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봉직 독립지사 아들 정일 씨 "후손들이 독립정신 잊지 말고 계승했으면"

입력 2025-08-14 15:07:14 수정 2025-08-14 20:44:32

"독립운동하다 7년간 옥고 치른 아버지…생전 따뜻한 밥 대접 못해 한 서려"
아버지 최봉직씨…만세운동·군자금 모금 등 독립운동 이어가

13일 경북 칠곡군 보훈회관에서 최정일 사무장이 매일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13일 경북 칠곡군 보훈회관에서 최정일 사무장이 매일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하늘나라에는 휴가도 없나? 고문후유증으로 평생 아프다가 세상 떠난 아버지. 내가 직접 벌은 돈으로 따뜻한 밥 한번 지어드리지도 못했는데…"

지난 13일 경북 칠곡보훈회관에서 만난 최정일(84)씨는 자신이 고작 스무살이 되던 해 돌아가신 아버지 최봉직 지사를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옥고 치러도 꺾이지 않은 독립 열망…고문도 버텨냈다

독립운동가였던 최씨의 아버지 최봉직 지사는 고문후유증에 시달리다 영양실조에 의한 골다공증 등으로 병세가 심해져 1961년 7월 새벽 65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세상을 떠난 지 29년이 지난 1990년에야 정부로부터 독립운동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았다.

최씨에 따르면 최봉직 지사는 1896년생으로 황해도 벽성군에서 자랐다. 그는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내다 23살이 되던 해, 친한 친구가 서울에서 보내온 독립선언서를 읽고 나서 독립운동에 대한 열망을 다지게 됐다. 그해 3월 1일에는 당시 다니던 교회의 교인들과 함께 황해도 해주 장터로 나가 독립만세를 외치다 체포돼 8개월간 구금됐다.

옥고를 치렀지만 독립에 대한 열망은 꺾이지 않았다. 최봉직 지사는 1920년 1월 만주로 넘어가 유하현 삼원보에 있는 군사학교에서 6개월 군사교육을 받고, 이명서 독립운동가 등과 함께 대한독립단 황해도지단을 설립했다. 같은 해 9월, 일본 헌병들이 새벽 중 부대를 습격한 일명 '구월산 전투'가 벌어지면서 이씨를 포함해 10여명의 부대원이 사망했다.

최봉직 지사도 다리에 총상을 맞았지만,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이후 1921년 2월 정순경 독립운동가와 함께 군자금을 모금하던 중 일제군인에게 체포돼 평양과 서대문 형무소를 전전하며 7년의 옥살이를 했다.

최씨는 "아버지가 감옥생활 중 일제로부터 쇠꼬챙이로 손톱 밑을 찌르는 온갖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도 절대 동지가 누구인지는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유년시절 힘겨웠지만…"독립 정신 계승은 나의 숙명"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씁쓸한 말처럼 독립운동가의 자식인 최씨의 어린 시절 역시 녹록치 않았다. 어머니는 최씨가 7살 되던 해에 일찍 세상을 떠나면서, 1947년쯤 최씨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임진강을 건너 탈북한 뒤 대구에 정착했다.

최씨는 "독립운동을 하느라 가세가 많이 기운 것으로 기억한다"며 "아버지가 전라도, 경상도 전국을 돌며 도장 재료를 파는 '장돌뱅이'로 살면서 간간히 생업을 이어갔다. 아버지가 장터를 도시느라 어릴 땐 한달에 한 두번 정도 밖에 만나지 못해 유년시절이 참 외로웠다"고 회고했다.

최씨는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 어려운 유년시절을 보냈지만, 단 한 번도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고 살았다고 한다.

최씨는 "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하시느라 평생 힘들게 살다가셨지만,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독립운동을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1963년 대구시 공무원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한 최씨는 퇴직 후 2014년부터 광복회 칠곡고령연합지회 사무장으로 일하며 가정형편이 어려운 독립유공자 후손 집을 정기적으로 방문해 위문금품을 전달하고 있다.

독립운동의 역사적 가치를 주제로한 연극공연 '그날'을 매년 주관하고 있다. 이 공로를 인정 받아 올해 본사 주최 매일보훈대상 특별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최씨는 "현대 사회에 들어서 침략의 방식이 영토 침범에서 경제로 바뀌었을 뿐, 독립정신은 우리 민족이 외세의 침범에 당하지 않도록 언제나 갖고 있어야 하는 정신"이라며 "광복절을 맞아 후손들이 독립운동을 먼 이야기로 생각하지 않고, 마음속에 깊이 새겨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최씨 부모님의 결혼식 사진(좌), 최봉직씨가 병원에 입원한 시절 최씨와 찍은 사진(우).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최씨 부모님의 결혼식 사진(좌), 최봉직씨가 병원에 입원한 시절 최씨와 찍은 사진(우).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