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에서 피어난 '심청'의 노래…'사아레마 오페라 페스티벌' 뜨거운 개막

입력 2025-07-23 07:04:19 수정 2025-07-23 18:31:45

22일(화)부터 26일(토)까지 쿠레사레 성 외곽에서 공연 진행
대구오페라하우스 자체제작 오페라 '심청' 개막 무대 성황리에 막 내려
"우리 K-문화가 외교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2025 에스토니아 사아레마 오페라 페스티벌 전경. 대구문화예술진흥원
2025 에스토니아 사아레마 오페라 페스티벌 전경. 대구문화예술진흥원
2025 사아레마 오페라 페스티벌 개막작
2025 사아레마 오페라 페스티벌 개막작 '심청' 공연 모습. Gunnar Laak/Saaremaa Opera Festival

밤 8시가 넘은 시각, 하늘은 여전히 대낮같이 밝았고 쿠레사레 성벽 뒤편에서 클래식 선율이 흘러나왔다. 성벽에 몰린 관객들은 기대감을 가지고 발걸음을 무대 입구를 향해 옮겼다. 여기는 에스토니아의 사아레마섬. 백야가 내려앉은 고성(古城)에서, 오페라가 시작된다.

22일(현시 시간) 대구오페라하우스가 한국 오페라의 세계화를 위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대구오페라하우스는 22일(화)부터 26일(토)까지 5일간 열리는 '2025년 에스토니아 사아레마 오페라 축제(Saaremaa Opera Festival)'에 메인 게스트로 공식 초청돼 다양한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2025 사아레마 오페라 페스티벌 개막작
2025 사아레마 오페라 페스티벌 개막작 '심청'을 관람하기 위해 관객들이 입장하고 있다. 김세연 기자
2025 사아레마 오페라 페스티벌 개막작
2025 사아레마 오페라 페스티벌 개막작 '심청'을 관람하기 위해 관객들이 입장하고 있다. 김세연 기자

◆쿠레사레 성에서 펼쳐지는 오페라 무대

"오페라를 통해 섬이 살아 숨 쉬는 것 같아요. 한국이라는 먼 타국의 이야기가 이 섬에서 펼쳐진다니 참 멋지네요"

이번 사아레마 오페라 축제를 방문하기 위해 여름휴가를 계획했다는 에이르(60, 에스토니아) 씨는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심청'이라는 생소한 오페라가 흥미로웠다. 배우들의 감정 표현에 감동했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관람객 마리(20, 핀란드)씨는 "작년에 방문했던 지인 추천으로 오게됐다. 바닷가에 세워진 성에서 열리는 오페라라니 로맨틱하다"라며 "심청 역을 맡은 소프라노의 목소리가 잊히지 않는다. 한국에도 가보고 싶다"고 밝혔다.

40년 역사를 가진 이 축제는 매년 세계 각국의 유명 오페라 극장과 아티스트를 초청해 다양한 작품이 공연되고 있다. 1997년 개최 이후 매년 7월, 에스토니아 서쪽 끝 사아레마 섬 도시 쿠레사레(Kuressaare)에서 축제가 열린다.

에스토니아의 가장 큰 섬, '사아레마' 섬의 크기는 제주도의 1.4배, 인구는 고작 3만명인 섬이다. 이번 축제를 위해 대구 오페라하우스 상주단체 '디오오케스트라(DIOO)', '대구오페라콰이어(DOC)'와 대구시립국악단 등 국내외 아티스트 149명이 에스토니아를 방문해 무대를 준비했다.

주최 측인 에스티 콘서트에 따르면 매년 5일간 진행되는 축제의 유료 관객 수만 평균 1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번 축제의 첫날에는 에스토니아 현지인은 물론 유럽 전역에서 몰려든 오페라 애호가와 관광객들로 1천500석의 자리가 가득 찼다.

2025 사아레마 오페라 페스티벌 개막작
2025 사아레마 오페라 페스티벌 개막작 '심청' 공연 모습. Gunnar Laak/Saaremaa Opera Festival

◆'심청'을 개막으로 다양한 무대 선보여

'심청' 무대가 축제의 문을 열었다. 익숙한 설화를 소재로 한 오페라 심청은 1972년 뮌헨올림픽 문화 축전을 위해 오케스트라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총감독 귄터 레너르트가 윤이상에게 위촉한 작품이다.

