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의 매력에 눈뜨게 할 열여섯 번의 선율 같은 대화

입력 2025-06-25 16:02:37 수정 2025-06-25 16:05:14

[책] 당신 곁의 아리아

[책] 당신 곁의 아리아
[책] 당신 곁의 아리아

"아리아는 인물의 내면이 가장 또렷하게 드러나는 순간,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감정이 정점에 이르는 장면에 울려 퍼지는 독백이자 노래이다. 그 노래를 통해 우리는 한 인간의 성격과 갈등, 마음속 진심을 가장 선명하게 마주할 수 있다."

'한국의 카르멘'으로 불리며 국내외 오페라 무대에서 활약해온 메조소프라노 백재은과 해박한 지식과 유쾌한 해설로 클래식의 대중화에 앞장서 온 음악평론가 장일범이 함께 '당신 곁의 아리아'라는 제목의 책을 펴냈다. 평소 cpbc 평화방송 라디오 '장일범의 유쾌한 클래식'에서 백재은이 '백재은의 행복한 오페라' 코너를 맡으면서 나눠 온 수많은 대화들이 스튜디오를 넘어 책으로 이어진 것이다.

역사에서도 정사(正史)보다는 야사(野史)가 더 흥미로운 법. 두 사람의 대화 형식으로 풀어 낸 이 책은 책을 읽는다는 느낌보다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듣고 있는 마냥 가볍고 유쾌하게 오페라 속에 숨겨져 있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오페라의 가장 빛나는 순간인 '아리아'를 중심으로 단순한 음악 해설을 넘어서 아리아의 바탕이 된 문학 작품, 당시의 시대상, 구조와 작곡가의 의도, 음악사의 맥락, 작곡과 관련된 재미있는 뒷 이야기, 오페라 무대 뒤의 해프닝, 가수와 연출의 선택 등 폭넓지만 결코 지루하거나 장황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차곡차곡 담겼다. 사소한 에피소드에서 철학적 사유를 넘나드는 대회의 전개는 오히려 지루하기만 한 어떤 오페라 해설서보다 쉽게 읽힌다.

널리 알려진 오페라 아리아들은 사랑에 빠졌을 때, 절망 속에서 허우적거릴 때, 간절히 소망하는 바가 있을 때 등 절절한 인간의 감정을 집약적으로 담아냈다. 챕터별로 한곡씩 감상하면서 책을 읽어나가다보면 오페라를 통해 펼쳐보인 인간의 사랑, 열망, 운명이라는 주제 속으로 스며들게 될 것이다.

메조소프라노 백재은(좌)과 음악평론가 장일범(우).
메조소프라노 백재은(좌)과 음악평론가 장일범(우).

제1부에서는 음악 속에 피어난 사랑의 순간들을 모았다. "사랑은 길들일 수 없는 새"라고 노래하는 '카르멘'의 '하바네라'는 오페라 역사상 가장 강렬한 여성 캐릭터의 등장을 알리는 곡이다. 저자 백재은이 수없이 노래한 대표작이기도 하다. 비제는 열차에서 당시 자신보다 14살 많은 프랑스의 여류 대명사였던 셀레스트 모가도르에게 반해 그녀가 좋아하던 음악과 그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오페라 '카르멘'을 작곡했다고 한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여성의 주체성이다. 순종적인 여성이 아닌 욕망하고 판단하며 움직이는 주체라는 것이다.

제2부에서는 도전과 용기, 열망이 깃든 아리아들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오페라 '투란도트'에서 "공주는 왜 수수께끼를 내서 왕자들을 참수하는 걸까?" 의문을 품는 저자 백재은의 엉뚱하고도 허를 찌르는 질문으로 시작해 이야기는 시대적 배경과 역사속 실존 인물 이야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면서 이 오페라 속 가장 유명한 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는 단순히 감미로운 선율로만 기억되는 아리아가 아니라 파국을 앞두고도 끝내 희망을 잃지 않겠다는 인간의 의지, 즉 내면의 승리 선언이라는 해석을 덧붙인다.

제3부는 운명과 구원, 그 마지막 진심을 담은 가장 극적인 아리아들을 '열정의 끝, 운명의 문턱에서'라는 주제 아래 모았다. 푸치니의 '토스카' 중 '별은 빛나건만'은 죽음이 임박한 순간에도 삶을 향한 갈망은 꺼지지 않음을,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는 삶을 예술로 살아온 여인의 고독한 기도를 보여준다. '마술피리'의 '내 마음은 지옥의 복수심으로 불타오르네'는 모성의 분노를 폭발적으로 그려내고, 사랑의 시작과 끝을 노래하는 '사랑의 즐거움을 아는 당신'과 '어디로 갔나 우리의 아름다운 날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오래 전에 작곡된 오페라 작품들이 오늘날까지도 왜 많은 음악애호가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인지, 이 책을 통해 쉽고도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오페라가 사람의 본성과 삶의 갈림길을 비추는 예술임을. 306쪽, 1만9천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