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 (3)정치·외교·안보 협력 강화

입력 2025-08-03 12:30:00 수정 2025-08-03 20:29:51

미중 양강 구도 속 한일 협력으로 인도·태평양지역 새 질서 모색해야
한일은 북한·중국·미국 리스크에 공동 노출..정치·외교·안보 협력해야 상호 이익

박윤주 외교부 제1차관(왼쪽)이 7월 18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한일 외교차관회담에서 후나코시 다케히로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과 기념 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윤주 외교부 제1차관(왼쪽)이 7월 18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한일 외교차관회담에서 후나코시 다케히로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과 기념 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이스라엘과 이란의 군사적 충돌 등으로 국제정세의 혼란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북한과 중국, 북한과 러시아가 더욱 밀착하면서 한국에 대한 안보 위협도 증대되는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트럼프 정부의 미국 우선주의와 거래적 접근, 탈(脫)자유주의 지향 등은 국제질서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한미관계에도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 같은 사정은 일본도 마찬가지다. 변화하는 동아시아 국제질서, 중국의 팽창과 북한의 위협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서는 안보 분야에 공동의 이익이 있는 한일 양국의 협력이 필요하다. 양국은 이제 과거보다는 미래에 중점을 두고 국익 관점에서 정치·외교·안보 협력을 강화해나가는 노력을 기울여나가야 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현지지도 아래 지난해 10월 31일 아침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현지지도 아래 지난해 10월 31일 아침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포-19형' 시험발사를 성공적으로 단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한일 양국이 연계된 현안

정치·외교·안보 분야에 있어 한국과 일본은 여러 위험에 함께 노출돼 있다. 우선 북한 리스크다.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가 계속되고 있으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해 러시아와의 밀착도 진행 중이다. 북한의 군사적 역량이 강화되고 있다는 점은 한일 양국 공통의 큰 위협 요인이 되고 있다.

다음은 중국 리스크다. 중국은 미중 전략 경쟁 속에 군사력을 강화하고 있고 해양에서의 세력 확대를 추구하고 있다. 중국의 군사력 강화라는 장기적 위협과 최근 중국의 해양 구조물 설치와 같은 단기적인 변화에 양국 모두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다.

최근에는 미국 리스크도 상당하다. 트럼프 정부는 중국, 러시아, 북한과의 관계에 있어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관세 문제에서도 동맹국 이점은 없었다. 즉 트럼프의 탈(脫)자유주의와 보호무역주의, 동맹국과의 관계 소홀 등은 한국과 일본의 장·단기적 이익에 반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미중 경쟁의 격화와 장기화도 한일 양국에 커다란 위험 요인이다.

김명수 합참의장(가운데)이 7월 11일 서울 용산구 합동참모본부 청사에서 열린 한미일 합참의장 회의에서 댄 케인 미국 합참의장(왼쪽)과 요시다 요시히데 일본 통합막료장과 기념 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명수 합참의장(가운데)이 7월 11일 서울 용산구 합동참모본부 청사에서 열린 한미일 합참의장 회의에서 댄 케인 미국 합참의장(왼쪽)과 요시다 요시히데 일본 통합막료장과 기념 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치·외교·안보 협력의 필요성

한일관계를 양자 관계의 틀에서만 바라본다면 협력의 이익이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미중 전략 경쟁을 고려하고 동아시아 및 글로벌 관점에서 국익을 분석한다면, 협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더 크다.

물론 대미, 대중, 대러, 대북 정책에 있어 한일 양국의 이익이 일치할 수는 없지만 미중 양강 구도 속에서 양국의 협력은 외교적 공간을 넓힐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또한 한국과 일본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한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로부터 이익을 얻는 수혜 국가라는 점에서, 협력을 통해 이러한 제도적 근간들이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 서로의 국익에 부합한다.

한일 양국은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대한 대응 및 북한 비핵화에 대해서도 목표를 공유하고 있다. 따라서 양국의 안보 협력은 반드시 필요하며 이를 통해 미국 트럼프 정부의 일방적인 대북 접근 등에 관여할 수 있는 여지를 넓힐 수 있다.

