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의 연극 리뷰] 연극 <두 영웅>을 모티브로 한 김흥모 원작, 이우천 연출 <도꾸가와 이에야스 주민센터에 가다> "풍자극과 패러디 사이의 웃음 유희"

입력 2025-07-18 06:30:00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도꾸가와 이에야스 주민센터에 가다. 극단 대학로극장
도꾸가와 이에야스 주민센터에 가다. 극단 대학로극장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

이우천 연출의 <도꾸가와 이에야스 주민센터에 가다>(대학로극장, 드림씨어터, 이우천 재구성)는 정신의학 전문의이자 극작가인 김흥모의 작품으로, 소극장 연극의 아날로그적 감성을 웃음으로 소환하는 작품이다. 노경식 작 <두 영웅>을 모티브 삼아 <두 영웅–주민센터에 간 도쿠가와 이에야스>(2022)로 2인극으로 무대화되면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로 분한 김종구 배우가 연기상을 받은 작품이다. 재공연에서는 이우천 연출이 각색을 통해 극중인물을 확장했고, 배경도 제주도로 옮겼다. 400여 년 전 인물인 일본 에도막부 쇼군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1543–1616)라는 일본 근세의 절대권력자가 한국 사회 행정 공공기관인 '주민센터'에 등장한다는 설정부터가 웃음이 터지는 이질적인 조합이다.

그러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연극 <두 영웅>에 등장하는 극중인물로 분장을 한 채 인감증명서 발급을 받기 위해 제주 주민센터에 간다면, 상황은 풍자적이고 희극적으로 전환된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콩트처럼 웃음만 유발하는 것은 아니다. 극적인 풍자성에서 출발해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사명대사, 이순신 장군의 임진왜란 종전 전투인 노량해전까지 동시대의 역사적 인물들이 극중극 전환을 통해 소환되면서, <도꾸가와 이에야스 주민센터에 가다>는 풍자적 확장을 넘어 권력, 역사, 평화, 전쟁, 연극예술 노동의 문제까지 아우르는 다층적 메타 극으로 확장된다. 작품은 최소한의 무대 장치와 배우들의 다층적 연기로, 소극장 무대에서 대소 도구 몇 개만으로 서사적 밀도를 유지하며 장면전환 사이에서 웃음으로 발화되는 풍자적 유희를 연극적으로 드러낸다.

도꾸가와 이에야스 주민센터에 가다. 극단 대학로극장
도꾸가와 이에야스 주민센터에 가다. 극단 대학로극장

◇ 김흥모 원작, 이우천 연출 재구성으로 제주도 주민센터로 간 <도꾸가와 이에야스>

연극은 <두 영웅>의 극중인물인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제주 문화예술회관 초청 공연을 위해 인감증명서를 발급받으러 주민센터를 방문하는 설정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극단 대표이자 극 중 인물인 김봉구(김종구 분)는 <두 영웅>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 역을 맡고, 제주 공연 일정이 잡히자, 출연 배우들은 출연료에 대한 기대로 제주로 향한다. 그러나 상황은 도착과 동시에 꼬이기 시작한다. 공연 관계자가 제작비 지급을 위해 공연 시작 전까지 출연 배우들의 인감증명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하고, 김봉구는 분장한 채로 주민센터를 찾는다.

주민센터 직원은 분장으로 인해 본인 확인이 어렵다며 발급을 거부하고, 이로 인해 도쿠가와 이에야스로 분장한 김봉구를 중심으로 소동이 벌어지고, 공연 시간이 다가올수록 점점 더 난감한 상황에 빠진다. 제주 공연 후 배우들의 출연료 약속을 지키려는 김봉구와 일인다역을 맡은 배우들이 제주 사투리로 주민센터 직원, 센터장, 경찰 등 다양한 인물들로 분하면서, 김봉구와 이 인물들 사이에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로 분장한 인물이 주민등록상 동일 인물로 인정될 수 있는지를 두고 '진짜와 가짜'를 가리는 진위 공방이 벌어진다.

