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칼럼-김수용] 경제 뿌리 제조업이 보내는 위기 신호

입력 2025-03-17 18:19:52 수정 2025-03-17 19:29:02

김수용 논설실장
김수용 논설실장

자본주의 사회에서 제조업은 경제의 뿌리다. 소비와 유통도 탄탄한 제조업의 토대(土臺) 위에 성장할 수 있다. 그런데 지난해 극심한 내수 부진에도 수출 확대를 기반으로 성장세를 이어 오던 제조업이 흔들리고 있다. 1월 제조업 생산지수는 지난해 1월보다 4% 이상 줄었다. 18개월 만에 최대 감소다. 정부는 설 연휴와 지난해 12월 물량 밀어내기 탓이라며 위기 신호를 외면하고 있지만 실상은 훨씬 심각하다. 1.5%대 경제성장률 달성마저 위태롭다는 의미다. 1월 제조업 제품 출하(出荷)는 지난해 1월보다 7.4%나 줄면서 2년 만에 최대 감소 폭을 보였다. 얼어붙은 내수 출하도 2.4% 줄었고, 믿었던 수출 출하는 10% 넘게 감소했다.

제조업에서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는 반도체도 흔들린다. 16개월 만에 수출이 감소로 돌아섰고, 주력 품목인 범용(汎用) 메모리 반도체 가격은 하락세다. 설상가상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내 반도체 생산 업체에 보조금을 주는 반도체법 폐지 방침을 밝혔다. 관세 보복으로 글로벌 반도체 수요 급감 우려가 커지는데 신규 투자에 대한 보조금마저 사라지면 반도체 업계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12일부터는 한국을 포함한 모든 국가의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25% 관세가 부과됐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에 대해 호불호가 갈리지만 월가의 큰손들은 환영하는 모습이다. 제조업을 성장시켜 장기적 경제 안정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세계 최대 사모펀드인 블랙스톤의 공동 창립자 스티븐 슈워츠먼 회장은 관세가 궁극적으로 미국 제조업 활동을 크게 증진할 것이라고 평했다. 철강·알루미늄에 부과한 25% 관세 때문에 미국 제조업계는 단기적으로 해당 제품의 가격 상승과 비용 부담을 우려하지만, 트럼프는 외국 기업들의 대미 투자가 늘어 제조업 부활과 고용 증대를 이뤄내고 이를 통해 소비 진작과 경제 성장도 도모할 수 있다며 정책 기조를 고수한다.

이런 구상이 비현실적이라는 비난도 거세다. 인공지능과 로봇의 등장으로 노동력에 대한 제조업 의존도가 급격히 줄고 있다는 반론이다. 반도체 공장만 해도 고급 엔지니어 수요만 발생할 뿐 대규모 고용 창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철강·알루미늄 등 중간재에 대한 관세도 일시적으로 미국 내 관련 산업을 보호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경쟁력 약화를 초래해 일자리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미국 제조업 일자리는 1979년 1천950만 개에서 현재 1천290만 개로 줄었고, 전체 고용에서 제조업의 비중도 8%밖에 안 된다. 1939년 통계 작성 이래 최저치인데, 세계의 공장인 중국의 등장과 세계화 기조, 무역 확대로 생산 거점들이 대거 이동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동차·철강·석탄·방직 등을 중심으로 융성했다가 지금은 쇠락한 북동부와 북중부 러스트 벨트(Rust Belt)의 표심이 지난해 대선에서 트럼프를 택했다. 2020년 대선에선 바이든에 기울었던 노동자들의 마음을 돌린 트럼프가 관세를 무기로 제조업 부흥을 외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관세 장벽에 수출이 흔들리면 제조업은 더 위축(萎縮)된다. 2022년 기준 전체 산업에서 제조업 비중은 한국이 28%로, 미국·일본·독일보다 월등히 높다. 제조업 위축은 곧 경제 위기라는 말이다.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55%로 다시 낮췄다. 관세 전쟁이 본격화하면 이조차 장담할 수 없다. 제조업을 지켜낼 특단(特段)의 대책이 없으면 성장은 멈추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