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관세 협상 타결, 최악을 피했을 뿐 위기의 연속이다

입력 2025-08-01 05:00:00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0일(현지시간) 한국 무역협상 대표단과 만난 뒤 SNS에 올린 글에서 "미국이 한국과 전면적이고 완전한 무역 합의를 체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국의 전체 4천500억달러(약 626조원)에 달하는 조선(造船) 중심의 대미 '투자 펀드'(3천500억달러) 조성과 에너지 구매(1천억달러)를 조건으로 상호 관세를 기존 25%에서 15%로 낮춘다는 게 핵심이다. 상호 관세 15%는 일본·유럽연합(EU)과 같은 수준으로, 일단 선방했다는 평가다. 3천500억달러 대미 투자는 조선 협력 프로젝트인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가 핵심이고, 반도체와 2차전지 등 미국 정부의 전략산업에 필요한 재원을 지분(持分) 투자·대출·보증을 통해 지원하는 개념이다. 대미 투자 이익의 90%를 미국이 갖는다는데, 구체적으로 미국 내 재투자 여부는 불확실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 타결을 전하면서 3천500억달러 투자를 최우선 언급한 것은 지대한 관심의 방증(傍證)이다. 투자 규모는 일본(5천500억달러), EU(6천억달러)보다 적지만 국내총생산(GDP) 대비 상당한 부담이다. 다만 지분 투자는 5% 미만이고 보증과 대출이 대부분을 차지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며, 투자 혜택도 상당 부분 우리 기업이 누리게 돼 일본의 '투자 패키지'와 차별화된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미국산 에너지 1천억달러 구매 약속도, 지난해 원유와 석유제품 수입액만 1천100억달러에 이르는 만큼 도입선 조절 정도로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고 본다.

'25% 상호 관세'라는 최악의 상황은 모면했으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무관세 혜택은 사라졌다. 대미 수출 효자 품목인 자동차 관세가 15%로 낮아졌다지만 기존 무관세일 때 일본이 부담한 관세가 2.5%임을 감안하면 실질적인 가격 경쟁력은 후퇴한 셈이다. 게다가 대미 주요 수출 품목인 철강은 여전히 50% 관세가 적용된다. 포스코를 비롯한 포항 지역 철강 기업들은 공장 가동 중단과 구조조정에 나섰지만 직접적인 수출 타격은 하반기에 본격화할 전망이다. 반도체 산업에는 사실상 '최혜국(最惠國) 대우'를 약속했으나 세부 협상 내용이 공개되지 않아 불확실성이 여전하다. '불리하게 대우하지 않을 것'이라는 구두 약속 외에 명시적 합의가 드러나지 않았다. 지난해 대미 반도체 수출액(106억달러)은 전체 수출의 7.5%를 차지했다. 농산물 개방은 다소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완전 개방"이라고 표현한 트럼프와 달리 우리 정부는 "쌀·소고기 시장 추가 개방은 없다"고 했는데, 이미 농업 시장의 99.7%가 개방돼 있고 대미 농축산물 무역적자가 80억달러에 달하는 점을 감안할 때 당장 시장의 큰 변화는 없을 전망이다.

통상 합의에선 다뤄지지 않았지만 국방비 증액과 '한미동맹 현대화'는 2주 내에 열릴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로 꼽힌다. 미국은 중국 견제를 목적으로 한미동맹 현대화를 언급했는데, GDP 5% 수준의 국방비 증액과 미군 주둔비(駐屯費) 분담금 대폭 인상, 대중국 견제 동참 등이 해당될 수 있다. 재정 여건이나 대중국 관계를 감안할 때 매우 어렵고 고통스러운 선택을 해야 할 수 있다. 한미 관세 협상은 큰 틀의 합의를 이뤘지만 아직 변수가 남아 있는데, 바로 미중 관세 협상이다. 중국의 내수 상황과 미국 수출 여건 등에 따라 우리 경제는 훨씬 더 크게 휘청거릴 수 있다.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의 속내는 가장 큰 변수다. 국가 간 무역 협상을 마치며 서면 합의서는 없었다. 트럼프가 SNS 게시물로 타결을 알렸을 뿐이다. '합의의 틀'만 만들어진 상태인데, 앞으로 수년이 걸릴 수도 있는 무역협정서 작성 중 어떤 돌발 변수가 생길지 모른다. 급한 불을 끄며 최악은 피했지만 위기 상황은 시작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