정신의학자인 원작자 김흥모는 이러한 실제 인물과 가짜라는 인식성을 정신분석학자 칼 구스타프 융이 도입한 이마고(Imago) 용어에서 유래한 심상(心像, Mental representation)의 개념에서 출발해, <도꾸가와 이에야스 주민센터에 가다>에서 '실제의 진위성'(분장한 캐릭터와 실제 자신, 극중인물로 분하는 연기와 나)으로 소동이 벌어지는 과정들을 분석하고 있다. 칼 융의 이마고는 실체를 바라보는 자기 내면에 형성된 타인의 심상(이미지)이다. 이것이 정신적인 이미지로 연결되는데, 심상은 표상되는 실체가 가짜라고 해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심상이 진짜로 인식되면 가상도 현실적인 존재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실체를 바라보는 인간의 심상이 표면의 이미지에서 정신적 이미지로 전환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도 김봉구는 도쿠가와로 '분장'함으로써 관객과 주변 인물들 모두에게 '진짜와 가짜 사이의 경계'를 심리적으로 자극하는 이마고적 존재가 된다. 배우가 도쿠가와라는 역사적 권위의 이미지를 재현하면서도, 그것이 실제 인물인지 허구인지 구분되지 않는 애매한 정체성의 인물로 기능한다. 그러나 무대에서 재현자의 극중인물이 극이 진행되는 동안 실제 인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이마고적 심상이며, <도꾸가와 이에야스 주민센터에 가다>에서는 인물의 실제/허구, 배우의 실제와 가짜, 캐릭터 분장과 실제의 다름 등이 심리학적 관점에서 표현되고 있는 설정 자체가 풍자의 역설이다.

도꾸가와 이에야스 주민센터에 가다. 극단 대학로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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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자극과 패러디 사이의 유희성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극 중 극으로 메타극 구조를 유지한다. 배우들이 연극 <두 영웅>을 연습하다가, 현실적 상황(제주 공연, 출연료 문제, 인감 제출 등)에 휘말리고, 다시 연극 속 장면으로 돌아가는 식의 구성은 연극과 현실, 허구와 사실 사이의 경계를 해체한다. 특히 후반부,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이순신이 주민센터에서 만나면서 임진왜란이라는 거대한 역사극이 소환된다. 거리 축제에 참여한 이순신이 주민센터에 들어오고, 이와 마주 선 도쿠가와와의 단판 장면은 마치 TV 사극의 과장과 코미디 프로그램의 풍자를 합쳐놓은 듯한 양가적 장면으로 전개된다.

이순신과 도쿠가와의 정치적 대결은 단순한 역사적 재현을 넘어, 한국과 일본, 역사와 현재, 이상과 현실이 교차하는 다층적 은유 구조를 형성한다. 공연 시작 30분을 앞두고, 장면은 다시 제주 문화예술회관에서의 <두 영웅> 공연으로 전환된다. 배우는 인감증명서를 발급받고 돌아온 뒤 낮잠을 잤다는 설정을 통해, 이전의 현실적 소동을 꿈처럼 처리하며,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연극적으로 중화한다.

공연이 진행되면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사명대사의 정치적 단판 장면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때를 기다리는 정치철학'과 사명대사의 '민중 철학'이 대비를 이루며, 한일 양국의 우호적 관계와 평화적 공존이라는 이상적인 관계를 보여주는 설정으로 끝난다. <도꾸가와 이에야스 주민센터에 가다>는 이러한 양가적 극적 충돌 속에서 웃음과 긴장, 허구와 현실이 중첩되어 '진지한 코미디'라는 역설적 조합으로 소극장 연극 미학을 만들어 내는 작품이다. 연극의 찐 재미는 배우들의 일인다역 연기로 발화되는 소극장 특유의 연극성이다.

배우들은 일인다역을 소화하면서, 승무원으로 바뀐 인물을 보고는 "어디서 많이 뵀다"라며 다 역을 희극성으로 전환하는 배우들의 앙상블도 좋다. 특히 문연지 배우는 주민센터 직원, 승무원, 극장 관계자, 배우, 경찰, 제주 주민, 도지사 등 10여 개의 역할을 쉼 없이 전환하며, 인물 간의 극적 충돌을 혼자서 구현해 낸다. 김종구 배우는 작품의 중심축으로서 도쿠가와와 김봉구를 오가며, 극중극의 이중 구조를 안정적으로 이끈다. 이 밖에도 배우 유정기, 김민진, 이준의 멀티로 변화되는 연기가 극의 몰입감을 높이고, 재미는 덤이다.

도꾸가와 이에야스 주민센터에 가다. 극단 대학로극장
도꾸가와 이에야스 주민센터에 가다. 극단 대학로극장

◇소극장 연극의 상상력. 이우천 연출의 아날로그 연극성

다역 연기는 다양한 캐릭터로 무대에서 살아가는 배우의 존재를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장치이기도 하다. "배우란 대단한 존재...? 아냐 아냐. 배우란 약간의 신비스러움을 간직한 평범한 사람일 뿐이지…."라는 김봉구의 마지막 대사처럼, <도꾸가와 이에야스 주민센터에 가다>에서는 배우가 진짜와 가짜의 경계에서 현실과 상상의 삶과 인생을 유람하며 표현하는 연기자이자, 실제 존재로 살아가는 배우라는 직업을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메타적 장치로 기능하기도 한다.

