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금 대신 철제 십자가 짊어진 '가난한 이의 성자' 프란치스코 교황

입력 2025-04-21 20:23:32

伊 출신 이민자 가정서 태어나 탈권위·청빈한 습관 몸에 배어
평생 걸쳐 빈민촌 사목에 힘써 '역대 가장 진보적인 교황' 평가
가톨릭 역사 첫 이라크 땅 밟아…무장 테러 희생자 위로하기도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7년 콜롬비아 라스 말로카스 공원에서 열린 화해를 위한 기도회에서 왼손을 잃은 전 FARC 반군 카를로스 후안 카를로스 무르시아를 포옹하는 모습. AP 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7년 콜롬비아 라스 말로카스 공원에서 열린 화해를 위한 기도회에서 왼손을 잃은 전 FARC 반군 카를로스 후안 카를로스 무르시아를 포옹하는 모습. AP 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은 평생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보듬고, 끊임없이 전 세계에 평화와 화합의 목소리를 내왔다.

그는 순금 십자가 대신 철제 십자가를 가슴에 걸고 허름한 구두를 신으며, 소형차에 몸을 싣는 청빈하고 소탈한 행보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전했다. 호화로운 관저를 놔두고 일반 사제들이 묵는 공동 숙소인 산타 마르타의 집에서 생활하기도 했다.

이처럼 권위와 물욕을 버리고 몸을 낮추는 습관은 그의 어릴 적 삶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1936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이탈리아 출신 이민자 가정에서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 교황은 학창 시절 오전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오후에는 학교에서 공부했다. 그의 소박하고 검소한 정신은 이때부터 자연스레 몸에 밴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주교와 추기경으로 있을 때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빈민촌 사목에 힘썼다. 마약이 유통되고 폭력이 흔한 우범지대임에도, 개의치 않고 동행하는 사람 없이 빈민촌을 찾았다고 한다.

1천282년 만의 비유럽권이자 최초의 신대륙 출신 교황으로 선출된 그는 역대 교황 중 가장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는 2013년 즉위 이후 가톨릭교회가 소수자, 사회적 약자에 더 포용적으로 바뀌고 평신도의 목소리를 존중해야 한다며 진보적 개혁을 밀어붙여 가톨릭 내 보수 진영과 마찰을 빚었다.

또한 지난해에는 동성 커플에 대한 가톨릭 사제의 축복을 허용해, 동성애를 금기시하는 아프리카 가톨릭 사회를 중심으로 강한 반발을 사기도 했다.

한편 프란치스코 교황은 평생에 걸쳐 전쟁 반대를 외쳤다.

그가 전쟁의 참혹함에 눈을 일찍부터 뜬 것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할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교황은 "전쟁은 비참함 말고는 아무것도 안겨주지 못하고, 무기는 죽음 외에는 그 무엇도 만들어 내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적대적 관계에 있던 미국과 쿠바의 2015년 국교 정상화에 결정적 기여를 했고, 2017년에는 로힝야족 추방으로 '인종청소' 논란이 불거진 미얀마를 찾아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다.

2천 년 가톨릭 역사상 처음으로 2021년 이라크 땅을 밟아 무장 테러 희생자들을 위로하기도 했다.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전쟁이 발발한 이래 교황은 끊임없이 평화의 목소리를 냈고, 2023년 10월 시작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의 전쟁을 두고도 민간인 희생을 막고 분쟁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2023년 교황청 관영 매체 '바티칸 뉴스'와 한 팟캐스트 인터뷰에서 즉위 10주년을 맞아 바라는 선물이 있느냐는 질문에 "평화, 우리는 평화가 필요하다"고 답하기도 했다.

이처럼 평생 세계의 평화와 화합을 소망해 온 그의 바람은 올 초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전한 축하 메시지에서도 잘 드러났다.

"증오와 차별, 배제가 없는 더 정의로운 사회를 이끌어 달라. 우리 인류가 전쟁의 재앙을 비롯해 수많은 도전에 직면한 가운데 평화와 화해를 증진하기 위한 당신의 노력이 하느님께 인도받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