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구 경북대 한문학과 교수
지난달 21일의 가장 비중 있는 소식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善終)이었다. '선종(善終)'은 '착하게 살다가 죽는다'는 의미이다. '죽음'은 직접적 표현을 꺼리는 대표적 금기어(禁忌語)이다.
그래서 신분제 사회에서는 신분에 따라 죽음을 달리 불렀으니, 천자는 '붕(崩)', 제후는 '훙(薨)', 대부(大夫)는 '졸(卒)', 선비는 '불록(不祿)', 서인(庶人)은 '사(死)'라고 하였다. 신분을 따질 수 없는 현대 사회에서도 대통령 등 지위가 높은 사람의 죽음을 '서거(逝去)'라고 구분하여 쓴다. 신분이나 지위가 낮은 사람의 죽음을 표현하는 비속어(卑俗語)도 많이 있다.
종교는 죽음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에 각각 다른 표현을 쓴다. 불교는 죽음을 일컫는 말이 많아 '열반(涅槃)' '입적(入寂)' '입멸(入滅)' 등의 표현이 있다. 기독교는 '소천(召天)'이라고 한다. 반면 죽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도교(道敎)는 신선이 되어 선계(仙界)로 날아 올라간다는 의미로 '등선(登仙)' '우화(羽化)' 등의 표현을 썼다. 이처럼 죽음을 이르는 말이 과거에는 신분에 따라 달랐고, 현대에도 종교와 지위에 따라 다르다.
그렇다면 반대로 '출생(出生)'을 이르는 말은 어떨까?
출생은 죽음과 같은 금기어가 아니기에 신분이나 종교, 지위에 따라 표현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아예 출생을 차별하거나 높이는 말 자체가 없다. 일반적으로 '출생(出生)'이라고 쓰는데, 이는 우리나라나 일본, 중국이 동일하다. 그런데 신분제 사회에서는 고귀한 신분이 일반인과 같은 표현을 쓰는 것을 도무지 견딜 수 없었기에 왕이나 왕족의 출생은 '탄강(誕降)'이라고 높여 불렀다. '탄강(誕降)'에서 '강(降)'은 하늘에서 내려온 고귀한 신분이라는 의미이다.
고대의 신화적 인물은 출생부터 남달라야 했다. 중국 고대 국가인 상(商)의 시조 설(契)은 그의 어머니 간적(簡狄)이 제비의 알을 삼키고서 낳았다고 한다. 그리고 주(周)나라의 시조 후직(后稷)은 그의 어머니 강원(姜嫄)이 거인(巨人)의 엄지발가락 자국을 밟고서 낳았다고 한다. 이는 어머니는 알아도 아버지를 알 수 없는 모계(母系) 사회의 자취이지만, 신화적 인물의 비범한 출생담(出生談)이 되었다.
'탄(誕)'은 「시경」의 "처음 주나라 사람을 낳은 이가 바로 강원(姜嫄)이라네… 낳아서 기르니, 그 아이가 바로 후직(后稷)이었네. 열 달을 꼭 채워서(誕彌厥月), 첫아이를 양 새끼처럼 순산하였네"라고 한 시에서 유래하였다. 청나라의 비평가 원매(袁枚)는 「수원시화(隨園詩話)」에서 "'탄미궐월(誕彌厥月)'의 '탄(誕)' 자는 의미 없는 발어사(發語辭)일 뿐인데 사람들이 '생일(生日)'을 '탄일(誕日)'이라고 잘못 쓰니, 가소롭다"라고 비판하였다. 송나라의 섭정규(葉廷珪)도 이미 같은 의견을 제시하였기에 중국에서 '탄(誕)'을 출생의 의미로 꽤 오랜 기간 잘못 사용하였고, 그 오류에 대한 비판이 있었지만 고칠 수 없었던 정황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출생을 높여서 표현할 수 있는 글자가 달리 없었기 때문이다.
석가모니의 출생일을 '석탄일(釋誕日)',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일을 '성탄절(聖誕節)'이라고 높여 부르지만, 지금은 일반인의 출생도 '탄생(誕生)'이라고 한다. 태어날 때부터 불평등한 세상을 '금수저'니 '흙수저'니 자조(自嘲)하지만, 성인(聖人)이나 서민(庶民)이나 차별 없이 모두 고귀하게 태어난다는 진리를 되새기는 석탄일(釋誕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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