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수종의 이슈진단] 미국 예외주의 (American Exceptionalism)

입력 2025-03-26 19:56:50 수정 2025-03-26 19:59:11

곽수종 리엔경제연구소, 경제학 박사
곽수종 리엔경제연구소, 경제학 박사

1996년 사무엘 헌팅턴은 '문명의 충돌(The Clash of Civilization and the Remaking of World Orders)'에서 1991년 구 소련의 붕괴 이후 냉전체제의 소멸은 '이념'보다 '문화와 종교'와 같은 문명적 요인들의 충돌로 이루어졌다고 내다보았다.

그의 제자였던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1992년에 출간한 '역사의 종말과 마지막 인간(The End of History and the Last Man)' 이라는 책에 대한 헌팅턴 나름의 재해석을 책으로 소개한 것이었다.

'문명의 충돌'이라는 표현은 , 1926년 영국 역사학자인 바실 매튜스가 중동을 다룬 저서 '젊은 이슬람의 여정: 문명의 충돌 연구(Young Islam on Trek: A Study in the Clash of Civilizations)'에서 사용한 표현이다.

이는 식민지 시대와 벨 에포크(Belle Époque) 시기에 사용되던 '문화의 충돌(clash of cultures)'이라는 표현에서 유래한 것이기도 하다. 이 밖에도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극작가이도 한 알베르 카뮈가 1946년에 이를 언급한 바 있고, 인도 저널리스트인 기릴랄 자인은 1988년 인도의 이슬람 문화와 힌두 문화의 분쟁을 다룬 '아요디야 논쟁(Ayodhya dispute)'를 분석하며 사용했으며, 동양사학자인 버나드 루이스는 1990년 애틀랜틱 먼슬리(The Atlantic Monthly) 9월호에서 "무슬림 분노의 뿌리(The Roots of Muslim Rage)'라는 기사에서 같은 개념을 각각 사용한 바 있다.

헌팅턴은 1991년 냉전체제 붕괴 이후 글로벌 정치의 본질에 대한 다양한 이론들을 살펴볼 때, 일부 이론가와 작가들은 인권, 자유 민주주의, 자본주의적 자유 시장 경제가 냉전 이후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은 이념적 대안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세계가 헤겔의 변증법적인 의미에서 '역사의 종말(the end of history)'에 도달했다고 보았다. 하지만 헌팅턴은 이념의 시대가 끝났다고 하더라도, 세계는 단지 문화적 갈등이 충돌의 요인이 되는 또 다른 형태의 정상적인 상태로 되돌아갔다고 보았다. 따라서 미래의 주요 갈등은 문화적 경계축을 따라 형성된다는 것이다. 즉, 헌팅턴은 문명이 문화적 정체성의 최고 범주로서 다가올 21세기 이후 후기 문명사회에 있어 사회 및 국가간 갈등과 충돌을 분석하는 데 유용한 개념이 될 것이라고 가설을 세운 것이다.

당연히 헌팅턴이 말하는 문명의 충돌은 역사 발전 과정의 일환이다. 과거 서구 문명의 눈으로 본 세계사는 주로 군주, 국가 및 이념 간의 투쟁으로 구성되었다. 하지만 냉전이 끝난 이후 세계 정치의 새로운 국면에서는 비서구 문명들이 더 이상 서구 문명의 피지배자 혹은 열등 문명이 아니라, 서구와 함께 세계사를 형성하고 변화시키는 중요한 행위자가 될 것으로 본 것이다. 이는 1953년부터 1964년까지 구 소련의 공산당 당서기를 역임했던 후르시쵸프의 생각과 같은 것이었다. 당시 독일 총리 하인리히 뤼브케에게 그는 "유럽에 있어 미래의 적은 구 소련이 아니라 중국이 될 것이다."라고 귀뜸한 바 있다.

'미국 예외주의(American exceptionalism)'란 개념은 역사적, 이념적, 또는 종교적 이유로 인해 미국이 독특하고 심지어 도덕적으로 우월한 국가라는 개념이다. 19세기 프랑스 정치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알렉시스 드 토크빌이 미국을 "예외적"이라고 언급한 최초의 인물이지만, 실제로 '미국 예외주의'라는 개념은 1920~30년대 미국의 공산주의 활동가들에 의해 설정되었다고 보는게 옳다. 일반적으로 마르크스-레닌주의는 국가가 공산주의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폭력적인 계급 투쟁을 거쳐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미국은 계급 경계가 희미하기 때문에 유일한 '예외'라고 간주했었다.