배우들은 끝없이 다양한 캐릭터로 변화하며 관객에게 질문한다. "당신이 진짜로 믿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말이다. 무대는 탁자 두 개, 의자 몇 개, 조명, 그리고 배우의 감각과 대사로 구성된다. 설정 또한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공연 장소인 비행기 기내, 주민센터, 제주 거리, 공연장 등으로 공간은 환기된다. 특히 사명대사의 일본행 장면에서는 두 개의 탁자를 붙이고 푸른 천을 휘날리며 뱃길을 구현하는 등, 무대 위 공간의 연극적 상상력을 극대화하는 점도 이 작품의 매력이다.

이러한 장점으로 이우천 연출은 소극장 연극의 아날로그적 감성을 살려냈다. 무대 위 기술적 세련됨으로 시각을 자극하지만 설득되지 않는 연출적 기교보다는, 배우와 관객이 무대를 통해 함께 만들어 내는 연극적 시간과 공간에 집중하며, 연극예술의 본질적 지점을 되묻는 연극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또한 <도꾸가와 이에야스 주민센터에 가다>는 코미디처럼 웃음의 속도도 좋지만, 권력, 관료 시스템, 역사 인식의 허구성을 날카롭게 파고드는 풍자극이다. 5명의 배우가 만들어 내는 앙상블, 무대에서 활용되는 최소한의 오브제, 형식의 유연함, 대사와 장면전환의 입체감은 이 작품을 '웃으면서도 사유하게' 만든다. 세련되진 않아도 연극적인 맛은 '찐'하다. 이 작품과 연출의 장점이다.

도꾸가와 이에야스 주민센터에 가다. 극단 대학로극장
도꾸가와 이에야스 주민센터에 가다. 극단 대학로극장

|미니 인터뷰 (도꾸가와 이에야스 주민센터에 가다, 연출 이우천)

"관객이 웃는 연극이 최고의 연극, 웃음은 눈물보다 훌륭한 치료제죠"

이우천 연출을 처음 본 것은 그가 대학로극장에 워크숍 단원으로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1990년대에는 단원들이 공연 포스터를 직접 붙이곤 했는데, 이우천 연출도 포스터를 붙이며 막내 생활을 했다. 그 뒤 <불 좀 꺼주세요>를 시작으로 대표적인 소극장 연극들을 대중적으로 선보여 온 1989년 개관의 대학로극장이 폐관한 이후에도, 이우천은 극단을 지켰다. 2001년 <사랑합니다>(단막극장)를 통해 연극 연출로 데뷔한 이후, 최근 작연출로는 <노인과 여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2021), <우리 아배 참봉 나으리>, <임금알>(2022, 오태영 작·이우천 연출), <뱃속에서>(2024, 오태영 작·이우천 연출), <말할 수 없이>(최보윤 작·이우천 연출) 등이 있다. 현재 7월 20일까지 드림씨어터에서 대학로극장 정기공연 <시체를 숨기는 열 가지 방법> 공연 중으로 객석에서 인터뷰를 했다.

─ <도꾸가와이에야스 주민센터에 가다>가 초연작하고 달라졌다.

"초연은 하나의 해프닝이었다. 주민센터 주사가 인감증명서 발급을 해주지 않지만, 동장이 영화배우 김종구를 알아보고 현장에서 떼어준다. 김종구는 주민센터 직원들 앞에서 독백연기를 시범 보이는 장면도 등장한다. 그야말로 '배우 김종구를 위한 연극'이었다. 2인극 페스티벌 초청작이었기에 가능했다. 재연공연에서는 작품 확장이 불가피했다. 한 무명배우가 성공하지 못했다는 피해의식을 극복하고 자유로운 배우로 확립해 가는 이야기로 서사를 구성했다. 등장인물도 다양화해 장면을 확장했다. 도꾸가와 이에야스 분장 때문에 신분 확인이 안 돼 인감증명서 발급이 불가능하다는 원작의 설정은 그대로 살렸다."

─ 연극이 소극장답게 설계된 것 같다. 특징적으로 부각하려는 것은.