대본은 독일의 극작가 하랄드 쿤츠가 판소리 '심청가'에 영감을 받아 작성했으며, 대구오페라하우스가 자체 제작하면서 현대적인 음악과 연출, 무대 디자인으로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심청'은 한국적 감성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푸른빛을 띤 무대 배경과 미니멀한 소품들이 심청의 여정을 담아내며, 전통과 현대가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무대가 시작되자 심청의 고통과 결연한 의지가 무대 곳곳에 울려 퍼졌다. 심청이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장면에서는 관객들 사이에 숨죽인 긴장감이 감돌았다.

무대에서 흐르는 윤이상의 선율은 공연의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켰다. 웅장한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의 조화는 이야기의 무게를 더했다.

피날레에서 심청이 다시 살아나 아버지와 재회하며 눈을 뜨이게하는 장면은 무대의 하이라이트였다. 공연이 끝난 후 모든 관객들의 감격에 찬 기립 박수로 무대는 성황리에 마쳤다.

조정현 지휘자는 "외국 관객분들에게도 윤이상 작품이 통했다. 뿌듯한 마음이 든다"라며 "한국인의 저력을 보여줄 수 있는 역사적인 자리에 일조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소감을 전했다.

정갑균 대구오페라하우스 관장은 "이번 무대는 3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큰 감회가 있다"며 "화합과 희생을 통해 인간의 공생하는 삶을 주제로 하는 작품이라 관객들이 신선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번 축제에서 대구오페라하우스는 '심청'을 포함해 글룩의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푸치니의 '나비부인' 등 3개의 전막 오페라를 공연한다. 또 대구시립국악단의 '달구벌의 향, 취' 국악 콘서트와 오페라 갈라 콘서트도 함께 준비됐다.

22일 2025 사아레마 오페라 페스티벌 개막을 앞두고 김일응 주에스토니아 대사와 정갑균 대구오페라하우스 관장이 현지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Gunnar Laak/Saaremaa Opera Festival
22일 2025 사아레마 오페라 페스티벌 개막을 앞두고 김일응 주에스토니아 대사와 정갑균 대구오페라하우스 관장이 현지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Gunnar Laak/Saaremaa Opera Festival

◆세계로 진출하는 '음악창의도시' 대구

이제는 '음악 도시'라는 수식어가 낯설지 않은 대구가 세계 무대에서 분명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2017년 유네스코로부터 '음악 창의도시'로 공식 지정된 대구는 이번 축제에 공식 초청되면서 한국 음악의 위상을 유럽에 각인시켰다.

초청의 배경에는 지난 2022년 제19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를 방문한 에스티 콘서트 대표 케르투 오로(Kertu Orro)가 심청을 관람하면서 성사됐다.

이번 축제에는 약 30개국의 대사가 참석했으며, 에스토니아 문화부 장관 및 주요 내빈이 참석했다. 아울러 지난 3월 '주에스토니아 대한민국 대사관' 공식 개소 이후 이번 축제를 함께 진행되면서 양국 우호 발전 및 상호 교류 증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025 사아레마 오페라 페스티벌이 열리는 에스토니아 쿠레사레 곳곳에 태극기가 걸렸다. Gunnar Laak/Saaremaa Opera Festival
2025 사아레마 오페라 페스티벌이 열리는 에스토니아 쿠레사레 곳곳에 태극기가 걸렸다. Gunnar Laak/Saaremaa Opera Festival

이날 공연장을 방문한 김일응 주에스토니아 대사는 "우리나라 오페라가 유럽 무대에 선다는 것이 굉장히 기쁘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의 K-컬쳐가 굉장히 많이 알려져있다. 경제, 정치뿐만 아니라 문화가 외교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라며 "오페라 강국 유럽에서 우리나라 오페라의 수준을 보여줄 수 있는 굉장히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고 밝혔다.

이재성 대구시 문화체육관광국장은 "마을 곳곳에 태극기가 꽂혀있는 것을 보고 자부심을 느꼈다"라며 "유럽에서 한국 오페라라고 하면 대구 오페라하우스를 떠올린다. 유일한 자체 제작 극장이기 때문이다. 대구가 세계에 진출하기 위해 꾸준한 지원을 하겠다"고 전했다.

에스토니아 쿠레사레 곳곳에 대구오페라하우스 홍보 포스터가 붙어있다. 김세연 기자
에스토니아 쿠레사레 곳곳에 대구오페라하우스 홍보 포스터가 붙어있다. 김세연 기자

에스토니아 사아레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