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폭우에 8천여명이 집을 잃었다
5시간여 동안 비 215㎜ 쏟아져…시가지 잠기고 도로·제방 끊겨
임시 수용소마다 이재민 가득
이듬해 가흥산 잘라내 물길 터…영주역 옮기고 주택단지 건설
복구 행사에 2만여 축하 인파
1961년 7월 11일. 그날 영주는 악몽의 밤이었습니다. 새벽 3시 30분, 찔끔거리던 장맛비가 폭우로 변하더니 사나운 괴물로 돌변했습니다. 오전 5시 20분, 영주 남원천을 내달리던 괴물은 가흥산 자락을 휘돌다 끝내 제방(현 영주시민회관 부근)을 타고 넘었습니다.
괴물, 탁류가 들이친 뒤 한 시간 만에 시가지 3분의 2가 잠겼습니다. 최고 깊이 4m. 저지대 가옥은 물속으로, 2층집은 겨우 지붕만 남았습니다. 이날 오전 9시까지 5시간 동안 내린 비는 무려 215mm. 다급해진 경찰은 시가지를 삼키는 물을 빼기 위해 영주읍 동편을 막고 선 하망천 제방을 끊었습니다.
괴물은 헐린 제방을 넘어 다시 남산들과 휴천리 일대를 휘젓다 중앙선 철길을 파괴했습니다. 이날 오후 5시 현재 피해 규모는 가옥 5천900세대 중 1천950세대 침수, 사망 5명, 부상 7명, 수재민 8천649명, 전답 피해 379정보(113만7천평), 가축 피해 1천479마리. 도로와 제방은 13군데나 형체도 없이 쓸려갔습니다.
오후 늦게 반짝 해가 나더니 12일 새벽부터 아침까지 또 성난 폭우가 39mm. 음산한 천둥과 번갯불이 눈물짓는 수재민을 더 구슬프게 했습니다. 집을 잃은 주민은 근 1만명. 시내 높은 공원으로 쫓겨온 주민도 2천여 명. 군청, 초등학교, 중학교 등 임시 수용소 마다 이재민이 수두룩했습니다.
마의 탁류가 빠지고 해가 난 12일, 영주는 처참했습니다. 철길과 외부로 통하는 도로란 도로는 다 끊겨 고립무원. 이런 난리는 영주 이래 처음이었습니다. 가옥은 겨우 뼈대만 남은데다 옷가지며 이불은 흙탕물 투성이. 양식과 땔감은 썩고 떠내려가 어느 하나 성한 게 없었습니다.
전국에서 보내 온 구호품에 힘입어 재건이 시작됐습니다. 새벽 4시부터 토사로 덮인 거리 청소에 까까머리에서 꼬부랑 노인까지 다 나왔습니다. 한낮 35℃ 폭염에도 삽과 빗자루가 쉴 줄 모르고, 집집마다 망치 소리가 밤을 잊었습니다.
제방과 도로 복구, 주택 건설은 군인들이 도맡았습니다. 2군 사령부 공병 1개 대대, 36사단 중장비 10대가 하루 15시간씩 강행군을 벌였습니다. 휴일도 없이 잠도 줄여 영주~풍기, 영주~안동 간 도로는 복구 열흘 만에 개통하고 영주~예천 도로와 중앙선 철길은 9월 말이 되서야 겨우 한숨 돌렸습니다.
문제는 영주를 관통하는 남원천. 하천 바닥이 시가지 보다 높은 데다 가흥산을 S자로 휘돌아 큰 비가 오면 언제든 또 제방 넘을 기세였습니다. 이 때문에 응급 복구는 해봐야 무용지물. 대안은 산 허리를 잘라 물길을 곧게 펴는 직강화 공사. 영주 지도를 바꿀 유례없는 대공사였습니다.
이듬해 3월 30일, 마침내 새 역사를 썼습니다. 난공불락이라던 가흥산을 잘라 새 물길을 냈습니다. 이에 따라 기존 하천에 새로 생긴 토지 33만578㎡(10만평)에는 영주종합운동장·읍사무소·재건주택·시범주택단지를 건설하고, 내친김에 중앙시장에 있던 영주역은 더 넓은 휴천동으로 옮기기로 했습니다.
영주 장날에 맞춰 이날 열린 수해 복구 준공식에는 정부 요인에다 영주읍민, 멀리 순흥·부석면민까지 영주 이래 최대 2만 인파가 모였습니다. 준공식에 이어 군 대항 농악대회, 노래자랑으로 종일 잔치가 벌어져 시내에는 여관을 못 구해 통금 시간이 넘도록 법석을 떨기도 했습니다.
단시간에 쏟아진 폭우가 땔감 등 무분별한 벌목에 황폐해진 민둥산을 할퀴며 삽시간에 시가지를 덮친 영주 대홍수. 하지만 주민들은 보란듯이 영주를 재건했습니다. 연 인원 8만8천335명. 외국 기술자들도 불가능하다는 난공사를 9개월 만에 해치운 인간승리 현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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