"간결한 연출이었다. 작품 공간이 극단 연습실, 비행 중인 여객기 내부, 제주문예회관, 주민센터 등으로 다양하게 변화된다. 사실적 구현은 불가능했다. 공간을 어떻게 표현할지 많이 고민했다. 선택한 것이 대소도구의 다양한 쓰임이었다. 최소한의 대소도구를 활용해 공간을 표현하고 여백은 배우로 채워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연극은 배우예술이다. 관객은 무대를 보러오는 것이 아니라 배우를 보러오는 것이니까 설정할 수 있었다. 경제성만 가능하다면 확장된 공간과 극장에 어울리는 서사를 구성하고 싶다. 테크니컬적인 무대구성도, 블록버스터급으로 해보고 싶은 욕심도 있다."

도꾸가와 이에야스 주민센터에 가다. 극단 대학로극장
도꾸가와 이에야스 주민센터에 가다. 극단 대학로극장

─ '도꾸가와 이에야스'를 소환해 소동극으로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는.

"작가 노경식 선생님의 연극 <두 영웅>으로 지방공연을 갔다가 벌어진 실화가 원작의 배경이다. 도꾸가와 이에야스가 당연히 등장해야 했다. 한발 더 나아가 '왜 도꾸가와 이에야스냐'라는 의문을 각색 단계에서 스스로 많이 던졌다. 그러다가 김봉구와 도꾸가와 이에야스의 접점이 '기다림' 일수 있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 점을 <도꾸가와 이에야스 주민센터에 가다> 서사로 녹여냈다. 지금도 나는, 최고의 작품을 만나지 못했다. 언젠가는 만날 날이 올 것 같다. 묵묵히 내 자리에서 때를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을 많이 한다. 김봉구도 두 영웅 작품에서 도꾸가와 이에야스 역할을 연기하면 분명 이런 느낌을 갖지 않았을까."

─'도꾸가와 이에야스'가 한국사회 주민센터에 가다'라는 설정이 코믹웹툰적이다. 콩트를 보는 것 같았는데.

" 작품 제목을 원작자한테 들었을 때 '와! 너무 재밌을 거 같아요!' 였다. 도꾸가와 이에야스라는 인물 이미지와 주민센터라는 공간의 인과관계가 그려지지 않았다. '코믹웹툰적' 인 것이 이런 낯선 풍경 때문이 아니었을까. 실제로 극 중 인물 김봉구가 도꾸가와 이에야스로 분장한 채로 제주도 주민센터에 간 상황 자체가 희극적이고 만화적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런 생각도 할 수 있다고 생각돼요. 그런데 제가 이 작품을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정서가 있다. 연출적으로는 희화성 보다는 김봉구로 대변되는 이미지를 만들고 싶었다. 아직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앞날에 대한 불안과 암울함으로 피해의식에 빠져있는 이 시대 볼품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보편적 인간성을 다루는 것이었다. 배우란 약간의 특별한 일을 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김봉구의 마지막 대사처럼 말이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실제 역사적 이야기인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사명대사의 담판을 통한 한일 평화적 메시지도 보이던데.

" 노경식 작 '두 영웅' 작품이 실제로 사명당과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담판을 다룬 연극인데, 원작에서 도꾸가와 이에야스를 명장으로 그려진다. 역사적으로도 명장이라 할 수 있다. 목숨을 걸고 적진으로 들어가 당당하게 요구하는 사명당과 배포 있게 받아들이는 도꾸가와 이에야스의 이야기이니 평화적 메시지도 보였을 거라 생각된다. 그러나 희곡 두 영웅의 주제가 이 작품 <도꾸가와 이에야스 주민센터에 가다>와 상통하지는 않는다. 두 영웅의 평화적 메시지는 극 중 극의 내용일 뿐이다. 작품 주제와는 별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마지막 두 영웅 공연 장면은 정말 스펙타클하게 만들어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 스펙타클한 장면구성은 어떤건가.

"블록버스터급으로 만들어서 관객들에게 연극성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번 작품에서 아쉬운 점이다. 재연의 기회가 오고, 제작여건도 허락된다면 두 시간짜리 원작 두 영웅을 마치 예고편처럼, 뮤직비디오처럼 단 십 분으로 압축해 어마어마한 퍼포먼스로 연출적으로 구현해보고 싶다. 원작 두 영웅에는 가토 기요마사와 조선군이 치열하게 싸웠던 울산성 전투 장면이 잠깐 거론된다. 이 장면을 실제 무대에서 해보고 싶었다. 사다리를 타고 성벽을 기어오르는 왜군들, 그 왜군들에게 돌덩이를 던지는 조선군, 사다리가 뒤로 넘어가고 매달리는 군졸들이 낙하하는 장면들이다. 진짜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장면들을 연극무대로 재연해 관객이 입이 떡 벌어질 만큼의 스펙터클을 구현해보고 싶다. 기회가 올지 모르겠지만."(웃음)

─그는 역사극 영화감독이 되는 것처럼 손동작을 해 보였다. 연극무대를 입체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그의 연극무대는 이미 영화 한두 편을 찍고 있는 듯해 보였다. 말을 끊고 물었다. "대소도구 몇 개로 장면전환하고, 배우들도 멀티 역을 하던데. 연출적으로 전략이 필요했을 것 같다."

