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소연 기자의 한페이지] 황정근 국회도서관장 "AI로 정보 활용성 높이겠다"

입력 2025-03-19 13:30:00 수정 2025-03-20 01:04:40

지난해 12월 취임한 황정근 국회도서관장
경북 예천 출신, 15년 동안 판사 생활…"시대와 불화하는 판사였다"
21년간 정치 전문 변호사 활동…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회 측 변호인 맡아
제24대 국회도서관장 취임 석달…"디지털 전환 시대 맞아 AI 활용한 서비스 제공할 것"

지난 14일 서울 국회도서관에서 황정근 국회도서관 관장을 만났다. 국회도서관 제공
지난 14일 서울 국회도서관에서 황정근 국회도서관 관장을 만났다. 국회도서관 제공

대한민국 국회도서관은 국회의원에게 입법을 위한 정보를 제공하는 '정보의 뿌리'이자 수준 높은 정보를 보유한 '정보의 보고'다. 소장하고 있는 자료의 전산화 작업을 오랜 기간 해온 국회도서관은 지난 2월 기준 약4억2천3백만 면의 원문정보를 전산화했다.

지난해 12월 31일 취임한 황정근 국회도서관 관장은 디지털 전환 시대를 맞아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논문 요약 서비스 등 도서관의 혁신적인 변화를 예고한 바 있다. 국회의원들의 입법 활동을 지원하고 지식 서비스를 효율적으로 제공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황 관장을 지난 14일 서울 국회도서관에서 만났다.

-고향이 경상북도 예천이다. 고향에 대한 기억이 있다면.

▶경상북도 예천의 은풍면에서 태어났다. 공부도 곧잘 했지만 그보다는 자연에 방목한 일상을 보냈다. 부모님께서 농사를 지으셨다. 학교 끝나면 소 밥 주는 것이 내 일이었다. 전기도 없어서 호롱불 밑에서 공부하고 그랬던 시절이었다. 서울로 온 것은 중학교 2학년 때다. 그때는 서울로 유학을 가곤 했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오랜 시간 판사로 지내셨다.

▶조부께서 어릴 때부터 늘 '넌 판사가 돼라'고 하셨다. 공부도 곧잘 해서 자연스럽게 '난 판사가 돼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법시험에는 1983년에 합격했다. 1989년부터 15년 동안 판사로 지냈다. 대법원 행정처 심의관, 재판연구관이라고 대법관을 보좌하는 연구관 부장 판사까지 하고 퇴직했다.

2004년부터 11년간 국내 최고 로펌이라고 불리는 김앤장에 변호사로서 몸담았다. 큰 사건들을 많이 맡았으면서 많은 걸 배웠다고 생각한다. 김앤장을 나오고 나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국회 측 변호인을 맡았다. 개인 변호사 19명이 한 팀이 돼서 움직였는데 내가 말하자면 팀장이었다. 탄핵 사건이니 대한민국에 유능하다는 변호사들이 모였을 것 아닌가. 협업이 힘들더라.

-판사였던 자신을 평가한다면.

▶시대와 불화하는 판사였다고 생각한다. 판사는 기본적으로 보수적이다. 그중에서는 튀는 판결을 했다. 일반 사건에 대해서는 그런 적이 없다. 나 자신도 굉장히 우수한 판사라고 생각한다.

-기억에 남는 튀는 판결이 있나.

▶MBC 주식 반환 소송에 대한 판결이다. 내가 태어난 1961년에 문화방송이 개국했는데 당시 MBC는 하나의 주식회사가 아니라 지역마다 별개 법인으로 각각 주주가 달랐다. 1980년 신군부가 언론통폐합을 하면서 보안사를 동원하여 지역 MBC 주주들로부터 '포기각서'를 받고 주식을 강제로 빼앗았다. 민법 제110조의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다.

1992년 제주MBC 주주 등은 취소권을 행사하면서 주식인도 소송을 제기했다. 30세의 청년판사였던 나는 당시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 민사1단독으로 바로 그 사건에 대해 국가가 강제로 빼앗은 것이므로 돌려줘야 한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시효가 지난 사건이라는 이유로 항소심에서 그 내 판결이 취소됐고 대법원에서도 유지됐다. 취득 자체가 국가의 중대한 불법행위인데, 거기에 무슨 시효가 있나.

거창 민간인 570명에 대한 양민학살 사건 관련한 판결도 기억난다. 국가 상대로 손해배상을 한 것인데, 나는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그런데 결국 공소시효를 이유로 내 판결이 다시 취소됐다. 지금은 판례가 바뀌어서 손해배상 해줘야 한다고 나지만 당시에는 튀는 판결이었다.

지난 14일 서울 국회도서관에서 황정근 국회도서관 관장을 만났다. 국회도서관 제공
지난 14일 서울 국회도서관에서 황정근 국회도서관 관장을 만났다. 국회도서관 제공

-제24대 국회도서관 관장에 취임하신 지 석 달 정도가 됐다.

▶시간이 참 빠르다. 국회도서관이 가지고 있는 정보가 실로 어마어마하다. 일반 도서도 많지만 세계 각국의 논문, 보고서를 시시각각 수집하고 있다. 쌓아둔 정보를 국민들에게도 오픈한다. 이를 보다 간편히 하기 위해 디지털화하고, AI를 이용해 요약해 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특히 지역에서도 국회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국회지방의정정보센터'를 만들고 있다.

