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태가 대가족 살던 집 덮쳐…붕괴된 큰아들 방에 자던 손녀 사망
손녀 잃은 뒤 가족 전체 무너져…수면제 없이는 잠들지 못하고 있어
가랑비만 내려도 숨이 막히고 불안에 휩싸여…비오면 담벼락 무너지지 않을지 걱정
"매일 제 옆에서 자던 손녀 채윤이 사진을 매일 봐요."
최희영(60) 씨는 2년 전 경북 영주에서 발생한 집중호우로 생후 14개월 손녀 이채윤 양을 떠나보냈다. 시간이 흘렀지만 손녀에 대한 그리움은 조금도 옅어지지 않았고 그날의 기억은 깊은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비가 쉴 새 없이 쏟아지던 2023년 6월 30일 새벽. 최 씨는 남편과 잠을 뒤로 하고 집 안으로 스며든 빗물을 퍼내고 있었다.
"마실 수 있는 지하수에 빗물이 섞이면 안 되니까 뜬눈으로 지켜봐야 했어요. 염소도 키우고 있었는데 비를 맞으면 안 되니 돌봐야 했고요."
집 안팎을 오가기를 반복하던 오전 4시 40분쯤 큰아들의 다급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엄마! 채윤이가 깔렸어!"라는 절규였다.
폭우로 산의 지반이 약해지면서 무너져 내린 토사가 최 씨의 집을 덮쳤고 큰아들 방부터 붕괴됐다. 그 방에서 자던 채윤이는 외벽이 무너지면서 쏟아진 잔해에 깔렸다.
토사가 끊임없이 떠내려온 탓에 온 가족이 달려들어도 채윤이를 꺼낼 수 없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대원이 2시간 만에 구조했지만, 채윤이는 이미 심정지 상태였다.
채윤이는 최 씨가 처음 맞은 손녀였다. 3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이었기에 채윤이는 최 씨의 일상이었다. 밭을 갈 땐 등에 업고 밥도 직접 먹이며 키웠다.
"엄마 아빠보다 제가 밥을 떠주면 더 잘 먹었어요. 저만 보면 엉덩이를 들썩이며 아장아장 달려와 안기기 바빴던 손녀였어요."
할머니에게 깊은 애착을 느낀 채윤이는 항상 최 씨 옆에서 잠들곤 했다. 하지만 산사태가 발생한 그날 밤만은 달랐다. 밤새 빗물을 퍼내느라 집 안팎을 오가야 했고, 곁에 두면 잠든 아이가 깰까 봐 큰아들 방에 재운 것이었다.
최 씨는 채윤이를 어렵게 손에 안았다. 큰며느리가 임신 8개월 차에 코로나19에 걸렸고 태동이 느껴지지 않아 급히 출산했다. 팔삭둥이로 태어난 채윤이는 자가 호흡이 어려웠다. 결국 기도 삽관된 채 헬기를 타고 영남대병원으로 옮겨진 뒤에서야 생명을 이어갔다.
"죽어가던 손녀를 간신히 살려냈는데…산사태로 목숨을 잃었다는 게 지금도 믿을 수가 없어요. 큰아들 부부 사이에 다시 손자가 태어났지만 이 아이를 봐도 채윤이가 자꾸 떠올라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손녀를 잃은 뒤 최 씨 가족은 무너졌다. 큰아들은 술에 의존하기 시작했고, 남편은 수면제 없이는 잠들지 못하고 있다.
"채윤이를 잊어보려고 휴대전화에 있는 사진을 지워보려 했지만 도저히 못하겠더라고요. 정말 보고 싶을 때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게 더 두려워요."
산사태 원인이 폭우였기에 최 씨는 이제 가랑비만 내려도 숨이 막히고 불안에 휩싸인다. 이틀 전에도 갑자기 쏟아진 비에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다. 담벼락이 무너지지는 않을지 걱정돼 수시로 집을 나갔다가 들어왔다.
대가족이 살던 집도 붕괴되면서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우리 가족은 옛날부터 다 같이 지냈어요. 그런데 집이 사라졌고 그만한 규모의 주택을 다시 마련할 형편도 못 되다 보니, 결국 첫째·둘째 아들 부부도 다 따로 흩어져 살게 됐습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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