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을' 창업주 故박재을 회장 차남…80년대 말 본가와 분리·상경해 '갑을 상사 그룹' 일궈
자동차 부품·소재·환경 및 에너지 등 6대 부문 20여 계열사…2024년 기준 총 3조원 매출
'열렬한 스키 사랑' …비인기 스포츠인 '설상 경기' 후원 위해 설상경기연맹 회장 맡아
'갑을(甲乙)'은 대구 섬유산업 번영기를 이끈 기업이다. IMF이후 대구의 갑을은 경영난으로 무너졌지만, 1980년대 말 갑을에서 계열 분리된 '갑을상사그룹'(현 KBI그룹)은 서울로 거점을 옮긴 후 눈부신 발전을 이어가고 있다. 자동차부품·소재·에너지·의료 등 다양한 부문에 20여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국내 뿐 아니라 해외 시장 개척에 주력한 성과로 지난해 기준 약 3조원 매출을 달성했다.
현재 KBI그룹 경영을 총괄하는 박효상(67) 회장은 갑을 공동창업주인 고 박재을 회장의 차남이다. 1991년 선친이 타계한 이후 그룹을 이끌어온 장남 박유상 부회장이 2015년 고문으로 추대되면서, 박 회장은 동생인 박한상 부회장과 함께 그룹을 이끌고 있다.
이처럼 경영 최일선에 선 박 회장은 (사)대한설상경기연맹 회장을 맡아 지난달 강원도 평창에서 제1회 'KBI컵 스키·스노보드 챔피언십' 대회를 개최했다. 겨울이면 매주 스키장을 찾을 정도로 오랜 '스키 애호가'인 그는 비인기종목인 설상 스포츠 발전과 선수 후원을 위해 나섰노라고 했다. 스키가 얼마나 좋은 운동인지 자랑할 때 박 회장 표정은 소년(少年)처럼 즐거워보였다. 서울역 인근 KBI그룹 본사에서 박 회장을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 (사)대한설상경기연맹 회장을 맡으신 계기는?
▶겨울에 할 수 있는 스포츠가 많지 않은데, 스키·스노보드 경우는 겨울에 즐기기 대단히 좋은 운동입니다. 저도 20대부터 스키를 타기 시작했는데, 10여년전부터는 경기에도 직접 나갈 정도로 좋아합니다. 하지만, 이런 종목들이 메달을 잘 따지 못한다는 이유로 국내에서 비인기종목으로 머물고 활성화되지 못하는 모습이 평소 매우 아쉬웠습니다. 우리 선수들이 뛸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해서 설상 경기 종목 대중화에 기여하고, 선수들에게 경제적인 보탬도 되고 싶다는 생각에 상금도 걸고 올해 첫 대회를 열게 됐습니다. 첫 대회인데도 많은 호응이 있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스키협회 등에서 설상 종목 활성화에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겨울 스키 운동의 매력은?
▶주로 12월부터 3월까지 거의 매 주말 스키장을 갑니다. 1박2일도 좋고 여유가 되면 며칠씩 다녀올 때도 있습니다. 가면 거의 하루 종일 스키를 탑니다. 제가 20대 무렵부터 스키를 타기 시작했는데, 10여년 전부터는 경기에도 직접 출전할 만큼 스키는 매력적인 스포츠입니다. 스키는 폐활량을 키우는데 좋을 뿐 아니라 전신 근육 운동에 유리합니다. 특히 다리 근육량이 늘어나서인지 골프 운동 때 비거리도 늘어났어요. 심신을 개운하게 하는 데는 더 할 나위없죠. 스키, 스노보드 경기 종목에 2명이 경쟁하는 '듀얼', 4명이 시합하는 '크로스'라는 종목이 있는데, 혼자 즐길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짜릿함과 상쾌함이 있습니다.
- '갑을상사그룹' 초기는 어땠나요?
