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이후의 미국'을 다룬 퓰리처상 수상 작가의 대서사시

입력 2025-03-06 13:08:02

아야드 악타르 지음 / 민승남 옮김

[책] 홈랜드 엘레지
[책] 홈랜드 엘레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선거 구호로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내세웠고, 재집권에 성공하자 마자 '미국 우선주의' 정책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하지만 과연 이게 전세계에서 살아가는 우리 인류 평화를 위해 바람직한 일일까?

2020년에 출간된 '홈랜드 엘레지'(Homeland Elegies)는 다시 한번 트럼프 시대를 살게 된 우리를 위해 쓴 예언서 같다. 이 책은 9·11 테러 이후 강화된 이슬람 혐오로 인해 느끼는 정체성의 혼란을 그린 희곡희곡 '수치(Disgraced)'로 퓰리처상을 받은 저자 아야드 악타르의 작품으로 그가 내놓은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미국 내 유수의 언론사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며 아메리칸 북 어워드상을 수상하고, 앤드루 카네기 메달상 후보에 올랐다.

이 책은 트럼프 시대의 실패한 '아메리칸드림'을 세련된 블랙 코미디로 그려낸다. 장편소설이지만 형식을 띄지만, 회고록과 소설, 가족 드라마, 사회 에세이, 희곡, 역사와 문화 분석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든다.

도널드 트럼프 심장 주치의인 아버지를 둔 2세대 이슬람계 이민자 극작가 아야드 악타르를 주인공으로, 트럼프와의 화려한 식사 자리와 뉴욕 브로드웨이 무대 뒤편부터 할리우드힐스와 스크랜턴의 낙후된 공장 지대에 이르기까지 미국 전역을 종횡무진 가로지르며 '미국'과 '미국적 삶'의 이면을 신랄하게 파헤친다.

미국에서 살아가며 정체성의 딜레마를 겪는 무슬림으로서, 조국에 대한 분노와 애증을 담은 이 책은 예술, 금융, 인종, 종교, 학계, 국가 등 다양한 주제를 다양한 등장 인물을 통해 그려낸다.

관세 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트럼프 대통령. 연합뉴스
관세 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트럼프 대통령. 연합뉴스

소설은 성공한 극작가인 아야드와 트럼프 주치의였던 아버지가 갈등을 빚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작가 자신이자 소설 속 화자이기도 한 극작가 아야드는 무슬림의 미국적 딜레마와 고통을 글에 담아내어 퓰리처상을 받고 미국의 대표적 무슬림 출신 작가로 부상했으나 무슬림의 배타성, 미국의 약탈적 자본주의를 동시에 비판하며 무슬림과 미국, 양쪽에서 배척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파키스탄에서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이민 온 아버지는 '위대한 기회의 땅' 미국을 사랑하는 인물로, 1993년 트럼프의 심장 주치의로서 잠깐 교류한 기억으로 그를 추억하며 2016년 트럼프가 대선에 출마하자 남몰래 그에게 표를 준다. 악타르는 이러한 아버지를 보며 "혹시 노망이 난 것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며 복잡한 감정을 드러낸다.

무슬림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는데는 아버지의 친구이자 어머니가 남몰래 진정으로 사랑했던 인물, 미국에 살았지만 고국으로 돌아가 빈 라덴을 비롯한 무슬림의 독립을 지지했던 '라티프'라는 인물이 중심에 있다. 아버지 세대와 자신의 세대 시선으로 미국과 파키스탄 간 관계의 역사를 르포 형식으로 재조명한다. 라티프는 '이슬람 테러리스트 스파이'로 지목돼 암살당하고, 악타르는 미국에서 살아가는 '미국인'으로서의 자신의 자아와 '무슬림'으로서의 자아로 살아가는 민족의 믿음이 다름에서 오는 분열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자본주의를 비판하는데는 대출 평가 사업을 운영하며 빚을 팔아 자본을 굴리는 시스템을 운영하는 또 다른 무슬림 '리아즈'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빚과 자본이 초국가적 힘을 가진 수단과 논리가 돼 수많은 하층 계급의 삶을 파괴하는 것을 본 동시에 바로 그 리아즈가 주선한 주식으로 크나 큰 부를 거머쥐게 된 악타르는 자본주의적 성공에 얽힌 욕망을 거부할 수가 없게 된다.

악타르의 개인적 경험과 사회적 통찰이 결합된 이 작품을 통해 현대 미국 사회의 복잡성과 함께 트럼프 2기 시대에 전세계가 마주해야 할 무자비한 폭력과 분열의 파급력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520쪽, 1만9천800원.