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월 6일 보건복지부가 의대 정원을 2천명 늘리기로 발표한 것에서 시작된 의정갈등이 해를 넘겨 1년 이상 지속되고 있지만 아직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어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이로 인해 국민들이 겪는 의료 불편이 나날이 가중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특히 전공의 대량 사직과 의대생들의 수업거부에 이은 집단 휴학은 향후 의료인력의 수급에 중대한 차질을 빚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이번 의정갈등의 후유증이 얼마나 오래 갈지 예측조차 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이번 의정갈등이 촉발된 원인은 정부의 의료제도 운영의 미숙함과 의료인력수급정책의 실패라고 할 수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의료 및 교육 분야에서 정부의 과도한 권한과 관료주의적 태도, 그리고 민간자율역량의 부족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의료서비스는 기본적으로 의사의 의학적 판단과 환자에 대한 최적 치료법의 선택으로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의사의 직업적 자율성과 임상적 독립성의 중요성은 양질의 의료제공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일 뿐 아니라 의학 전문성의 필요불가결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의사의 직업적 자율성은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는데 있어 자신의 직업적 판단이 외부 단체나 개인으로부터 불필요하게 간섭 받지 않을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며, 임상적 독립성은 정부나 행정기관으로부터 가해지는 비합리적인 제약을 배제함으로써 환자를 위한 최선의 이익이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제도를 비롯한 국내 보건의료제도와 정책이 지나치게 규제 일변도라 의사들이 자신의 의학적 판단과 소신에 따라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힘든 것이 우리나라의 의료현실이다. 그로 인해 많은 의사들이 이상적 진료와 현실적 진료의 괴리 때문에 갈등을 겪고 있으며, 이러한 괴리는 의사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뿐만 아니라 의료분쟁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의료제도의 운영을 관장하고 있는 정부의 관료주의적 태도는 의료계의 합리적 의견 개진을 가로막고 있으며, 민간의 자율역량 신장에 방해요인이 되고 있다. 그 동안 의료계에서는 현행 국민건강보험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의료체계의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함을 여러 차례 주장했지만 행정 당국자에게는 마이동풍에 불과했으며 상호불신만 키우게 됐다.
최근에 불거진 필수의료와 지방의료 붕괴 논란만 해도 의료계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예측된 사항이었지만 그 동안 정부의 무관심과 정책 미비로 인해 현행 의료제도의 모순이 장기간 누적된 결과로 초래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거론되고 있는 의료 문제를 모두 의사 탓으로 돌리며 어느 날 갑자기 의대정원을 대폭 늘려서 해결하고자 한 데서 이번 의정갈등이 촉발된 것이다.
의료개혁은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제기된 정책과제였지만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은 의료계와 시민의 의견에 귀기울이고 협조를 구하기 보다는 정부의 일방적 정책 추진이 그 원인이라고 생각된다. 이번 정부도 무너지는 지역필수의료를 살려 모든 국민이 안심하고 언제 어디서나 최고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의료인력 확충 ▷지역의료 강화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보상체계 공정성 제고 등 4대 개혁 과제로 구성된 필수의료 패키지를 추진한다고 하였지만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추진이라는 점에서 그 실효성이 여전히 의문시 되고 있다.
의료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의사가 개혁의 대상이 아닌 개혁의 주체로서의 역할을 해야 하며, 정부와 의료계, 그리고 시민사회의 상호 협조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 오늘날 겪고 있는 의정갈등의 고통이 우리나라 의료체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결과로 이어지기를 기대해본다.
최재갑 경북대치과병원 구강내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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