▶아버님이 대구상공회의소 회장을 역임하시고 얼마 안 되서 1991년 돌아가셨습니다. 예순살 때셨어요. 갑을상사그룹으로 계열 분리해 나온 게 1987년이었으니까 분가하고 얼마되지 않아서였죠. 저희 형제는 먼저 서울에 올라와 있었고 아버님은 대구에서 신사업을 찾고 계셨습니다. 성서공단에 작은 방직공장도 있었고요. 아버님 작고 후에 회사를 키우는데는 형님(박유상 고문)이 가장 역할을 많이 했죠. 서울로 진출해서 새로 시작하는 게 크게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섬유업종에서 탈피하는게 어려웠어요. 집 안 어른들도 섬유에서 빠져나가는데 대해 굉장히 부정적이셨어요. 하지만 당시 중국산 제품들이 밀려들었기 때문에 합성 섬유 업계 전망은 어두웠습니다. 그래서 '탈(脫) 섬유'를 모토로 자동자 부품과 철강, 환경, 의료 사업 등 신사업 쪽으로 계속 뻗어나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잘 빠져나왔다고 봅니다. 섬유업 명맥을 간직한다는 뜻에서 대구에 원사 유통업체를 두고 있으며, 매출은 전체 그룹의 3% 정도입니다.

- KBI그룹 현황을 소개해 주신다면?
▶3대 경영 체제로 새로운 미래를 준비한다는 차원에서 그룹명을 갑을상사그룹에서 'KBI'(Korean Business Innovator)로 수년 전에 변경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사업 혁신가'라는 그룹명 답게 끊임없이 도전하고 혁신하는 기업으로 발돋움하고자 합니다. 섬유 제조업으로 출발했지만, 90년대 들어 자동부 부품업에 진출했고, 이후 대구경 강관, 전선, 건설, 부동산, 환경, 에너지, 의료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대해 나가고 있습니다. 유럽, 북미, 아시아, 중동 지역 10개국에 진출해 글로벌 기업으로 지속 발전하고 있습니다. (1987년 고 박재을 회장은 갑을상사그룹으로 분리 당시 동국실업, 갑을건설 등 9개사를 맡았으며, 현재 KBI그룹은 6대 사업 부문 20여개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다.)
- 그룹 고속성장의 비결은?
▶해외 시장 개척입니다. 우리 회사 모토가 '해외로 해외로' 인데, 아직도 해외에는 우리가 개척할 수 있는 시장이 무궁무진합니다. 미국은 물론이고 유럽에도 우리 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 수요처가 많습니다. 해외 시장은 한마디로 기회죠. 일례로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높였지만, 그 대신에 회사마다 할당된 쿼터(물량) 제한을 없앴습니다. 우리 회사 경우 할당된 철강 제품 수출량이 적었는데,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됐죠. 반면에 우리의 가장 큰 경쟁자인 중국은 미국의 견제 때문에 경쟁력을 잃어버렸어요. 미국의 중국 견제가 향후 10년은 갈 것 같는데, 이런 기회를 우리가 놓쳐서는 안됩니다. 국내에서 우리 기업끼리 경쟁하는 건 더이상 의미가 없어요.
- 역점을 두는 신사업 분야는?
▶친환경이 대세다 보니까 저희도 친환경적인 사업을 준비 중입니다. 배터리 제조 쪽에 투자를 하려니까 투자 규모가 너무 많아서 일단은 배터리 세이빙 쪽으로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또 한전에 전기를 판매하는 용도로 해상 풍력 발전 사업도 진행 중인데, 수년 내로 가시적인 성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 고향인 대구에 전하고픈 메시지는?
▶현재 대구에 자동차부품 관련 대형 기업들이 꽤 있는 줄로 알긴 하지만, 과거에 섬유산업 메카로 누렸던 영광을 누렸던 생각을 하면 안타까운 면이 있습니다. 대구에 첨단 산업 분야 기업 유치가 활발히 이뤄져야 대구 경제가 살아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AI, 에너지, 의약품 같은 분야가 대구 쪽에 많이 유치되면 좋겠어요. 하지만, 도시마다 기업 유치를 위해 세금, 사업 부지 등을 좋은 조건에 경쟁적으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대구도 매력적인 요소를 적극 제시해서 기업 유치를 이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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