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도핫플레이스] 제주 메밀꽃 명소

입력 2025-05-21 13:52:44

제주시 조천읍 와흘리 와흘메밀농촌체험휴양마을 메밀밭에 관광객들이 활짝 핀 메밀꽃 사이를 산책하며 제주의 정취를 만끽 하고 있다.
제주시 조천읍 와흘리 와흘메밀농촌체험휴양마을 메밀밭에 관광객들이 활짝 핀 메밀꽃 사이를 산책하며 제주의 정취를 만끽 하고 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이효석의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 중 이 문장이 워낙 유명하다 보니, 메밀꽃을 직접 본 적이 없는 사람들도 '메밀꽃'하면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는 '소금'일 것이다.

흰 꽃이 들판을 덮는 그 모습은 실제로도 소금을 흩뿌린 듯한 인상을 주는데, 이 풍경을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제주다.흔히 메밀하면 강원도 봉평을 떠올리지만, 실제 국내 메밀 재배 면적과 생산량 1위는 제주특별자치도다.

기후가 따뜻하고 강수량이 풍부한 제주에서는 봄과 가을 두 차례 메밀을 심고 수확할 수 있어, 다른 지역보다 재배 주기가 빠르고 생산량도 많다.

성읍민속마을 메밀밭
성읍민속마을 메밀밭

◆늦봄의 하얀 숨결, 메밀꽃

뜨거운 계절을 앞두고 잠시 숨을 고르는 이 시기, 제주 메밀밭은 흐드러지게 피어난 꽃물결로 여행객과 도민들의 발길을 사로잡는다.햇살 아래 순백으로 반짝이는 꽃잎들은 바람결에 따라 일렁이며 고요한 시골길을 하얗게 덮는다.누군가에겐 일상 속 쉼표가 되고, 또다른 누군가에겐 사진 한 장 속의 추억이 된다.

메밀꽃 한 송이는 손톱보다 작지만, 수백 송이가 모이면 들판 가득 눈송이처럼 퍼지고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하얀 소금을 뿌린 듯한 풍경이 펼쳐진다.잔잔한 바람에도 흔들리는 그 모습은 소박하지만 눈부신 꽃이다.

메밀꽃의 줄기는 속이 비어 있고 붉은빛이 감도는 연녹색으로 자라며 키는 40~70㎝에 이른다.마디마다 부드러운 털이 자라 있어 들판을 따라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잔물결처럼 출렁인다.줄기에는 삼각형 모양의 잎이 어긋나게 달리는데, 끝이 날카롭게 뾰족하고 표면은 매끈하다.

꽃은 보통 7~8월에 피지만, 따뜻한 제주에서는 이른 5월부터 가지 끝과 잎겨드랑이에서 작은 꽃 무리를 피워내며 메밀들이 하나둘씩 꽃망울을 터뜨린다.눈처럼 하얀 이 꽃들은 사실 꽃잎이 아닌 꽃받침으로 다섯 갈래로 갈라져 꽃잎처럼 보인다.작지만 향기가 은은하게 펴지며 꽃 속에는 꿀이 숨어 있어 곤충들을 유인하는 달콤한 유혹이 된다.꽃이 지고 난 뒷면 세모진 암갈색 열매가 맺히는데, 이 열매가 바로 메밀묵과 냉면의 원료가 된다.

메밀꽃(Fagopyrum)은 '연인'이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어 흰 꽃잎 사이로 바람이 스치면 그 은은한 향기와 함께 오래된 사랑의 기억도 살랑이며 깨어나는 듯하다.그래서일까. 이 꽃 앞에 서면 누구나 잠시 멈춰 서게 된다. 손을 맞잡은 연인도, 카메라를 든 여행객도, 혼자 걷는 이도.이처럼 순백의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메밀꽃을 제일 먼저 즐길 수 있는 곳이 바로 제주다.

5월과 6월, 제주의 메밀꽃 시즌을 맞아 제주 명소를 추천해본다.