동아시아지역 패권 국가인 중국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한국과 일본은 협력해야 한다. 중국의 군사적 팽창과 공격적인 외교 방식은 한국과 일본 모두에 큰 위협 요인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미중 전략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양국의 전략적 협력도 필수다. 미국과 중국에 대한 무역(경제)·안보 의존도가 높은 한국과 일본은 '비대칭적 상호 의존'의 문제를 가지고 있어 미국과 중국의 요구에 대응하는데 취약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한국과 일본은 협력을 통해 경제·안보 차원에서 미중 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문제를 극복할 기회를 창출할 수 있다. 특히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주의와 경제적 압박에 대응하는데 있어 양국의 논의와 협력은 중요하다.

이 뿐 아니다. 한일 양국은 글로벌 기여 확대를 위해서도 노력하는 중이므로 협력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제 대한민국은 국제적 위상이 높아진 만큼 기존 동북아 중심 외교, 4강 외교를 벗어나 글로벌 국가로 도약하기 위한 외교적 지평을 넓혀야 하는 시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인간안보(군사적 위협 뿐 아니라 질병, 빈곤, 환경 파괴 등 비군사적 위험까지 포함한 개념), 기후변화, 에너지, 보건, 디지털, 재난 위기 관리 등 비전통적 안보 분야에서 적극적 역할을 하고 있는 일본의 경험을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는 양국 협력을 강화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유용하다.

1998년 10월 8일 김대중 대통령(오른쪽)과 오부치 게이조 일본총리가 영빈관에서 한일 공동선언에 서명한 뒤 악수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1998년 10월 8일 김대중 대통령(오른쪽)과 오부치 게이조 일본총리가 영빈관에서 한일 공동선언에 서명한 뒤 악수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한일의 전략적 협력 방안

동아시아의 안보 지형이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가운데 한일 양국은 정치·외교·안보 협력에 있어 새로운 가능성과 논리를 모색해야 한다.

첫째, 미중 전략 경쟁은 초강대국들 간 권력정치의 양상을 띠므로 한일 양국은 미들 파워(middle power, 중견국) 입장에서 상호 협력을 추구하면서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 때 한일 협력은 단순히 미중 전략 경쟁의 관점이 아닌, 새로운 지역과 지구 안보 질서를 모색한다는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

일본은 이미 인도·태평양 구상과 쿼드(미국·일본·인도·호주 4개국 대화·협의체)와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창출 과정에서 리더십을 발휘해왔다. 한국도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 참여 등을 통해 규범 제정과 새 질서 구축에 적극 나서야 한다.

둘째, 중국과 북한의 핵·미사일 무기 능력 증강과 핵 전략의 변화로 핵전쟁의 위험이 커진 가운데, 이에 대응하기 위한 한일 양국의 전략적 협력이 필요하다. 북한과 중국 문제는 별개가 아닌 동아시아 지역 질서 안정에 직접 연관되는 현안이므로 한국과 일본은 인도·태평양이라는 전략적 차원에서 정세 인식을 공유하고 구체적인 협력 방안을 위한 정책 구상에 나서야 한다.

아울러 한반도 유사시 일본이 미군의 후방기지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사전에 일본 자위대의 역할 분담 및 활동 제한을 논의하고 국방당국 간 대화를 통해 제도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셋째, 아시아 동맹 구조의 근본적 변화 과정에서 한미일 협력의 이상적 형태를 만들어가야 한다. 한국과 일본의 안보는 구조적으로 연결돼 있고 미국을 축으로 한 안보 협력 역시 오랫동안 지속돼 왔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바퀴살 동맹체제가 다층적 안보협력체제로 바뀌는 과정에서 미국의 동맹국들 사이에 갈등의 발생 소지가 있다.

따라서 한일 양국은 새로운 동맹체제가 위계적 동맹체제가 아닌 분업적 동맹체제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중국해, 동중국해, 대만해협, 한반도 등 중요 분쟁 지역에 대한 국가들 간 이해관계와 위협 인식을 식별하고 이에 기초해 바람직한 안보 질서를 위한 역할을 재정비해야 한다.

넷째, 국제질서 변동 및 인도·태평양 전략 차원에서 한일 양국은 '밖으로의 안보 협력' 형태를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비전통 안보 분야가 그것이다. 이를 통해 서로를 경쟁 상대가 아닌 상호 협력하고 역할을 분담하는 우호 관계로 발전시킬 수 있다.

글로벌 리더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글로벌 기여가 중요하므로 아세안(ASEAN) 및 아프리카 국가들에 대한 공동의 관심사를 바탕으로 국제사회에서의 지지도 확대할 수 있다. 이는 곧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이후 양국이 약속했던 국제사회 공헌을 위한 협력의 연장선이다.

〈도움말 한의석 성신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