 기자
자신의 작품 앞에 선 김춘희 여사. 이연정 기자
소헌미술관에서 김춘희 작품전
소헌미술관에서 김춘희 작품전 '무삼에 새긴 그리움'이 열리고 있다. 이연정 기자
소헌미술관에서 김춘희 작품전
소헌미술관에서 김춘희 작품전 '무삼에 새긴 그리움'이 열리고 있다. 이연정 기자

"작가라는 호칭이 너무 어색하네요. 그저 무삼이 좋아서 평생을 곁에 두고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의 표정에서 소녀 같은 수줍음과 설렘이 스쳤다. 15일부터 소헌미술관(대구 수성구 화랑로 134-5)에서 열리는 작품전 '무삼에 새긴 그리움'의 주인공은 김관용 전(前) 경북도지사의 부인 김춘희 여사.

그가 40여 년간 무삼에 한 땀 한 땀 수놓아 만든 이불과 베갯잇, 식탁보, 쿠션, 풀주머니 등을 모아, 그의 질녀인 장경선 소헌미술관 관장이 전시를 마련했다.

헌데 무삼은 다소 생소하게 느껴진다. 손으로 쓸어보니 꽤 거칠다. 김 여사는 "무삼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이 많다"며 "삼을 찐 뒤 속껍질로 짠 것은 안동포, 겉껍질로 짠 것이 무삼"이라고 말했다.

안동포가 조선시대 임금에게 진상품으로 올리는 등 고급 옷에 쓰였다면, 무삼은 일꾼들의 옷으로 쓰였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무삼은 보통 잿물에 두 번 삶는데, 그럼에도 녹지 않고 삶을수록 질겨지는 특성이 있다. 특히 공기 투과율이 높아 무더위를 이기는 데 적합한 옷감이고, 흡습성과 강도, 내열성, 항균성이 강해 생활 곳곳에서 활용하기 좋은 섬유라고.

안동에서 나고 자란 그에게 무삼은 태어날 때부터 항상 곁에 있던, 운명 같은 존재였다. 어린 시절 낙동강변에 살며 삼을 쪄서 강물에 담궈 겨릅을 벗겼고, 호롱불 아래서 삼을 삼는 어머니의 곁에서 실 잇는 법을 배웠다.

"그 때 그래(그렇게) 배운 게, 평생 무삼을 좋아하게 됐어요." 시집갈 때도, 아들이 아토피로 고생할 때도 무삼은 함께였다. 그러다 심심한 삼베 색이 지루해진 어느 날, 그는 십자수로 베갯잇 모서리와 밥상보 귀퉁이에 빨간 열매와 초록 잎을 하나 둘 피우기 시작했다. 그것이 1970년대 후반. 단순하지만 화려하고 생기 있는 그의 수(繡)는 그렇게 40여 년간 이어져왔고, 작품이 됐다.

김춘희 여사가 무삼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30년 넘게 쓴 이불의 낡고 떨어진 부분을 잘라내고 쓸만한 부분을 골라 베갯잇으로 만들었다. 이연정 기자
김춘희 여사가 무삼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30년 넘게 쓴 이불의 낡고 떨어진 부분을 잘라내고 쓸만한 부분을 골라 베갯잇으로 만들었다. 이연정 기자
김춘희 여사가 직접 수놓은 무삼 풀주머니를 들어보이고 있다. 이연정 기자
김춘희 여사가 직접 수놓은 무삼 풀주머니를 들어보이고 있다. 이연정 기자
소헌미술관에서 김춘희 작품전
소헌미술관에서 김춘희 작품전 '무삼에 새긴 그리움'이 열리고 있다. 왼쪽에 걸린 것은 아기 이불. 이연정 기자

전시장에 걸린 홑이불 하나는 그가 중국인 며느리에게 선물하려고 만들었다. 중국인이 좋아하는 숫자인 88개의 딸기를 감각적으로 배치해 수놓았다. 딸기 한 알을 완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6시간 가량. 그의 모든 작품에는 가늠할 수 없을만큼의 정성과 시간이 고스란히 녹아져있다.

이외에도 전시장에는 그가 1970년대 후반에 수놓은 홑이불에서 덜 낡은 부분을 잘라 만든 베갯잇, 직접 쓰던 풀주머니 등도 함께 놓였다.

성긴 무삼을 붙잡고 씨름하느라 그의 손은 거칠어졌고, 두 검지 손가락이 바깥으로 휘었다. 그래도 그는 삼베에 풀을 먹이고 수를 놓고, 소품을 만드는 일이 너무나도 행복하다고 말한다.

"삼베를 다룰 수 있는 시간은 1년 중 5월에서 9월까지예요. 날이 추워지면 풀을 먹인 무삼이 부서져서 작업할 수 없죠. 그래서 5월이 오기만을 기다려요. 잘 짜여진 삼베를 골라 첫 바늘을 꽂으면, 어딘가 숨어있던 행복들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듯합니다."

세월이 흐르며 점점 무삼을 짜는 장인이 사라져가는 것은 그에게 크나큰 아쉬움이다. 그는 "무삼을 접해본 경험이 있다면 누구나 한 켠에 그리움을 갖고 있을 것"이라며 "우리의 귀한 전통 문화가 자꾸 사라지고 있지만, 이런 전시로 인해 또 옛 것을 알리고 상기시킬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돼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도지사의 아내로, 두 아들의 엄마로 살아오기도 벅찼을텐데, 그의 이력은 무삼에 수놓을 시간이 어디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빛이 난다.

김 여사는 안동교육대학교와 성균관대학교 심리학과 학사,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를 거쳐 장계향 선생을 연구한 논문으로 계명대학원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4년에는 수필가로 등단했으며 경북여성단체협의회의 14, 15, 16대 명예회장을 지냈다. 다도에도 조예가 깊어 2011년부터 2017년까지 미국과 프랑스 등지에서 한국 전통 차 문화 해외 시연을 선보이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왔다.

전시는 27일까지. 053-751-80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