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개최된 치의학교육학회 학술대회에 참가했다. 치의학교육 뿐만 아니라 의학교육 관계자들도 자리를 함께 해서 국내 의학교육 및 치의학교육의 여러 현안에 관한 주제발표와 자유토론이 진행됐다. 그 중에서 현재까지도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의정갈등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있었고 그에 대한 답변 과정에서 의학교육에서 사회적 책무성의 강화가 필요하고 그와 더불어 '의정갈등의 근본 해결책은 바로 의대입시제도의 개혁'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윤석열 정부가 의대 정원 증원을 밀어붙인 이유는 필수의료와 지역의료가 붕괴가 의사 수 부족에 기인하기 때문이며, 따라서 의사의 수를 대폭 늘리면 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보건복지부 차관이라는 사람은 의사의 수가 많으면 '낙수효과'에 의해서 기피 분야로 진출하는 의사가 있을 것이라는 막말을 해서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의료진에게 자괴감을 안겨주고 전체 의료계의 분노를 유발하기도 했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이 무너지고 새 정권이 출범하였으나 의정갈등은 아직도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것은 현재 우리나라 의료제도가 여러 당사자들의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혀 있어서 쾌도난마식의 단순명쾌한 해법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생각된다.
기본적으로 우리나라의 의료제도는 자본주의적 요소와 사회주의적 요소가 결합된 독특한 구조로 되어 있는데, 이들 두 가지 요소는 상호 배타적이어서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의료의 왜곡이 발생하기 쉽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의사들의 특정 의료 분야 기피와 쏠림이 바로 그런 예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의정갈등의 해소를 위해서는 의료 분야의 여러 당사자들 간의 이해관계를 잘 조정함과 더불어 필수의료에 대한 보상체계의 보완 및 지역의료에 대한 과감한 투자, 그리고 의료분쟁에서 의사에게 과도한 책임을 묻는 현행 제도의 개선이 꼭 필요하다는 것은 의료계뿐만 아니라 여야 정치권에서도 주장된 바가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작금의 의정갈등 발생의 일차적 책임이 정부에 있다고 해도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있음을 부정할 수 없음이다.
의사면허제도는 의사와 사회 사이에 일종의 묵시적 계약에 의해서 성립됐다고 볼 수 있다. 즉, 사회는 면허제도를 통해서 의사에게 진료권이라는 배타적 권리를 주는 대신 의사는 신뢰, 정직, 공정, 그리고 양질의 진료를 통해서 사회 발전과 복지 향상에 기여해야 하는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 의사와 사회 사이의 묵시적 약속인 것이다. 이것을 의사의 사회적 책무라고 하는데, 그 동안 의료계에서 이런 부분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고 의학교육에서도 이에 대한 강조가 미흡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최근에는 전국 대부분의 의대와 치의대에서 의료인문학에 대한 교육을 강화함으로써 의사로서의 품성을 고양하고 사회적 책무를 주지시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좋은 인성과 사회적 책무감을 갖춘 양질의 의사를 배출하는 것이 비단 의학교육을 통해서만 이뤄지기는 힘든 것이 사실이다. 특히 지식전달 위주로 이루어지는 우리나라 의학교육의 현실을 고려하면 신입생 선발 단계에서부터 의사로서 좋은 자질을 갖춘 학생을 선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다.
과거에 미국의 어느 의대에서 SAT 점수가 매우 높은 학생을 '헌혈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선발에서 제외한 사례가 있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다. 의사로서의 자질은 보지 않고 오로지 수능 점수와 내신성적과 같은 정량적 평가기준만으로 신입생을 선발해야 하는 우리나라 대학입시제도가 원망스러울 따름이다. 의대입시제도의 자율화가 의료개혁의 출발점이다.
최재갑 경북대치과병원 구강내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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