제주시 조천읍 와흘리 와흘메밀농촌체험휴양마을 메밀밭에 관광객들이 활짝 핀 메밀꽃 사이를 산책하며 제주의 정취를 만끽 하고 있다.
제주시 조천읍 와흘리 와흘메밀농촌체험휴양마을 메밀밭에 관광객들이 활짝 핀 메밀꽃 사이를 산책하며 제주의 정취를 만끽 하고 있다.

◆와흘 봄 메밀문화 축제

제주의 늦봄을 가장 먼저 메밀꽃으로 수놓는 곳. 제주시 조천읍 와흘리에서는 '자청비 와흘 봄 메밀문화축제'가 지난 9일부터 시작돼 오는 31일까지 열리고 있다.들녘 가득 하얗게 피어난 메밀꽃과 함께 제주의 전통 먹거리, 체험, 공연이 어우러진 마을형 축제다.축제가 열리는 '와흘메밀농촌체험휴양마을'은 조천읍 남조로에 위치해 있으며 입장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다.

이곳에선 와흘산 메밀을 활용한 직판장 운영은 물론, 메밀묵·빙떡·기름떡 같은 토속 음식도 맛볼 수 있다.먹거리 장터 외에도 메밀체험, 목줄 만들기, 부채 꾸미기, 기념품 제작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지역 예술인들이 함께하는 공연과 음악회도 펼쳐진다.

또한 메밀밭 산책로와 밭담길을 따라 걷다 보면 곳곳에 사진을 찍기 좋은 포토존도 자리하고 있어 가족 단위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산책로와 밭담길을 걷고 있으면 달콤한 메밀향에 취해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축제장 곳곳에 쉼이 있는 의자와 정자 그리고 흙길을 걷는 이들을 위한 이정표가 마련돼 있어 아이 손을 잡은 가족부터 삼삼오오 모인 친구들과 연인들까지 모두가 여유를 즐길 수 있다.이번 문화제는 와흘메밀마을협의회가 주관하고 와흘리 농촌체험휴양마을이 주최하며 와흘리 새마을회가 후원하고 있다.

6일 메밀꽃오라 with 유채꽃 축제가 열리는 제주시 오라동 메밀밭에 관광객들이 활짝 핀 유채꽃과 메밀꽃 사이를 산책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6일 메밀꽃오라 with 유채꽃 축제가 열리는 제주시 오라동 메밀밭에 관광객들이 활짝 핀 유채꽃과 메밀꽃 사이를 산책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 오라동, 청보리밭과 어우러진 순백의 메밀꽃

바람이 불면 초록빛 청보리 물결 사이로 흰 메밀꽃이 고개를 내민다.초여름의 제주 오라동 들판은 두가지 색의 조화로 더욱 서정적인 풍경을 만든다. 푸른 보리가 뿜어내는 싱그러움과 메밀꽃의 소박한 아름다움이 뒤섞이며, 걷는 이들의 발걸음에 자연이 말을 건다.

'2025 메밀꽃오라 with 청보리밭'은 오라2동 산 76번지 일대 들녘에서 지난 2일부터 6월 8일까지 진행 중이다.제주오라 메밀꽃축제 조직위원회가 주최하고, 농업회사법인 오라가 주관하며, 제주특별자치도관광협회와 한국들녘경영체중앙연합회가 후원한다.

축제의 핵심은 화려한 퍼포먼스가 아닌 자연을 있는 그대로 걷고 바라보는 것이다. 따로 무대를 차리지 않고, 길 위에서 풍경과 계절이 직접 공연을 펼친다.행사장 중심에는 왕복 약 1.5㎞ 길이의 비포장 산책로가 펼쳐진다. 걷는 내내 흙 내음과 바람결이 전해지고 이따금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촬영지로 알려진 들판이 시야에 들어온다.

들꽃이 흐드러지게 핀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관광객도 도민도 바쁜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자연의 품으로 돌아간다.이 축제는 단순한 풍경을 넘어 제주 메밀의 다채로운 가치를 알리는 장이기도 하다. 메밀꽃은 줄기·껍질·알맹이까지 버릴 것 하나 없는 자원으로 식재료, 베개 충전재, 친환경 농업 자재, 심지어 사료로도 활용된다.

