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산책] 생명을 위협하는 여름 더위, 일사병과 열사병 어떻게 다를까?

입력 2025-07-23 06:30:00

김성호 일민의료재단 세강병원 내과 원장
김성호 일민의료재단 세강병원 내과 원장

매년 여름이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이 있다. 바로 '폭염'이다. 최근 지구온난화와 도시화의 영향으로 여름철 최고기온은 해마다 높아지고, 이에 따른 온열질환 발생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 가운데 특히 일사병과 열사병은 건강한 성인에게도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대표적인 온열질환이다. 하지만 두 질환을 혼동하거나 가볍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2023년 폭염으로 온열질환을 겪은 환자 약 3천400명이 응급실을 찾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 중 열사병으로 실신한 환자가 전체의 40% 이상을 차지했고 사망자도 30명에 달했다. 단순한 불쾌감이나 탈수를 넘어서 심각한 의학적 응급상황임을 보여주는 수치다.

그렇다면 일사병과 열사병은 어떻게 다를까?

먼저 일사병(heat exhaustion)은 고온 환경에서 체온이 상승하고, 체내 수분과 염분이 부족해지면서 발생하는 탈수성 온열질환이다. 체온은 보통 37~40도 사이로 오르며 어지럼증, 두통, 근육경련, 메스꺼움, 극심한 피로감 등이 동반된다. 환자는 대체로 의식이 있으며, 시원한 곳으로 옮긴 뒤 수분을 보충하면 빠르게 호전된다.

반면, 열사병(heat stroke)은 체온 조절 기능이 완전히 무너진 상태에서 체온이 40도 이상으로 급격히 상승하며 발생하는 중증 온열질환이다. 의식이 혼미해지며, 땀이 나지 않고 피부는 뜨겁고 건조해지며, 뇌와 간, 신장 등 주요 장기에 손상을 일으킨다. 치료가 지연되면 치사율이 30~80%에 이를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특히 어르신과 어린이, 만성질환자와 야외 근로자는 열사병 고위험군에 속한다. 노인은 땀 배출과 체온 감지 기능이 떨어지고, 어린이는 체온 조절 능력이 미숙한 탓에 열에 더 취약하다. 또한 심장질환, 당뇨, 고혈압 등의 만성질환자는 약물 복용과 관련해 체온 조절이 어려워지므로 초기 증상이 있을 때 즉각 대응이 필요하다.

열사병은 40도 이상의 고열, 땀이 나지 않고 피부가 건조해지는 증상, 의식 저하, 경련, 판단력 저하, 구토, 호흡 곤란 등이 동반되며, 발견하면 즉시 119에 신고해야 한다. 이후 환자를 시원한 장소로 옮기고, 의복을 느슨하게 하며 물수건이나 얼음팩 등으로 체온을 빠르게 낮춰야 한다. 단, 의식이 없는 환자에게는 함부로 음료를 마시게 해서는 안 된다. 무리한 수분 보충은 오히려 위험할 수 있으므로 피해야 한다.

그렇다면,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은 어떻게 예방할 수 있을까?

첫째, 규칙적인 수분 섭취가 중요하다. 갈증을 느끼기 전에 미리 물을 마시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알코올이나 카페인이 들어간 음료는 탈수를 유발할 수 있으므로 피하는 것이 좋다.

둘째, 의복 관리에도 신경 써야 한다. 통풍이 잘되고 밝은 색상의 옷을 착용하고, 외출 시에는 챙이 넓은 모자, 양산, 선글라스 등을 활용해 직사광선을 차단해야 한다.

셋째, 야외 활동은 폭염이 심한 시간대인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는 피하는 것이 좋다. 부득이하게 외출해야 할 경우, 그늘에서 자주 휴식을 취하고 냉방이 가능한 장소에서 체온을 낮추는 것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취약계층을 살피는 것도 중요하다. 혼자 사는 고령자나 어린이가 있는 가정은 하루 한 번 이상 안부를 확인하고, 냉방기기 작동 여부와 건강 상태를 꼼꼼히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

폭염은 이제 단순한 날씨 현상이 아닌 재난이다. 더위로 인한 질병은 충분히 예방할 수 있으며, 초기 대응만 잘해도 생명을 지킬 수 있다. 여름철 건강은 작은 관심과 준비에서 시작된다. 일사병과 열사병은 단순한 더위를 넘길 수 없다. 정확히 알고 미리 대비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예방법이다.

김성호 일민의료재단 세강병원 내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