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 방광산이 불탔다"… 아이 손잡고 강으로 뛰었다

입력 2025-03-30 08:01:57

산불에 울음 터진 아이들… 밤늦게 돌아온 집 앞에서 결국 오열
"모두 무사해 다행… 청송 이웃들 일상 되찾길"

25일 저녁 청송군 청송읍 소재지가 화염에 휩싸였다. 청송읍 주민들은 도시 전체가 불길로 둘러싸여 살기 위해 용전천으로 달려갔다. 여차하면 강물로 뛰어들어 불을 피하기 위해서다. 독자제공
25일 저녁 청송군 청송읍 소재지가 화염에 휩싸였다. 청송읍 주민들은 도시 전체가 불길로 둘러싸여 살기 위해 용전천으로 달려갔다. 여차하면 강물로 뛰어들어 불을 피하기 위해서다. 독자제공

경북 청송군 청송읍에 사는 A씨는 두 남매를 키우는 평범한 가정주부다. 25일 오전에도 평소처럼 아침 일찍 출근하는 남편의 식사를 챙기고, 아이들에게는 간단히 빵과 우유를 먹인 뒤 손을 잡고 학교까지 데려다줬다.

그러던 오후, 인근 안동에서 산불이 발생했다는 청송군의 재난문자를 받은 A씨는 불안한 마음에 평소보다 이르게 아이들을 데리러 나섰다. 아이들은 엄마가 일찍 왔다며 반가워 안기고는 손을 놓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온 A씨는 저녁 식사를 준비하려던 순간, 남편이 평소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집으로 들어섰다.

"여보, 대충 짐 챙겨서 나가야 해. 방광산에 불이 붙었어. 지금 큰일이야."

당황한 A씨는 아이들에게 옷을 단단히 입히고, 혹시 몰라 이불 몇 장과 옷가지를 챙겨 급히 집을 나섰다. 하지만 설마 불길이 이곳까지 번질까 싶어 잠깐 나갔다 금세 돌아올 생각이었다. 그러나 집을 나서며 고개를 든 순간, A씨 가족은 충격을 받았다.

매일 마주 보던 방광산과 맞은편 현비암이 마치 화산처럼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타오르는 불길에 아이들은 겁에 질려 울음을 터뜨렸고, A씨 역시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불길이 강한 바람을 타고 날아드는 상황에서 함부로 움직이기도 어려웠다. A씨는 아이들을 부둥켜안은 채 그저 눈물을 흘렸다. 남편은 아이들을 다독이며 "괜찮아"라는 말만 반복했다.

잠시 뒤 남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전화를 건 이는 인근에 사는 친척 형이었다.

"용전천으로 대피해! 사람들 다 그쪽으로 가고 있어."

남편은 큰아이를, A씨는 둘째를 품에 안고 용전천으로 달려갔다. 이미 수백 명의 주민들이 물가를 따라 서 있었다. 불길이 강가까지 번지면 강물에 뛰어들 준비까지 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울다 지쳐 잠들었고, 어른들은 깊은 한숨을 쉬며 악몽 같은 밤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산불은 쉽게 잦아들지 않았다. 청송읍 둘레를 에워싼 산들이 모두 불길에 휩싸였고, 오후 8시 무렵이 돼서야 서서히 진정되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하나둘씩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고, A씨 부부도 오후 10시쯤 조심스럽게 집으로 향했다. 다행히 집은 무사했지만, 가족 모두는 거실에 주저앉아 한동안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이후 며칠 동안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못했고, 집 밖에 나서는 것도 힘들어했다. 수십 번 울리는 재난문자 소리에 둘째는 그때의 공포가 떠오르는지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청송군 청송읍 미성년 아이들은 2025년 기준 472명으로 청송읍 전체 인구의 10%가 채 되지 않는다. 청송군 전체로 확대해도 2천명 안팎으로 아이들의 비율은 비슷한데 이 아이들이 겪은 산불 공포에 대한 트라우마, 그 치료에 대한 고민 역시 앞으로 남겨진 숙제다.

30일 매일신문과의 통화에서 A씨는 "저는 집도 지켰고 가족도 무사해 감사하지만, 청송의 이웃과 친척, 지인들은 많은 것을 잃었다"며 "하루빨리 평온한 청송의 일상으로 돌아가 모두가 안정을 되찾고, 아이들도 다시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