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80주년, 국립묘지에서 경술국치일을 생각하다

입력 2025-08-28 09:26:32

김미현 국립신암선열공원 관리소장

김미현 국립신암선열공원 관리소장
김미현 국립신암선열공원 관리소장

내게 여름은 참 힘든 계절이다. 단순히 날씨가 더워서만은 아니다. 6·25전쟁, 7월 27일 UN군 참전의 날, 8월 15일 광복절과 29일 경술국치일이 모여 있는 여름에는 느껴지는 정신적 무게감이 남다르다.

특히 이달에는 우리나라의 가장 기쁜 날과 슬픈 날이 함께 모여있다. 빛이 밝으면 그림자가 어둡다고 했던가. 올해 광복 80주년을 맞아 전국에서 광복을 축하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는데 반해, 경술국치의 비극은 새롭게 깊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1910년 벌어진 경술국치로 우리나라의 외교, 군사, 내정권은 모두 일본으로 이양됐다. 일제는 식민지로 전락한 우리나라에 토지조사를 통한 경제적 수탈과 교육·언어·문화 탄압을 본격화했다.

이에 경술국치 이전 의병 등 무력투쟁 위주였던 독립운동은 이후 다양하고 보다 조직적인 형태로 발전해, 전국으로 확산했다. 특히 우리 대구경북지역에서는 1915년 광복회 결성, 1919년 3월 8일 대규모 만세운동 등이 이어졌다.

국립신암선열공원에는 1910년 전후로 독립운동을 전개하신 선조들이 다수 안장돼 계신다. 안장자 중 가장 훈격이 높은 임용사 지사님은 1905년 을사늑약 직후부터 의병항일투쟁을 전개하셨다.

3·8 만세운동을 주도하셨던 김태련, 김용해 지사님을 비롯해 김천, 의성, 영덕 등 경북지역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셨던 분들도 안장돼있다.

안장자들을 지켜보며 드는 생각은, 경술국치라는 역사적 굴욕을 기억하는 게 단순히 과거를 돌아보는 수준에 그쳐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비극이 광복이라는 찬란한 빛으로 이어지기까지 선조들이 흘렸던 피와 땀을 되새기고, 앞으로 대한민국을 더욱 발전시키겠다는 결의를 새겨야 한다.

이를 위해 제안한다. 역사 교육을 모든 사회영역에서 분리해 그 본질을 단단히 지키도록 해야한다. 올바른 교육을 통해 정립된 투철한 역사관의 뿌리 위에서만 대한민국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독립의 역사는 세계사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국민들의 자발적·적극적 희생으로 쟁취한 성과다. 거저 주어진 것도 아니고, 어쩌다가 맞이한 것도 아니다.

그 정신이 우리의 핏줄에 각인돼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뤄낸 만큼, 철저한 교육을 통해 이후세대도 이 같은 역사를 잊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깊은 어둠을 알아야 빛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다. 마찬가지로 경술국치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야 선열들의 희생과 헌신에 감사하고, 광복의 기쁨을 온전히 누릴 수 있다.

국립신암선열공원에는 아름다운 배롱나무가 있다. 공원을 찾아 이 나무 아래에서 '인증샷'을 찍는 것도 좋지만, 나무 아래 고요한 봉분에 잠드신 독립운동가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현해 보는 건 어떨까. 그리고 누군가 작은 봉분조차 갖지 못한 무명의 독립운동가들까지 떠올린다면, 경술국치와 광복이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