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론새평-김종민] 신(新)삼정문란 시대

입력 2025-04-02 11:08:30 수정 2025-04-02 14:07:05

김종민 변호사(법무법인 MK 파트너스)

김종민 변호사
김종민 변호사

1907년 정미7조약은 이토 히로부미가 통감으로 부임해 조선의 입법과 행정, 사법 등 국권을 빼앗은 조약이었지만 재판권을 의미하는 사법사무와 행정을 구분한다는 제3조에 대해서만은 긍정적으로 평가한 당시 언론 반응이 눈에 띈다.

대한매일신보는 "실로 희망하는 하나의 개량"이라 했고 일본인 판검사들이 조선의 재판기관을 장악해 갔음에도 당시 지식인들과 지방민들은 이를 통감부의 '시정개선'사업 중 괄목할 만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도면회 '한국근대형사재판제도사').

"형벌은 대부에까지 올라가지 않는다"는 형벌의 신분제적 논리는 조선 왕조 내내 이어졌고, '원님 재판'으로 상징되는 지방관들의 불공정 재판이 탐학과 수탈의 수단으로 이용되면서 백성들의 재산과 생명을 항상 불안정 하게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가장 근본적 의미의 법치주의는 '우리의 법은 정당하다. 그것은 통치자가 누구이든 그에 앞서며, 그의 행동을 적시에 통제할 수 있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음을 의미한다고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말한다. 법치주의가 적절히 기능하려면 제도와 절차 만큼 규범적 문제도 중요하다. 법을 따르는 까닭은 그 법이 근본적으로 공정하다고 믿기 때문이며 그것을 따르자는 의식이 내재화 되어 있기 때문이다.

치우치지 않았기에 '공통common'의 법으로 불렸던 커먼로의 의미를 새겨볼 필요가 있다.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 국민들의 법치주의 인식 수준은 법의 내용보다 법 집행의 공정성 문제, 법이 엄정하게 시행되지 않는다는 인식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이 무엇을 말해주는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8개 사건, 12개 혐의'의 5개 재판에서 '대장동·백현동 비리'사건 14차례를 비롯해 총 27차례의 재판 불출석, 26차례의 법원 송달 미수령 기록을 남겼다. 그 결과 공직선거법위반 사건은 2심 재판이 나오기까지 909일을 소요했고, 대장동·백현동 비리 사건은 740일 넘게 1심 재판이 계속되고 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도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징역 2년 실형이 선고되었지만 재판부가 이례적으로 법정구속을 하지 않는 바람에 정당을 창당하고 국회의원도 당선될 수 있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후원금 횡령 등 혐의로 재판받은 윤미향 전 의원의 경우 기소된 지 4년 2개월만에 유죄가 확정되면서 국회의원 임기 4년을 마쳤다. 일반 국민이었더라도 그것이 가능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이재명, 조국, 윤미향은 되고 일반 국민은 왜 안되는지 법원에 물어야 한다.

조선 후기 전정(田政), 군정(軍政), 환곡(還穀)의 삼정문란은 조선을 망국으로 이끈 원인이 되었다. 권력자에 대한 재판이 선뜻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유무죄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일반 국민들은 꿈도 꾸지 못하는 특혜를 받으며, 사법방해죄 수준의 재판 농락에도 재판부가 묵인하거나 방치한다면 유권무죄(有權無罪) 무권유죄(無權有罪)의 현대판 삼정문란이 아니라고 누가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한비자는 법이 역량을 잃는 것은 법이 잘못된 때문이 아니라 법을 정해놓고 꾀를 쓰기 때문이라고 했다. 거울이 흔들리면 밝지 못하고 저울이 흔들리면 바르지 못한 법이다. 엄정공평 불편부당의 사법정신은 어떤 경우에도 흔들려서는 안 될 국가의 근본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이재명 대표 재판과 내란죄 수사를 지켜본 적지 않은 국민들이 법 적용과 절차의 공정성에 의문을 갖게 된 것은 불행한 일이다. 수사와 재판은 공정한 것 못지 않게 공정하게 보이는 것도 중요하다. 사법의 정치화, 정치의 사법화는 사법 신뢰에 치명적인 상처를 남긴다. 정치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자제의 규범을 무너뜨리며 폭주하는 시대일수록 사법의 책임과 역할은 절대적이다.

사법 정의란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아니다. '검은 것은 검다, 흰 것은 희다'라고 하면 된다. 사법의 권위와 신뢰는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정의의 최후의 보루로서 국가와 사회를 지키는 방파제 역할을 할 것인지, 신 삼정문란 시대를 여는 혼란의 주역이 될 것인지 그 선택은 사법부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