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 능인고등학교 교사 김영진
정부는 글로벌 경쟁에서 인공지능(AI) 분야의 신속한 우위 확보를 위해 내년 예산을 올해보다 2배 이상 늘린 2조3천억원으로 책정했다. 정부가 AI 생태계 구축 및 국민의 AI 서비스 활용 능력을 높여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정책을 펴고 있는데 학교 현장은 'AI 디지털 교과서'(AIDT)가 교육자료로 지위 격하되면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AIDT가 법적으로 교과서의 지위를 잃은 것은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다. 교사의 입장에서 보면 교과서도 일종의 교육자료이기 때문이다. 어떤 목적으로 활용하든 문제는 안정적인 재정 확보다. 구독료, 기기 교체 및 유지보수 비용 등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AIDT를 찬성하는 교사로서는 AIDT를 활용하고 싶어도 학교의 재정 상황에 따라 사용 여부가 결정되는 현실에 부딪히게 된다.
그러나 AI 디지털 기술은 학교에서 배움이 이루어져야 한다. 학교 교육은 인류가 이룩한 지혜를 다음 세대로 전승하는 역할도 하지만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력을 길러 주는 역할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교사의 한 사람으로서 AIDT를 활용하고 있는 주변 교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불편해하는 교사들 못지않게 여러 가지 장점을 열거하며 AIDT 활용을 찬성하는 교사들도 많다. 학교라는 공교육 시스템 안에서 동등하게 양질의 맞춤형 교육 콘텐츠를 제공하는 AI 디지털 기술이 '교육 격차'를 없앨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AI를 학교 교육에 긍정적으로 활용한다면 교육 사다리의 역할을 충분히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또 AI가 반복적인 지식 설명이나 문제 채점과 같은 기계적인 업무를 대신해 줌으로써, 교사에게 확보된 시간을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의 곁에 한 번 더 다가가 함께 토론하고 협력 수업을 고안하는 데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교사는 AI가 할 수 없는 상담, 코칭, 동기 부여, 사회성 함양과 같은 본질적인 역할에 더욱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AI 디지털 기술의 효과적인 학교 교육을 위해 교육 당국에 다음과 같은 요구를 수용해 줄 것을 요청한다.
우선 안정적인 재정 확보가 필요하다. 정권 교체나 정책 방향 수정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안정적인 재원 확보 방안과 장기적인 로드맵이 법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또 고품질 콘텐츠 생태계 조성이 필요하다. 현장 교사들이 콘텐츠 개발에 직접 참여하고, 우수한 교과서 출판사 및 에듀테크 기업이 자유롭게 경쟁하는 선순환적인 콘텐츠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도 필요하다. 정책 추진 과정에서 학생, 교사, 학부모 등 교육 주체들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함으로써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성공할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교사들과의 소통을 통해 요구를 파악하는 일이다. 교사들이 자율적인 학습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도록 지원하거나 집합 연수 날짜의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또 학교 현장의 기술적 문제를 신속하게 지원하고, 기기 관리 및 유지보수를 전담할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 무엇보다 교과서임에도 인증을 받아야 한다거나, 로그인을 할 때 학생들이 아이디나 비밀번호를 기억하지 못해 교사들이 겪는 고충 등을 해결해 주어야 한다.
필자가 경험한 50여 년 동안의 학교는 가정통신문을 통해, 혹은 소통의 장을 열어 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국가 경쟁력을 높이려고 교사들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진지한 고민과 합의가 필요하며, 그 일에 교사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를 희망한다.
우리 지역 교사들이 스스로 AI 디지털 교육을 위한 최적의 도구를 선택하고 성공 사례를 만들어 전국으로 확산시키는 교육 혁신의 주체가 되면 좋겠다. 지위 격하는 후퇴가 아니라 현장 중심의 진짜 혁신을 위한 '자유'와 '책임'을 부여받은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