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먹다 불 끄러 가는 주민들…동사무소는 화재 대응에 진땀

입력 2025-03-26 16:29:04 수정 2025-03-26 17:30:21

꺼지지 않는 불에 불안감↑…"옷가지 챙기지도 못하고 대피" 긴박한 대피 현장
주민들 "인근 하회마을에 인력 동원돼 작은 마을은 관리 공백 상태"
초등학교 잇따라 휴업… 원격수업 등 대책 검토

26일 오후 1시쯤 방문한 원호1리의 일직초등학교의 모습. 초등학교 주변을 뿌연 연기와 탄내가 감싸고 있다. 김지수 기자.
26일 오후 1시쯤 방문한 원호1리의 일직초등학교의 모습. 초등학교 주변을 뿌연 연기와 탄내가 감싸고 있다. 김지수 기자.

경북 북부지역 마을들이 거대한 화마에 휩싸이며 폐허로 변했다. 초대형 산불로 잿빛이 된 하늘 아래 주민들은 한순간에 삶의 터전을 잃고 대피소를 전전하고 있다. 이들은 곳곳에서 직접 물대포와 농기계를 들고 불길과 사투를 벌이며 불안 속에서 뜬눈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다.

하룻밤 사이에 안동시 일직면과 남후면 일대가 산불에 피해를 입었다. 집과 축사는 까맣게 타 뼈대만 앙상하게 남았고, 학교와 공장은 문을 닫았다. 주민들은 '불이 다시 올지 모른다'라는 두려움에 마을을 떠나지 못한 채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밤새 사투 벌인 주민…"다시 불이 번질지 불안"

26일 오후 1시쯤 안동시 일직면 원호1리. 전날 밤 들이닥친 산불의 여파로 마을은 자욱한 연기에 갇혀 있었다. 산 정상엔 여전히 검은 연기가 솟았고, 마을 축사 일부는 뼈대만 남고 까맣게 타버렸다. 주민들은 직접 불을 끄고, 긴급 대피하며 밤새 긴박한 시간을 보냈다.

이번 산불로 안동의 대피 주민은 모두 4천52명으로, 일직면 주민 389명은 안동체육관과 인근 초·중학교로 피신했다. 주민들은 언제 다시 불길이 번질지 몰라 불안 속에서 대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안동시민체육관에서 돌아온 조두리(53) 씨는 "언제 또 불이 날지 몰라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뉴스만 보며 불안에 떨고 있다"며 "마을 뒤편 약산에서 다시 불이 번지면 바로 대피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집을 잃고 원호1리로 피신한 이들도 있었다. 일직면 구천리의 집이 다 타버린 권순자(87) 씨는 옷가지도 챙기지 못하고 약이 든 손가방만 들고 있었다. 권 씨는 "우리 마을 집 세 채가 불탔다. 갈 수 있는 곳은 친척 집뿐"이라며 "여기도 하늘이 뿌옇지만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다. 우리 마을(구천리)은 재가 날려 낮인데도 밤처럼 어두웠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각 원호1리 경로당에서는 주민 20여 명이 산불 진화 작업을 잠시 멈추고 점심을 먹으며 하소연을 쏟아냈다. 주민들은 "소방 당국이 하회마을 보호에 집중하느라 작은 마을까지 지원이 제대로 닿지 않는다"고 했다. 전날 오후부터 주민들은 직접 경운기, 농기계, 물대포를 이용해 산불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김모(65) 원호1리 이장은 "전날 오후 4시 30분 주민 대부분이 안동체육관으로 대피했고, 젊은 주민 12명만 남아 밤새 불을 껐다"며 "소방 지원이 오늘 오전에야 도착해 주민들이 밤새 잠 못 이루고 직접 불을 끄고 있다"고 했다. 식사 도중 '불이 다시 붙었다'는 소식에 주민들은 급히 자리를 박차고 다시 진화 작업에 나서야 했다.

안모(78) 노인회장은 "아들도 회사에 휴가를 내고 나와 불을 끄고 있다"며 "젊은이들이 밤새 잠을 자지 못하고 잔불과 싸우고 있다"고 했다. 이어 "한 곳을 잡으면 다른 곳에서 불길이 다시 살아나 계속 대비 중"이라고 덧붙였다.

인근 일직초교는 이날 하루 임시 휴업를 결정했다. 학교 관계자는 "피해가 커 오늘 휴업하고, 내일부터는 원격 수업을 진행할 예정"이라며 "상황에 따라 원격 수업 기간을 결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불길이 순식간에 도로까지…잔불 정리에 총력전

남후면의 한 초등학교 역시 이날 휴업했다. 이 학교는 '작은 학교 살리기' 대상 학교로, 대부분 학생이 안동 시내에서 통학하고 있다. 학교 관계자는 "내일은 정상 수업을 계획하고 있지만, 밤사이 상황에 따라 재휴업 여부를 검토할 것"이라며 "학생 중 집이 전소된 경우도 있어 지자체와 교육청의 긴급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차로 5분 가량 떨어진 남후농공단지에선 오후 2시 30분 기준 아직 잔불 정리가 한창이었다. 불에 탄 공장 벽 사이로 연기가 계속 솟아났고, 불안정한 구조물이 위태롭게 서 있었다. 공단 내 6개 업체 건물이 모두 타버렸다.

남후면 주민들은 불안감을 숨기지 못했다. 주민 A씨는 "전날 오후 3시쯤부터 돌풍이 불어 산불이 순식간에 퍼졌고, 도로까지 연기와 재가 내려왔다"며 "오늘 아침 헬기가 불을 끄긴 했지만 어제 같은 바람이 다시 불까 노심초사하고 있다"고 당시 긴박한 상황을 전했다.

남후면행정복지센터는 민원 대응과 잔불 정리로 아비규환에 빠졌다. 주민들의 긴급 전화가 빗발쳤고, 직원들은 급히 지도에서 불이 난 장소를 확인하고 있었다. 사무소 직원들은 등짐 펌프에 물을 채워 트럭에 싣는 등 긴급 대응에 집중했다.

남후면행정복지센터 관계자는 "농공단지 화재로 정전과 단수까지 겹쳐 물 공급 방안을 찾고 있다"며 "직원들은 잔불 정리에 나서 불길 확산을 막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원호1리 뒤편에 있는 산에서 다시금 불이 붙은 모습. 정두나 기자.
원호1리 뒤편에 있는 산에서 다시금 불이 붙은 모습. 정두나 기자.
화재 대응에 동원된 직원들이 등짐펌프에 물을 담고 있다. 정두나 기자.
화재 대응에 동원된 직원들이 등짐펌프에 물을 담고 있다. 정두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