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세대의 정치적 불만은 단순한 세대 갈등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다. 지금의 정치적 의사결정은 인구구조상 다수를 차지한 86세대가 주도하며 이들의 선택은 대체로 눈앞의 표와 이익에 치우쳐 있다. 국민연금 개혁은 미래 세대의 부담을 키우는 방식으로 설계되고 확장재정은 당장의 경기 부양을 위해 국가채무를 늘린다. 환경정책 역시 장기적 지속가능성보다 단기적 비용을 우선시한다. 결국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아이들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정치 구조 속에 이들의 의사가 보다 직접적으로 반영될 장치가 필요하지 않을까. 헌법은 모든 국민에게 참정권을 보장하고 있지만 현행 법률은 단순히 나이를 이유로 미성년자의 선거권을 전면적으로 배제한다. 그러나 교육·재정·환경과 같은 정책은 곧바로 아이들의 미래에 영향을 미친다. 아이들이 전혀 대표되지 못하는 지금의 상황이 과연 헌법 정신에 부합하는지 의문이 든다.
이러한 문제 의식 속에서 제안된 것이 바로 데메니 투표(Demeny Voting)다. 인구학자 폴 데메니가 처음 제안한 이 제도는 미성년자의 참정권을 부모가 대리 행사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는 자녀가 있는 사람에게 표를 더 주자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역시 시민으로서 정치적 권리를 갖고 있음을 전제로 그 행사만을 부모가 대신해 준다는 구상이다.
이 아이디어는 학계에 머물지 않고 정치권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J.D. 밴스 미국 부통령은 2021년 공개 발언에서 데메니 투표를 주장하며 '아이 없는 사람보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국가의 미래에 더 큰 이해관계를 가진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물론 엄격한 1인 1표 원칙에 기초한 헌법적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어떠한 정치적 권리도 인정하지 않는 현 제도가 과연 국민주권주의 원리에 부합하는지를 되묻고 싶다. 민주주의는 국민 전체의 의사를 반영해야 한다. 장래 가장 오랜 기간 정치적 의사결정의 결과를 감내해야 할 세대가 전면 배제되는 현 제도야말로 더 위헌적일 수 있다.
아이의 복리를 가장 잘 대변할 수 있는 자가 부모라는 사실은 이미 법제도적으로 널리 인정되고 있다. 부모는 법정대리인으로서 아이의 재산권·인격권 등 중요한 권리를 대리행사한다. 그렇다면 정치적 권리 역시 부모가 대리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현실적 의문도 있다. 부와 모의 정치적 견해가 갈릴 경우 또는 고아의 경우 선거권을 어떻게 행사할 것인가 등이다. 그러나 이는 얼마든지 해법을 설계 가능한 문제다. 예컨대 부모가 선거권 행사 대리인을 누구로 할지 합의하지 못하면 대리권을 부여하지 않거나 절충안으로 각 0.5표씩 나누어 행사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완벽한 해답이 아니라 적절한 대리인이 있을 때 미성년자의 권리행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이다.
결국 이 논의의 핵심은 제도의 세부 내용이 아니라 정치가 누구를 대변하느냐다. 인구구조상 다수를 차지한 86세대 중심의 의사결정이 이어지면서 장기적 사안조차 근시안적으로 다뤄지고 있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의 가장 큰 이해당사자는 가장 오랫동안 이 나라에서 살아갈 아이들이다. 그들의 의사가 지금 이 순간부터 반영될 때 정치적 합의는 보다 균형 잡히고 지속가능해질 것이다.
조상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정책보좌관 / 법률사무소 상현 대표변호사

* 가스인라이팅(Gas Enlighting)은 매일신문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칼럼 공간입니다. '가스라이팅'은 1930년대 가스등을 사용하던 시절 파생된 용어입니다. 가스등을 조금씩 어둡게 해 누군가를 통제하는 걸 의미하는데요 '가스인라이팅'은 그 반대로 등불을 더 밝게 비춰주자는 뜻입니다. 젊은이들의 시각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자주 선보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