이를 알리기 위한 취지로, 제주에서 가장 넓은 메밀밭 중 하나인 이곳을 농촌 융복합 공간으로 개방한 것이다.축제 현장에서는 간단한 메밀음식들을 맛볼 수 있으나, 대규모 장터는 운영되지 않는다. 주 목적은 자연 그 자체다.절정은 이달 20일 전후다. 이 시기에 방문하면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만날 수 있다.

행사는 전적으로 자연환경에 의존하기 때문에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특히 비가 오는 날은 산책이 어렵고, 경관도 제한될 수 있으므로 맑은 날 방문이 권장된다.산책로는 대부분 비포장 흙길로 이루어져 있어 편한 운동화 착용이 필수다. 주차장은 약 3000평 규모로 마련돼 있고 자가용은 물론 대형 버스도 진입이 가능하다.

이번 축제 장소는 최근 영화 촬영지로도 주목받고 있다. 제주4·3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이곳에서 촬영되고 있으며, 배우 엄혜란이 주연으로 참여 중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메밀밭을 배경으로 한 영상 콘텐츠 제작 문의가 이어지며, 제주 메밀밭의 경관 가치는 문화 콘텐츠 자산으로도 성장 중이다.

이제 이 축제도 메밀꽃과 함께 제주가 가진 이야기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초여름의 하늘 아래, 푸른 보리와 순백의 메밀꽃 사이를 걷는 이 순간만큼은 누구에게나 특별한 한 페이지로 남는다.

활짝핀 보름왓 메밀꽃밭을 산책하는 사람들
활짝핀 보름왓 메밀꽃밭을 산책하는 사람들

◆하얀 들녘 위 10년의 기억, 보름왓 메밀밭

서귀포시 표선면 보름왓에서도 메밀꽃이 하얗게 물들기 시작하면 작은 축제가 열린다.정확히는 축제라기보다 꽃이 피는 시기에 맞춰 농장을 개방해 사람들과 그 아름다움을 함께 나누는 방식이다.올해로 10년째를 맞는 이 행사는 24일부터 6월 15일까지 진행되며,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메밀밭 산책과 소규모 체험이 이뤄진다.

보름왓 메밀밭은 개인 농장이 직접 운영하는 장소로, 주말마다 가족 단위 관람객을 위한 깡통열차 체험과 소규모 공연이 진행되기도 한다.산책로는 일반적인 조성된 길이 아닌, 메밀꽃이 피어 있는 밭 사이의 자연 그대로의 흙길이다.

길이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전체 부지 면적은 약 33만579㎡에 달하며 계절마다 대파, 수국, 메밀, 맨드라미 등 다양한 꽃들이 이어지는 사계절 농장으로 운영된다.이번 행사에는 수국의 개화기도 맞이해 메밀과 수국의 감미로운 느낌을 두 눈으로 확인 할 수 있다.이곳만의 특징은 단순한 경관 감상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농장 내에는 직접 운영하는 로스터리 카페가 있어 메밀로 만든 스콘과 초콜릿, 음료 등을 즐길 수 있으며, 특히 메밀 껍질을 활용한 베개 제작이나 초콜릿 생산 과정을 관람할 수 있는 체험형 콘텐츠가 눈길을 끈다.초콜릿은 농장에서 직접 수입한 카카오를 활용해 가마솥에 볶는 과정부터 포장까지 모두 공개되며, 세계 최초로 메밀 초콜릿을 선보인 곳이기도 하다.

특히 올해는 5월 30일, 음악과 이야기가 함께하는 '그림책 콘서트'가 열릴 예정이어서 아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방문객들의 기대도 크다.가볍게 걷고, 천천히 둘러보고, 한 잔의 커피와 함께 제주 메밀의 진짜 얼굴을 만나는 일.이곳에서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제주시 애월읍 항몽유적지 메밀밭을 찾은 관광객들이 토성과 메밀꽃 사이를 산책하며 제주의 정취를 만끽 하고 있다.
제주시 애월읍 항몽유적지 메밀밭을 찾은 관광객들이 토성과 메밀꽃 사이를 산책하며 제주의 정취를 만끽 하고 있다.

