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언덕-황희진] 자식 농사

입력 2025-08-14 16:41:15 수정 2025-08-14 19:01:18

영화
영화 '사도'(2015)의 한 장면. 사도세자와 영조. 네이버영화
황희진 국제부 디지털팀 팀장
황희진 국제부 디지털팀 팀장

자식 농사(子息農事). 국어사전에는 '부모가 자식을 낳아 기르는 일'이라고 적혀 있다. 그것만으론 설명할 수 없는 단어다. 부모가 자식을 기르는 과정보다는 길러낸 결과를 더 주목하는 게 우리 사회다. 포털 사이트에서 저 단어를 검색해 보자. 유명인의 자녀가 명문고·명문대에 진학했다거나, 빼어난 외모 또는 학문·예체능 실력을 갖춰 대회 입상을 했다는 소식이 쏟아진다. 바로 '자식 자랑'의 서사다. 그래서 자식 농사를 얘기할 땐 주로 성공담만 첨부한다. 실패담을 첨부하는 경우는 '금쪽이(원래 금처럼 귀한 아이라는 뜻이지만 요즘은 문제아를 의미)' 사연을 전하는 방송 등 희소하다.

자식을 사랑해 걱정하고 염려하는 마음과 행동만 있다면 우리 사회는 참 평화로울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부모의 '체면(體面)' 문제가 끼어든다. 부모는 자식이 잘되길 바라면서, 이왕이면 주변에 자랑해 그런 자식을 키워낸 자신도 빛나 보이길 바란다. 중요한 건, 자식이 잘되는 건 긴 시간이 걸리는 일이지만 자신이 빛나는 건 당장 동네 엄마들 모임이나 부부 동반 계모임에 가서 자식 자랑의 썰전으로 펼쳐 내야 하는 일이다. 그러니 되도록 빨리 성과를 내라고 자식을 닦달하는 부모가 등장한다. 여기서 부모는 자기합리화를 선택한다. 자식을 닦달해 빠르게 성과를 쌓다 보면 긴 시간이 걸리는 자식 농사의 성공 역시 따라올 거라 믿게 되는 것.

그래서 자식 농사는 꽤 실패한다. 실패담의 고전이 있다. 조선 임금 영조와 아들 사도세자가 주인공이다. 자식에 대한 총애가 과도한 기대와 지나친 간섭으로 이어졌고, 이게 자식을 뒤주에 가둬 죽이는 야만스러운 가족사를 만들었다. 만일 사도세자가 목숨을 건졌더라도 그간 아버지로부터 받은 '갈굼'의 영향으로 더욱 삐뚤어졌을 것이고, 만일에 만일 다음 왕이 됐더라면 조정과 왕실이 정상적으로 굴러가진 않았을 것이다. 아비는 여든하나까지 장수했으니 스물일곱에 요절한 아들이 좀 더 안타깝다는 마음이 들지만, 어쨌든 이러나저러나 파국(破局)이었을 터다.

이렇게 부모와 자식 양측 모두 불행해지는 사연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실패담의 최신 버전이 있다.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와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 부부는 어긋난 자식 사랑에 입시 비리라는 범죄를 저질렀고, 이에 자식들은 학위를 줄줄이 박탈당했다. 그러자 많은 국민들이 저런 불행을 반복하지 말아야겠다 마음먹었고, 교육 당국은 입시 비리 근절 제도의 완성도를 높이게 됐다. 영조 이후 자식을 뒤주에 가둔 사례가 없었듯, 조국 사태 이후 저런 입시 비리 역시 더는 없을 것이란 게 바로 역사의 진보에 대한 공동체의 믿음이다. 그래서 저들이 받은 광복절(光復節) 특별사면에 대한 비판은 진영 대결 논리를 떠나 그 믿음을 훼손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적잖은 지분을 차지한다.

이렇듯 고위층의 자식 농사 사례가 사회에 큰 영향을 주다 보니, 다른 고위층의 자식도 예의 주시하게 된다.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의 자식은 높은 확률로 골칫덩이였다. 이재명 대통령의 아들 이동호 씨도 대선 전 상습 도박·음담패설 사건으로 그 계보를 이을지 주목됐는데, 아버지의 임기 시작 직후 결혼한 이래 뉴스에 등장하지 않고 있어 다행스럽다. 최근 전직 대통령 동시 구속 사례를 쓴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씨 부부에겐 자식이 없어 앞으로 관련 문제가 나타날 가능성은 없다. 다만 그들도 누군가의 자식 농사의 산물이다. 그들 역시 자식으로서 실패담을 쓴다면, 반드시 우리 사회 부모들에게 교훈으로 던져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