-국회도서관장은 여야가 합의해야 할 수 있는 자리다. 여야 모두의 동의를 이끈 자신의 강점이 뭐라고 생각하나.

▶국회도서관장을 맡은 것은 변호사로는 최초일 거다. 변호사를 할 때 선거법, 정치자금법, 국회법 등 정치 사건을 많이 다룬 정치 전문 변호사였다. 말하자면 여야 국회의원님들이 내 클라이언트였던 거다. 그게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국회도서관은 일반적인 도서관과 달리 국회의원들의 입법을 도와주는 곳이다. 국회의원의 의회정보회답, 법률정보회답이 주 업무다. 입법을 도와주는 곳이기 때문에 법률가였던 내 커리어가 의외로 큰 강점이 된다.

-원래 국회도서관이 국회의원들의 입법을 위한 정보를 제공하는 일을 한다. 국회의원이나 보좌진들이 국내외 자료를 요청하면 그걸 찾고 가공해서 전달하는 역할이다. 일반적인 도서관과는 다르다. 그래서인지 국회도서관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국민들이 많다.

▶가령 국회의원실에서 국회의원이나 보좌관들이 외국의 청년 제도를 조사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하자. 그러면 국회도서관 소속 박사님들과 사서들이 조사해서 드린다. 여기 인력이 400명 정도다. 불어, 독어, 영어 등 번역이 전부 가능하다. 국회의원실이 자체적으로 정보를 찾을 수도 있지만 국회도서관은 이러한 전문 인력이 정보 탐색을 본격적으로 한다.

국회도서관 차원에서 자료를 만들어서 선제적으로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 국회도서관 측으로 오는 외국 싱크탱크의 보고서들을 번역해서 '이런 법률이 있다'며 알린다.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면 큰일 나기 때문에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요즘 자료를 구할 수 있는 경로가 아주 다양해졌다. 우리가 자료를 찾기 위해 굳이 도서관이라는 공간에 가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이 정보라는 문화유산을 후세에 전승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이기도 하다. 자료의 수장고 측면에서 이 공간은 필요하다. 또 국회도서관이 가지고 있는 정보가 무궁무진하다. 전 세계 데이터 열람 권한이 있다. 그중에도 집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꼭 도서관에 와서 볼 수 있는 자료로 구분돼 있다. 이곳에 오면 더 많은 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것이다.

-전 세계 싱크탱크 연구 자료가 국회도서관으로 대부분 들어온다고 들었다. 일반 도서와 비도서도 850만여 점 보유했다. 이런 자료를 데이터베이스화하고, 또 거기에 AI를 접목하는 일이 시사하는 바는.

▶주요 자료를 데이터베이스 하는 것 자체는 국가 존립 차원에서 매우 중요하다.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이 국력이 된다. 더 중요한 것은 이것이 잘 활용될 수 있도록 하는 거다. 옛날 논문들을 한 권, 한 권 모두 스캔을 떴다. 이 작업만 수십 년이 걸렸고 매년 많은 예산이 투입됐다. 데이터베이스는 거의 구축했다. 이제 AI 요약 서비스가 도입되면 이 정보들을 더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지난 14일 서울 국회도서관에서 황정근 국회도서관 관장을 만났다. 국회도서관 제공
지난 14일 서울 국회도서관에서 황정근 국회도서관 관장을 만났다. 국회도서관 제공

-매년 국회도서관 이용률이 높은 국회의원을 꼽아 상을 수여한다. 관장님의 대출 순위가 궁금하다.

▶나도 애독가다. 그런데 책에 메모하면서 읽는 스타일이라 대출을 많이 하진 않는다. 그래서 굳이 따져본다면 순위가 낮을 거다. (웃음)

-그렇다면 국회도서관 관장님이 꼽는 인생 책은?

▶로버트 그린의 '권력의 법칙'이란 책과 도리스 컨스 굿윈의 '권력의 조건'이다. 아주 두꺼운 책인데 역사적으로 유명한 통치자의 리더십을 이야기한다. 이 두 권은 10회 독하는 것이 내 목표다. 지금까지 다섯 번정도 읽었다.

안 그래도 오는 27일부터 국회도서관장이 추천한 101권 전시회를 시작한다. 지금 160권까지 추렸는데, 정치 지도자들이 봐야 할 책들이 많다.

-디지털 전환 시대를 맞아 도서관의 혁신적인 변화를 예고하셨다. 개관 70여 년이 지난 2025년의 국회도서관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나.

▶내부 정보를 수집하고 잘 가공해 국회의원님들의 입법 활동을 돕는 본래의 일을 잘하는 것이 첫 번째다. 다음은 자료들의 전산화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웬만한 논문들은 다 원문 DB가 다 돼 있다. AI 서비스도 계속 개발 중이어서 얼마 안 가 상용화가 될 거다. 국회도서관이 국회의원님들에게는 정보의 뿌리가 되고, 국민들에게는 더욱 친근한 공간으로 자리 잡도록 노력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