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복지 울타리 밖 '미등록 이주아동'…체류자격 구제대책은 이달 말 종료

입력 2025-03-11 17:33:00 수정 2025-03-11 22:06:12

"미등록 이주아동, 수학여행 가도 보험 안 돼서 눈치 본다"
"체류 연장 걱정 없이 교육받을 수 있어야", 구제대책 상시화 촉구
법무부 "3월 중 구제대책 연장 여부 발표"

7년 전 러시아에서 한국으로 온 알리나(가명)는 체류자격 없는 미등록 이주아동이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입학을 거부당했다. 본인제공
7년 전 러시아에서 한국으로 온 알리나(가명)는 체류자격 없는 미등록 이주아동이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입학을 거부당했다. 본인제공

7년 전 러시아에서 한국으로 온 알리나(10대·가명)는 올해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데 애를 먹었다. 체류 자격 없는 미등록 이주 아동이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그가 입학의 문을 두드렸다가 거부 당한 학교만 4곳에 달한다.

알리나는 "학교들은 서류에 문제가 있다며 거절해왔다. 검정고시를 치려 해도 같은 이유로 신청조차 못했다"며 "한국에서 대학원 박사 과정까지 하고 싶다는 꿈이 있는데, 고교 입학조차 안 돼 상처를 너무 많이 받았다"고 털어놨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미등록 이주 아동들이 '서류 없는 존재'라는 이유로 기본적인 권리조차 누리지 못하고 있다. 학교 입학을 거부당하거나, 건강보험이 없어 비싼 병원비를 감당해야 한다.

법무부가 마련한 임시 구제대책도 이달 말 종료될 예정이어서, 인권 사각지대에 놓인 아동들을 위한 상시 체류 자격 부여 등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미등록 이주 아동, 교육‧복지‧의료 혜택 못 누려

11일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 1월 기준 출입국관리시스템에서 공식 집계된 18세 이하 미등록 이주 아동은 모두 3천434명이다. 대구의 경우 대구시교육청이 83명으로 파악하고 있다.

미등록 이주 아동은 국내 체류 자격이 없는 외국인 부모가 낳거나 데려온 자녀들을 말한다. 부모의 '미등록 외국인 신분'이 대물림되는 이들은 서류 상에도 존재하지 않아 유령 아동으로 불린다.

외국인등록번호조차 없는 이들은 보통의 아이들이 속한 교육‧복지 울타리에서 번번이 제외된다. 정부의 양육 수당과 보육비 지원이 닿지 못하고, 신분을 입증하지 못하면서 본인 명의의 휴대전화도 개통할 수 없다.

건강보험도 적용되지 않아 일반 국민보다 최소 두 배 이상의 병원비를 부담하고 있다. 알리나는 "4년 전부터 발가락 마디에 있는 뼈가 튀어나와 걸을 때마다 통증이 심한데, 아버지가 요로 결석 치료비로 150만원 내는 걸 보고 아파도 참기로 했다"고 말했다.

교내에선 어려움이 더욱 크다. 여행자보험이 불가능해 수학여행 등 행사를 앞두고 눈치를 보는 아동들이 많다는 것이 이주민 단체의 설명이다.

◆임시 체류 구제대책 이달 말 종료…연장 되나?

이들에게 한줄기 희망이었던 법무부 구제 대책은 이달 31일 종료를 앞두고 있다. 그대로 대책이 끝나면, 미등록 이주 아동들은 학교에서 충분한 학습권 보장을 받지 못하고, 의료보험과 각종 지원 혜택에서도 제외될 처지에 놓이게 된다.

앞서 법무부는 2022년 2월부터 미등록 이주 아동의 교육권을 보장한다는 취지로 임시 체류자격(D-4 비자)을 한시적으로 부여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장기체류 아동의 인권 침해 지적과 함께 법무부에 체류자격 심사 제도 마련을 권고한 데 따른 조치였다.

한국에서 태어났거나 6세 이전에 한국으로 들어온 아동은 6년 이상 국내 거주 시 체류자격이 주어진다. 6세 이후에 한국에 들어온 경우 7년 이상 국내에서 거주하고 학교를 다니거나 졸업하면 된다.

이달 말 구제 대책 종료 소식에 미등록 이주 아동을 둔 가정들은 걱정이 앞선다. 거주 기간이 짧아 신청 자격조차 얻지 못했던 이들은 더욱 낙담하고 있다.

대구에 거주하는 기니 출신 나바야(38‧가명) 씨는 "딸 두 명은 나이가 어려 체류자격을 신청할 수 없었다. 병원 갈 때마다 한 명당 최소 4만원씩 내야 했다. 아이가 왜 비자가 없냐고 물어보면 부모로서 속상하다"고 토로했다.

이주민 단체들은 홍보 부족과 미등록 기간에 따른 범칙금 부담으로 구제 신청하지 못한 아동들이 많다며 제도 상시화를 촉구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시행 첫 달부터 지난 1월까지 임시 체류자격을 받은 아동은 모두 1천163명이다. 이주민 단체가 추산하는 전체 미등록 이주 아동(1만~2만명)의 약 10%에 불과하다. 법무부 통계를 적용해도 3분의 1 수준이다.

고명숙 이주와가치 대표는 "미등록 이주 아동들은 고등학교에서 받아주지 않는 경우가 있고, 학교에서 수학여행을 가더라도 보험이 안 돼서 선생님들로부터 눈치를 받는다"며 "한국에서 나고 자랐으면 체류 연장 걱정 없이 교육을 받고, 아플 때 병원에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기관도 법무부에 제도 연장을 촉구하고 있다. 대구시교육청 관계자는 "법무부에 구제 대책의 연장을 적극 요청하며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법무부 관계자는 "교육부 등 관계 기관과 의견 수렴 절차를 진행 후 충분한 검토를 거쳐 이달 안에 구제 대책 연장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