리처드 호프스태터, 루이스 하츠, 다니엘 J. 부어스틴과 같은 '합의(consensus)' 역사학자들은 미국이 유럽처럼 봉건제나 전제군주의 역사를 겪지 않았기 때문에 계급 충성이 자리 잡지 못했다고 본다. 또한, 로버트 A. 달의 영향력 있는 저서 '민주주의 이론 서론(A Preface to Democratic Theory)'에서 설명된 것처럼, 미국은 지리적·사회적 이동성이 높고, 물질적 풍요를 누리며,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의 미덕을 널리 받아들이고, 다원적 정치 전통을 유지해 왔기 때문에 미국은 역사적 공동체나 지배 엘리트 중심이 아니라 공화주의적 이념에 기반하여 독특하게 건국되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따라서 '좋은 정치'의 원칙들은 미국 '독립 선언서'와 '미국 헌법'에 신성한 영감을 받은 문장으로는 묘사되어 있다고도 본다. 이처럼 건국의 아버지들이 정한 방식대로 '미국의 예외주의적' 정신을 따르는 것이 국가 성공의 핵심이며, 미국의 보편적 가치이며, 국경을 초월하여 사회 및 국가적으로 바람직한 일이라고 믿는다.

21세기에 들어 '미국 예외주의' 신봉자들은 공화당 성향으로 기울었으며, 이들이 중시하는 생활 방식에는 유대-기독교적 신에 대한 경외심, 자유 시장 옹호, 그리고 집단의 필요보다 개인의 권리를 우선시하는 태도가 포함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민주당도 예외는 아니다. 오바마 전 대통령도 "미국은 미국의 예외주의가 있고, 영국은 영국의, 그리스는 그리스의 예외주의가 있다"라고 언급한 바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 예외주의'란 미국 시민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어야할 미국의 무의식적 혹은 명시적 가치이며 정신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는 이같은 '미국 예외주의'에 매우 충실한 구호다. 과거 뉴트 깅리치, 릭 샌토럼과 같은 공화당 정치인들이 애국심, 도덕적 정당성, 그리고 미국의 위대함에 대한 일반적인 신념을 강조했듯이, 트럼프 대통령의 'MAGA'는 '미국 예외주의'를 가장 잘 설명하는 압축적이며 정교한 표현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2025년 3월 현재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전 세계 총 국내총생산(GDP)은 약 115조 달러 규모다. 이 중 미국을 비롯한 선진 경제국들은 약 67조 달러, 신흥 시장 및 개발도상국들은 47.93조 달러를 차지한다. 특히 이들 신흥 경제국들 중 BRICS 국가들은 강력한 경제 블록을 형성하는 가운데 총 GDP는 31조 달러를 넘어서면서 전 세계 GDP의 약 27%를 차지하고 있다. BRICS 경제가 신흥국과 개도국 경제 GDP의 약 65%를 차지한다. 중국 GDP가 19조 달러로 BRICS 전체 GDP의 약 61%를 차지한다. 이같이 막대한 글로벌 GDP 비중은 BRICS와 중국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 그룹 중 하나로 주목할 수밖에 없게 한다.

비록 미국 증시의 시가총액 규모가 세계 증시 시가총액 규모의 55%를 점하고, 글로벌 유동화 시장에서 미국의 비중이 거의 82%를 차지하고 있지만, 제조업 시장에서 중국이 미국을 넘어서는 순간 이후 글로벌 자본시장의 지각변동이 어떻게 일어날 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벌써 미국 달러화의 기축통화 지위에 대한 시시비비가 BRICS 특히 중국을 중심으로 자주 언급된다. 금 값이 괜시리 요동치는 것 같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이 말하는 '미국의 예외주의'가 중국이 생각하는 '중국의 예외주의'와 접합점을 찾지 못한다면 21세기 후기 문명사회의 충돌은 어떤 모습일까? '백인종' 대 '황인종'? 중국이 바로 서면 '황인종'이 대접을 제대로 받는 세상이 올까? 과연 그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