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테이스트: 음식으로 본 나의 삶
스탠리 투치 지음 / 이콘 펴냄

내가 꼽는 최고의 음식영화는 이탈리아 이민자 형제가 이태리 식당을 운영하면서 벌어지는 충돌과 갈등의 드라마, 스탠리 투치의 '빅 나이트'이다. 이사벨라 로셀리니를 비롯한 명배우와 이탈리아 요리의 진수가 스크린을 풍성하게 수놓는 작품으로, 상업과 예술, 전통과 현대, 장인과 장사꾼의 경계에서 끊임없이 고민하는 삶에 대해 이보다 더 완벽하게 보여준 영화는 없다고 단언한다. 이 영화를 만들고 동생 세콘도를 연기한 배우 스탠리 투치가 책을 냈다. '테이스트: 음식으로 본 나의 삶'이다.
음식에 진심인 이탈리아 후손답게 책은 온통 먹는 이야기다. 먹고 또 먹고, 아침 먹으면서 점심 메뉴 이야기하기를 멈추지 않는데도 식상하기는커녕 즐겁고 유쾌하다. 한 꼭지가 끝날 때마다 레시피를 상세히 내놓는 세심함은 덤. 유구한 음식 전통에 감탄하고 헌사하는 작가는 전 세계로 퍼지고 세대를 넘어가면서 변형되고 변질된 이탈리아 요리의 진수를 고집스럽게 수면위로 올린다. 이를테면 이탈리아는 곧 파스타라는 등식을 거듭 주장하더니, 다양한 파스타 조리법과 자신이 아끼는 투치 라구 레시피를 기꺼이 공개하면서 "다 큰 어른이 스파게티를 잘라먹는 행위"를 신성모독에 가깝다고 일갈하고, 결코 대체되거나 다시 만들어질 수 없는 것으로 "아마 가장 귀한 유산은 가족의 레시피일 것"이라고 말한다.
'음식으로 본 나의 삶'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투치는 전통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어머니의 가정식과 가난하고 배고팠던 연극배우 시절을 위로한 가성비 좋은 식당들을 추억하면서, '체리 레스토랑'과 '빅 닉스' 햄버거를 떠올리고 76번가 볼링장과 암스테르담 애비뉴의 버드와이저를 기억한다. 유명인이 된 그에게 해외로케이션은 곧 현지 맛집을 섭렵하는 즐거운 일정이다.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 특식에 관한 일화는 종류만으로도 기함하게 만든다. 본인이 절대 과장이 아니라고 강조한 것, 곧 5가지 애피타이저와 2가지 요리의 첫 번째 코스와 5가지 요리가 나오는 두 번째 코스에 이은 6가지 디저트. 지금도 요리 가짓수의 변화가 없다니,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스탠리 투치 집 앞에 쪼그려 앉아있어 볼까 싶다.
영화배우 투치가 예리하면서 포근한 양면성을 가졌다면('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떠올려보시라) 작가 투치는 친절하다 못해 독설의 달인에 가깝다. 프랑스요리에 실망한 노르망디 식당 에피소드에서 "독일군이 후퇴한 이유는 (중략) 아마도 노르망디를 잔인하게 정복한 것에 대한 대가로 매일 앙두예트를 먹어야 한다는 두려움이 더 컸을 것 같다."고 말할 정도다. 심지어 단골식당에서 준 꿩 두 마리를 집 냉장고에 넣어놓고는 만난 지 얼마 안 된 여성과 깃털을 뽑으면서 감정적으로 더 가까워졌다고 믿는 이 사내는 이제까지 내가 알던 스탠리 투치가 아니었다.

작가는 자신의 오늘을 만든 자양분으로 음식, 이탈리아 요리, 어머니가 해준 전통요리를 꼽는다. 그리고 책 말미에 고백한다. "음식은 나를 살게 할 뿐 아니라 나를 풍요롭게 만든다. 나의 모든 마음과 몸 그리고 영혼까지."라고. 요리하고 냄새 맡고 맛보고 먹고 마시고 음식을 나누고, 원하는 만큼 반복하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 없는 남자. 그의 이름은 스탠리 투치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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