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부 기자
"제 손으로 자식의 장기를 기증한다고 생각이나 해봤겠습니까…만감이 교차했었다고 봐야죠"
장기기증 기획 시리즈를 취재하면서 세 살배기 아들을 떠나보낸 한 아버지에게서 들은 말이다. 그는 중환자실 앞에서 인생의 가장 고통스러운 선택을 마주해야 했다.
'가족이 세상을 곧 떠난다'는 통보를 받은 직후 기증을 결정하는 일은 감당하기 벅차다. 마지막 인사도 건네지 못한 순간에, 타인을 위해 장기를 내어달라는 말이 또 한 번 상실감을 불러일으켜서다.
대부분 유족이 이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면서 생명나눔의 기회를 흘려보낸다. 2017년부터 2023년까지 장기기증이 가능한 뇌사 추정자 통보 건수는 1만6천526건. 실제 기증된 사례는 19.5%(3천224건)에 그친다. 기증자 한 명이 평균 3개의 장기를 나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기간 4만여 명이 새 삶의 기회를 잃은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장기기증이 활성화되지 못하는 이유로는 유교적 사고가 꼽힌다. 부모님이 주신 신체를 훼손해선 안 된다는 전통적 관념이다. 많은 이들이 장기기증이 고귀한 나눔이라는 데 공감하지만, 내 가족만큼은 안 된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기증 참여가 저조한 현실을 벗어나려면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장기기증을 '사회적 약속'으로 여기는 인식이 국민 전체에 깔려야 한다는 것이다.
해외 사례를 보면 해법이 있다. 스페인과 프랑스 등 기증 선진국은 '옵트아웃' 제도를 도입하면서 모든 국민을 잠재적 기증자로 간주하고 있다. 기증을 원하지 않는 사람만 거부 의사를 드러내도록 한 이 제도는 기증을 '선택'이 아닌 '전제'로 인식하게 만든다. 반면 우리나라는 기증에 동의한 사람만 장기를 적출할 수 있게 하는 '옵트인'을 택하고 있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다른 국가에 비해 기증 건수가 눈에 띄게 적다. 2023년 기준 한국의 뇌사 장기기증자는 인구 100만명당 9.3명으로 스페인(49.3명)에 한참 못 미친다.
지난 2018년 박능후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정감사에서 "우리 사회에서 옵트아웃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 같다"며 도입에 난색을 표했다. 그로부터 7년이 흘렀고 생명나눔을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환자는 30% 이상 늘었다. 2019년 5.8명이었던 하루 평균 사망자는 2023년 8명까지 치솟았다.
애써 꺼내지 않았던 옵트아웃을 다시 논의해야 할 때다. 기증을 사회적 약속으로 정착시켜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기증 후진국이라는 오명을 벗고, 생명나눔이 일상이 되는 사회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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