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이 아닌 '개헌'이었다면…. 한 원로 정치인의 아쉬움 가득한 회고(回顧)처럼, 2024년 12월 3일 이후 대한민국은 혼란에 허우적거리고 있다. 나아가지 못한 채 둘로 조각나 서로 등을 기댄 채 세(勢) 결집 목소리 볼륨만 높이고 있다.
비상계엄 선포의 위헌·위법성 여부를 판가름할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가 임박하면서는 대립은 더 격화하고 갈등은 정점(頂點)으로 치닫고 있다.
'찬탄' '반탄'으로 쪼개진 정치권은 여태 헌재 결정 승복 선언을 하지 않고 있다. 선고를 빨리 하라, 늦게 하라, 기각·각하하라, 파면하라 외치며 헌재 압박에만 몰두하고 있다.
지난주, 법원의 윤 대통령 석방과 검찰의 즉시항고 포기가 있은 후에는 사생결단(死生決斷)식이다. 야권은 즉시항고 없이 법원의 구속 취소 결정을 수용한 심우정 검찰총장을 맹폭하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했다. 여당은 내란죄 수사 권한이 없는데도 수사를 강행하고 윤 대통령을 체포·구속했다며 오동운 공수처장을 대검에 고발했다.
여당은 절차적 정당성을 고리로, 야당은 신속한 탄핵 인용을 요구하는 단식·삭발 등 장외 투쟁에 돌입했다. "내전 몰이" "내란 선동" 구호가 넘친다.
전직 국회의장·국무총리·당 대표 등 원로 모임이 지난 10일 국회가 탄핵심판 결정에 승복한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할 것을 촉구했지만, 정치권은 모르쇠다.
탄핵심판, 내란죄 수사 과정에서의 절차적 정당성 논란을 부추기고, 또 이에 맞서며 헌재 결정의 '불복' 명문을 쌓는 건 아닌지 의심된다. 갈등을 잠재시켜 통합을 이끌어야 하는 본분(本分)은 내팽개친 채.
이대로라면 헌재가 어떤 결론을 내리더라도, 한쪽은 반발하는 '소용돌이'를 피할 수 없다.
극단의 분열 가속. 봄 하늘 몰아치는 황사보다 더한 반목의 일상화가 대한민국을 덮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응축된 국민적 분노의 방향을 틀 공간 마련이 시급하다. 다시금 나아갈 동력으로 개헌(改憲)을 꼽으며 논의에 역량을 모을 것을 제안한다.
이번 비상계엄 사태에서 드러났듯 1인에게 권력이 집중된 대통령제가 초래한 권력의 독단과 여소 야대 상황에서의 국정 마비는 헌정 체제 전환의 필요성을 더욱 부각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개헌 시동이 걸린 상태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이 이끌어 낸 9차 개헌을 통해 군부독재를 종식시키고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 '87체제'라는 헌정 질서가 탄생했지만 번번이 한계도 노출했다. 5년 단임 대통령제는 임기 말 리더십 부재와 그에 따른 국정 동력 상실 문제를 낳았다. 승자독식 정치체제는 정책의 연속성을 저해하고 정쟁을 일상화해 국가 운영의 효율성을 약화하는 부작용을 드러냈다.
1987년 개헌 이후 선출된 대통령 8명 중 3명(노무현, 박근혜, 윤석열)은 재임 중 탄핵소추돼 1명(박근혜)은 파면됐고, 1명(윤석열)은 헌재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오코노기 마사오 일본 게이오대 명예교수는 6일 자 아사히신문 인터뷰에서 한국 내 정치적 대립의 원인으로 대통령 5년 단임제를 들며 "2기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 정치적 대립을 오히려 조장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간의 개헌 논의는 당리당략에 막혀 매번 물거품이 됐다. 필연적이지만 실현되지 못했고, 지금도 '정치적 노림수'란 시선에 갇혀 현실화 기대는 낮다. 그럼에도 '끝장'식의 대결 정치 시스템을 끝내야 한다는 절박함, 공감대는 충만(充滿)하다.
댓글 많은 뉴스
[정진호의 매일내일(每日來日)] 3·1절에 돌아보는 극우 기독교 출현 연대기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김세환 "아들 잘 부탁"…선관위, 면접위원까지 교체했다
尹공약 '금호강 르네상스' 국비 확보 빨간불…2029년 완공 차질 불가피
野, '줄탄핵'으로 이득보나…장동혁 "친야성향 변호사 일감 의심, 혈세 4.6억 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