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도 약도 막혔다'…결혼이주여성, 건강 불평등의 사각지대에 놓이다

입력 2025-06-24 08:58:44

조사 체계 전면 개편 시급…"건강 불균형 해소 위한 출발점부터 다시 짜야"
"몸도 마음도 아픈 이주 여성들"…"제대로 된 데이터조차 없다"

대구 달성군가족센터에서 열린
대구 달성군가족센터에서 열린 '2024 결혼이주여성·외국인주민과 함께하는 다(多)복 다(多)복 설명절 한마당' 행사에서 다문화 여성들이 윷놀이 체험을 하고 있다. 매일신문DB. 본 기사와 관련 없음

결혼이주여성은 가족 건강을 책임지는 '건강 관리자'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본인의 건강권은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이들은 언어 장벽과 고용 불안정, 사회적 고립 등 복합적인 위험에 놓인 채, 신체적·정신적 건강 취약성까지 중첩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건강조사 체계는 이들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 정례적이고 다문화 감수성을 반영한 조사체계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결혼이주여성, 신체·정신건강 모두 취약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이달 초 발표한 '결혼이주여성의 건강 취약성과 조사체계 개선'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결혼이주여성은 한국 내 이주민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면서도 건강조사에서는 실태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들은 결혼·출산·가사노동 등 복합적인 역할 수행 속에 신체·정신건강 모두에서 뚜렷한 취약성을 드러낸다.

2023년 기준 결혼이주여성은 14만369명으로 전체 결혼이주민(17만4천895명)의 약 80.3%를 차지한다. 이들 중 중국(한국계 포함) 출신이 가장 많고, 이어 베트남, 일본, 필리핀 순이다.

결혼이주여성의 건강 문제는 복합적이다. 신체건강 면에서 이들은 저체중·빈혈·B형간염 등 일부 질병의 유병률이 내국인 여성보다 높고, 비만이나 저체중 상태에 놓인 비율도 46.6%에 달한다.(국내 여성 31.6%). 정신건강 영역에선 37.9%가 우울 증상을 경험했으며, 특히 소득이 낮거나 한국어 능력이 부족한 여성일수록 그 비율이 높았다.

또한 필리핀(31.5%)·태국(30.2%)·캄보디아(30.1%) 출신 결혼이주여성의 우울 증상 경험률은 상대적으로 높은 수치를 보였다. 이러한 현상은 언어 소통의 어려움과 낮은 사회적 지지, 문화 적응 스트레스 등이 복합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사회경제적 조건도 건강을 위협하는 주요 요인이다. 결혼이주여성의 평균 노동시장 진입 기간은 입국 후 3.15년으로, 1년 이내 취업하는 경우는 37.9%에 불과하다. 근로자의 73.1%가 주당 36시간 이상 근무하고 있으며, 대부분 저임금·고위험 직군에 집중돼 있다.

더불어, 사회적 고립도 문제다. 자녀 교육, 경제적 어려움 등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한국인보다 모국 지인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며, 여가 활동 상대가 없다는 응답도 37.3%에 이른다. 최근 1년간 차별을 경험했다는 비율도 16%에 달했지만, 79.6%가 이에 대응하지 못하고 참고 넘긴다고 답했다.

봉화군청을 방문한 이주여성과 그 가족들이 기념 사진을 촬영했다. 봉화군 제공. 본 기사와 관련 없음
봉화군청을 방문한 이주여성과 그 가족들이 기념 사진을 촬영했다. 봉화군 제공. 본 기사와 관련 없음

◆"현실 파악을 위한 건강조사 체계 개선 필요"

그런데도 현행 건강조사 체계는 이들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건강영양조사나 지역사회건강조사의 경우 한국어 기반 조사에 국한되어 언어 장벽이 큰 이주여성은 조사에서 탈락하거나 건강 상태가 과소 추정될 위험이 있다. 다문화가족 실태조사는 건강 관련 문항이 제한적이며, 만성질환 유병률이나 건강행태에 대한 정보는 거의 수집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지난해 질병관리청의 수탁을 받아 '결혼이주여성 건강조사 예비연구'를 수행하고 조사 프로토콜을 개발했다. 다국어 설문지와 문화적 맥락을 고려한 문항 구성으로 건강 실태를 포괄적으로 조사했으며, 향후 정례 조사로 확장될 가능성을 열었다.

곽윤경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보고서를 통해 "결혼이주여성의 건강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닌 가족과 지역사회의 건강 수준에 직결된 사안이며, 이들의 특수성을 반영한 조사체계 개편이 정책 수립의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