"다양한 배역들이 정신없이 등장해서 집단의 에너지를 발산하는 앙상블을 선호하는 편이다. 연극은 배우의 힘이 작용하는 원시적 작업이다. 그래서 배우의 힘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앙상블이라고 생각한다. 더 많은 배역과 장면을 구성하고 싶었다. 연습 기간의 물리적 한계와 난점들이 발생해 이번 공연에는 실행할 수 없었다."(웃음)

도꾸가와 이에야스 주민센터에 가다. 극단 대학로극장
도꾸가와 이에야스 주민센터에 가다. 극단 대학로극장

─ 이우천 연출하고는 90년대 초반 만난 것 같다. 극단 대학로극장 작품의 방향성은.

" 아주 어릴 때 정승우 배우를 통해 선생님을 뵈었다. 그 뒤로 뵐 때마다 처음 뵈었을 때 어린 그때가 생각나 기분이 묘했다. 극단 작품 방향성이 아주 강고하게 형성되어 있지는 않다. 제가 너무 극단적으로 어떤 것을 규정하는 것에 거부감이 좀 있다. 극단 단원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어서 더 그런거 같다. 어떤 작품을 하겠다, 어떤 철학을 구축하겠다, 라기보다 그때그때 마주하게 되는 현실과 상황에 따라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연극 작업을 진행하는 편이다. 앙상블을 통한 무대 표현을 선호하고, 참여자들의 아날로그적인 감수성과 직접 소품과 무대를 만들고 작품에 본인을 갈아 넣는 연극을 추구하는 성향은 분명 존재하는 것 같다."

─ 이우천 연출은 지난해 대한민국연극제 예술감독도 했다. 현재는 인천시립극단에서도 활동하고 있는데. 작품구상은?

"2023년도에 대한민국연극제 제주 예술감독을 했었고 인천시립극단 부연출로 근무하고 있다. 구상하겠다고 해서 작품이 만들어지는 것 같지는 않다. 일상에서 작품 영감이 떠오르는 거 같다. 실행을 못 하는 게 문제다. (웃음) 쓰고 싶은 희곡이 서너 개는 되는데 이중 한두 개는 5년 전부터 써야지 했던 것들인데 손도 못 대고 있다. 다행히 연출로는 좋은 희곡을 읽게 되면 무대가 그려지고 장면이 떠오른다. 연출을 위한 노력을 따로 하지는 않는데, 긍정적 에너지가 일상에서 계속 발현되는 거 같다. 조만간 큰 작품들을 쓰고 공연할 계획이다."

─ 마지막으로 이우천 연출은 연극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좋아하는 말 중에 "그럼에도 우린 웃음을 잃으면 안 된다"란 문장이다. 누구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삶이 아무리 힘들고 비극적이더라고, 웃자'라는 뉘앙스가 풍겨서 좋아한다. 자신을 억압하는 고통과 당당하게 맞서려는 배포가 느껴져 아주 좋아하는 말이다. 관객이 제 연극을 보고 웃기를 희망한다. 그 웃음이 불쾌, 고통 등으로 인한 부정적 웃음만 아니라면 관객이 웃는 연극이 최고의 연극이라 생각한다. 웃음은 눈물보다 훌륭한 치료제다. 이우천 연극을 통해 관객이 웃기를 바랄 뿐이다."

20대부터 포스터를 붙이며 연극연출자로 기초체력을 다진 이우천은 데뷔한 지 30년이 되었어도 상상하는 에너지는 예술가적인 아이 같았고, 극단 대학로 극장과 무대를 끌고 가는 전투력만큼은 대형공연들이 부럽지 않아 보였다. 속옷 한 벌로 무대에서 버티면서도 명품브랜드를 만들어 낼 줄 아는 게 이우천의 생존력이고, 무대에서 연극의 본질을 지키려는 게 이우천의 연극성이다.

이우천.
이우천.

김건표 대경대학교 교수(연극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