◆ 한라산 아래 첫 마을, 메밀꽃이 부르는 느린 초여름

서귀포시 안덕면 광평리에서는 메밀꽃이 들판을 덮는 계절이면 마을 전체가 하얀 숨결로 물들고 사람들을 위한 잔잔한 축제가 시작된다.오는 6월 7일부터 8일까지 이틀간 이어지는 '광평리 메밀꽃 축제'는 마을 주민들이 직접 기획하고 운영하는 지역형 행사로,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하루 종일 꽃과 사람, 바람이 어우러진다.

이곳 광평리는 '한라산 아래 첫마을'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그만큼 오래된 전통과 마을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이번 축제는 그런 마을의 자부심을 드러내듯, 정형화된 개회식 대신 국악 공연과 함께 마을을 한 바퀴 도는 '유쾌한 길놀이 퍼레이드'로 문을 연다.방문객과 도민이 한데 어우러져 걷는 이 퍼레이드는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동시에 마을의 숨결을 직접 체험하게 한다.

무대 공연은 메밀꽃밭 사이에서 조용히 펼쳐지고, 광평리의 소박한 정취를 살린다.또 메밀 비누·염색·파우치 만들기·그림 그리기·머리핀 꾸미기 등 다양한 체험 부스가 마련되며 메밀면 뽑기와 빙떡·가래떡 만들기, 메밀 초코크런치 제작 등 먹거리 체험도 풍성하게 준비된다.

광평리 메밀꽃 축제는 마을 공동체가 스스로 주최하고 있다.마을 관계자는 "축제의 핵심은 지역을 알리고 공동체를 다시 살리는 데 있다"며 "한라산 아래 첫마을이라는 자부심을 담아 마을의 색깔을 보여주고 싶다"고 전했다.주차는 현재 마을회관 인근 공터를 활용할 계획이며, 행사 홍보는 SNS를 중심으로 지역 방송사 광고도 병행할 예정이다.

광평리 메밀꽃 축제는 바쁜 도시 축제들과는 다른 속도로 흐른다. 마을을 천천히 걷고, 손으로 메밀을 만지고, 흙길 위로 퍼지는 음악을 듣는 시간. 한라산 아래 이 작은 마을이 품은 느린 계절은 그래서 더 깊고 따뜻하다.

◆제주가 메밀 주산지

"제주는 지금, 메밀의 고장입니다"제주는 전국 생산량 1위, 음식문화까지 갖춘 메밀 주산지이다.제주도농업기술원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국 메밀 재배 면적은 3,486㏊, 생산량은 2,975t에 달한다.이 가운데 제주도는 2,169㏊ 면적에서 1,703t을 생산해 단일 지역 중 가장 많은 메밀을 재배하고 수확하고 있다.제주가 전국 메밀 생산의 면적 기준 57.2%를 차지하는 셈이다.

이처럼 제주는 단순한 메밀 재배지를 넘어 음식문화까지 확장된 '메밀의 섬'이다.농업기술원이 펴낸 '제라진 제주메밀음식' 자료에 따르면 제주의 전통 메밀 음식으로는 메밀묵, 메밀국수, 메밀빙떡, 메밀지짐, 메밀조백이 등이 전해진다.최근엔 메밀을 활용한 초콜릿, 스콘, 베이커리류 등 현대적인 퓨전 음식도 등장해 관광객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한 해 두 번의 수확 가능한 기후적 이점과 오래된 음식 전통 그리고 현대적 재해석까지 더해지며 제주는 지금 명실상부한 메밀의 주산지이자 문화 중심지로 자리 잡고 있다.

한국지방신문협회 제주일보 조병관 기자.사진=고봉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