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 산불 상황 속 이장들의 외침, 마을 지켰다…긴박했던 탈출 순간들

입력 2025-03-26 16:43:54 수정 2025-03-26 21:09:20

통신 두절 속 '스마트 방송'으로 전 가구 대피 유도
차량 타이어 터지고 하천으로 뛰어든 주민들… 기적의 구조
불길로 향한 이장 부부, 끝내 돌아오지 못해

지난 25일 경북 영양군 석보면에 산불이 확산하자 마을 주민들을 구조하기 위해 나섰던 이장 부부가 탔던 것으로 추정되는 차량이 전소된 모습. 다른 이들을 구하려던 이장 부부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독자 제공
지난 25일 경북 영양군 석보면에 산불이 확산하자 마을 주민들을 구조하기 위해 나섰던 이장 부부가 탔던 것으로 추정되는 차량이 전소된 모습. 다른 이들을 구하려던 이장 부부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독자 제공

"차에 9명이 몸을 구겨 넣고 달리다, 불길을 피해 하천에 뛰어들었어요."

지난 25일 경북 영양군 석보면 일대에 산불이 번지자 마을은 삽시간에 혼란에 빠졌다. 정전과 함께 무선통신마저 끊긴 상황. 하지만 그 속에서도 주민을 지키려는 이장들의 헌신은 위기의 순간에서 기적을 만들어냈다.

오후 6시쯤 화염이 마을 가장자리까지 밀고 들어왔고, 일부 마을은 이미 전기가 끊긴 상태였다. 무선망도 하나 둘 먹통이 됐다. 그 순간 석보면 화매리 이장은 46가구 주민들에게 '스마트 방송' 음성 메시지를 전송했다.

"지금 빨리 집에서 나와 석보초등학교로 대피해주십시오. 마을 전체에 불이 붙고 있습니다!"

휴대전화로 전송된 그의 안내는 통신이 닿는 한 모든 가정에 울려 퍼졌고 주민들은 이를 따라 신속히 대피했다. 덕분에 큰 인명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무사했던 것은 아니었다. 인근 석보면 삼의리 이장 부부는 화매리에 사는 처남댁을 구조하고자 차량을 몰고 불길로 향했다. 공식 대피소인 석보초와는 정반대인 917번 지방도로를 따라 산불이 번지는 마을로 들어간 것이다.

갑작스러운 산불로 극심한 재산피해와 인명피해가 발생한 경북 영양군 석보면 화매리의 모습. 김영진 기자
갑작스러운 산불로 극심한 재산피해와 인명피해가 발생한 경북 영양군 석보면 화매리의 모습. 김영진 기자

해당 도로는 계곡을 끼고 있어 불씨가 바람을 타고 빠르게 번졌고 낙엽들은 불쏘시개가 됐다. 결국 이들 세 사람은 산불이 휩쓴 뒤 도로 옆 배수로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인근에선 완전히 불에 탄 차량도 함께 확인됐다.

주민들은 "아마 고립된 이웃이라도 더 구조하려고 했던 것 같다"며 "통신이 끊기자 다른 이들을 대피시키고자 직접 마을을 다른 돌아보려 하신 것으로 보인다"고 입을 모았다.

긴박했던 순간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또 다른 마을 주민 9명은 한 차량에 몸을 구겨 넣고 급히 탈출을 시도했지만, 차량 타이어가 열기에 터지면서 도로 한복판에 멈춰 섰다. 연기에 시야는 가려지고 숨쉬기도 어려운 상황 속 이들은 인근 하천으로 몸을 던졌다.

이후 지나던 경찰차를 향해 손을 흔들고 소리쳤고 가까스로 구조돼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당시 현장에 있던 한 주민은 "차 안이 좁은 것도 잊을 만큼 정신없이 올라탔고 정말 죽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한편, 안타깝게도 이번 산불로 영양 석보면 일대에서는 총 6명이 목숨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