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태훈] 조선 마지막 어전회의를 소환하며

입력 2025-08-19 14:34:41 수정 2025-08-19 15:58:23

이태훈 대구 달서구청장
이태훈 대구 달서구청장

모진 폭염에 시달려 온 산야는 가을을 목타게 갈급하고 있다. 만발한 무궁화는 조국 광복의 기운을 즐기고 있으나, 이 무더위는 조선의 국권이 빼앗기고 하늘마저 울던 그날의 사연들을 소환하고 있다. 역사에 묻힌 조선의 마지막 어전회의(8월 22일)와 국권 상실의 경술국치일(8월 29일)은 생각의 꼬리를 물게 한다.

국권 상실은 외세의 힘 때문만은 아니었다. 권력에 몰두한 오랜 당파 싸움과 세도정치에 물든 조정 대신들의 탐욕, 무능함과 회피적 침묵이 조선을 침몰로 내몰았다. 당시 상황은 암울했다. 고종 황제의 재가 없이 외부대신 박제순과 일본 공사 하야시 곤스케의 서명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는 을사늑약(1905)이 체결된다. 고종은 네덜란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특사 파견으로 그 부당함을 국제사회에 알려 을사늑약의 무효를 호소하려 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강제 퇴위된다.

그 후 총리대신 이완용과 통감 이토 히로부미의 정미 7조약(1907) 체결로 입법·행정·사법 등 통치권 전반이 사실상 일본에 넘어간다. 이런 어둠 속에서 순종 황제는 조선 건국 519년인 1910년 8월 22일 조선의 마지막 어전회의를 창덕궁(흥복헌)에서 연다. 이 회의에는 황제 순종, 총리대신 이완용, 내부대신 박제순 등 국무대신, 황족 대표 그리고 문무 원로 대표들이 참석했다. '국가의 향후 진로를 논의한다'는 명분이지만 한일병합조약 체결을 위한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했다.

이완용은 한일병합의 불가피함을 역설했고, 침묵하던 순종의 "모든 신하들이 좋다 한다면 짐도 이의가 없다", 그리고 찬성 주요 대신들의 "지당합니다"로 마무리된다. 7일 후 공식 선포(8월 29일)로 일본 식민 지배 35년 어둠의 터널로 내몰린다.

관직 사직 대신 1명의 반대 표시 외에, 병합 축하연에 참석하여 침묵하는 조정 대신들과 다르게 백성은 절망했고, 분노했다. 수많은 독립운동가는 목숨을 던졌고, 전국에 울려 퍼지는 통곡과 함께 의병 투쟁은 더욱 거세졌다. 일본은 무력으로 진압하려 하지만 백성의 저항은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지고 마침내 광복의 단초가 되었다.

그날의 굴욕을 기억하는 것은 역사를 앎만이 아니라 강대국에 둘러싸인 우리의 상황에서 주어진 공직자의 사명과 책임 의식 그리고 미래세대를 향한 역사의식에서 비롯된다. 민족은 과거에서 교훈을 되새길 때 그 지속성이 보장될 수 있다. 조선 패망의 과정 그리고 마지막 어전회의와 그 이후 조정 대신들의 행적들은 이 시대 공직자들에겐 산 역사 자료이다.

군주 체제에서 의로움을 좇는 선비 정신과 역사의식은 사라지고 개인의 부귀영화를 좇는 조정 대신들의 모습을 역사는 돋보기로 들여다보고 있다. 퇴각하는 왜군을 쫓아 마지막 순간까지 직분을 목숨으로 수행하다 산화한 이순신 장군의 공직관이 별이 되어 빛나고 있다. 역사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촉발한 강대국의 비정한 힘의 논리는 지구촌을 온통 야만적인 약육강식의 밀림으로 몰아넣고 있다. 역사의 거울은 이 시대에 어떤 공직자를 찾고 있을까.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 지금, 공직자들은 개인적, 정파적 이익을 넘어, 투철한 역사관으로 오직 국민을 바라보며 미래세대를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한다. 이 시대 우리는 살얼음 위를 걷는 작은 나라 운명을 국민적 합심으로 극복하며 후대에 좋은 제도와 올바른 국민적 기풍을 물려주어야 한다. 정파를 넘는 협력과 책임 그리고 역사의식, 국민 중심의 신뢰로 민족 치욕의 역사를 국가의 미래 희망으로 승화시켜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