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우의 읽거나 읽히거나] 이번 가을엔 실크잠옷을

입력 2025-09-04 11: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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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아름다운 것들의 추한 역사
케이티 켈러허 지음 / 청미래 펴냄 

[책] 아름다운 것들의 추한 역사
[책] 아름다운 것들의 추한 역사

"모든 일이 그렇게 지겹다면서 무엇 때문에 매일 아침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거죠?" 만성 우울증으로 치료받으면서 살고 싶지 않다고 수천 번도 넘게 말했던 환자에게 의사가 던진 질문. 이에 대한 작가 케이티 켈러허의 대답은 이랬다. "아름다움이요."

21세기 인간에게 사물을 소비하고 경험하는 방식을 바꿔야 할 도덕적 의무가 있다고 힘주어 말하는 작가는 아름다움을 이해하는 것이 아름다움을 낳는다면서 그래서 아름다움은 사랑과 비슷하다고 얘기한다. 왜냐하면 아름다움은 지극히 개인적이니까.

10대 시절 음습하고 비극적인 예술가의 모습에 집착했고 우울증을 앓았던 소녀는 20대가 되자 집과 디자인에 관한 글을 쓰면서 햇볕이 잘 드는 주방과 인조대리석 조리대 같은 예쁜 것에 집중한다. 예쁜 것들은 아름다움과 추함을 동시에 가졌으며 디지털화된 세상에서 멀어지고 멸균처리 되었다고 느낀다. 그렇게 다양한 관심사와 자신이 수집하거나 욕망해온 10가지 아름다운 물건(거울과 꽃과 보석과 돌들, 조개와 화장과 향수와 벌레와 유리와 도자기와 대리석)과 좋아하는 일이 결합되는 과정을 글로 엮었으니 곧 '아름다운 것들의 추한 역사'이다. 요컨대 이 책은 "욕망과 혐오는 짝을 이루어 존재하다는 것을, 가장 통렬한 아름다움은 추악함과 실타래처럼 엮여 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받아들인 한 사람의 욕망 체험기이다.

이 정도의 정보와 사유를 버무리려면 얼마나 많은 지식과 경험이 바탕 되어야 할까. 때론 도저한 심연으로 들어갔다가 때론 앳된 소녀의 달뜬 표정을 내보이더니 어떤 대목에선 섬뜩한 경고도 서슴지 않는다. 예컨대 다이아몬드가 가치 있는 이유는 "이미 다이아몬드를 가진 사람들이 다이아몬드가 가치 있다고 정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화장에 관해 "백인 문화 전반에 퍼져 있는 교활한 거짓말, 그리고 인간의 아름다움에 대한 고통스럽고 단순한 진실이 담겨 있다."고 비판한다. 또 실크 생산 노동자의 착취실태에 대해 미디어의 관심이 "문제 해결을 위한 호소력보다는 인도주의적 관심을 미디어 식단에 추가하는 것"에 불과하다면서, 옷을 언제든지 휴대전화로 살 수 있는 소비재에서, 노동을 통해 만들어진 상품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다시 실크를 입겠다는 결심을 포함한)고 전한다.

영화평론가 백정우
영화평론가 백정우

공적 역사와 사적 추억이 맥락의 맥락을 이어가며 진행되는 깊고 맑고 투명한 이야기. '아름다운 것들의 추한 역사'의 미덕은 열여섯 살 소녀를 아프게 만든 마음의 상처가 엄마가 된 이후 세상에 대한 통찰로 진보한다는 것이다. "딸은 이미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있고, 그 누구보다도 내 얼굴을 좋아하니까" 나와 직접 마주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미소와 매력을 아껴둘 생각'이라는 작가 스스로의 다짐 역시 같은 맥락이다. 달리 보자면 우울과 몽상으로 가득했던 시대와 이별하고 자연과 편안함을 추구하는 공존 공생의 시대로 향하려는 한 여성의 안간힘이기도 하다. 사물을 바라보는 인식과 대하는 방법과 가치를 매기는 척도에 대해 생각의 재조정을 요구하는 케이티 켈러허의 목소리가 옹골차다.

언젠가부터 실크잠옷 대신 트렁크만 걸친 채 잠자리에 들곤 했다. 실크 노동자를 생각해서가 아니라 단지 더위를 심하게 타서였는데, 가을이 되면 실크잠옷을 다시 입어보리라 마음먹었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